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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대 Mar 26. 2021

박해·분투·수교

1866년 병인양요에서 1882년 조미수호까지의 몇 기념 풍경

150여 년 전 외세의 물결이 몰아쳤다. 

그렇게 근대사가 시작되었는데, 우리는 어떤 기념 풍경을 구현하였는지 몇 살펴보자.


1.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서울 절두산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과 형구 돌

담담하다. 

작은 기단에 새긴 건립문, “한국에서 백 년간 순교한 수만 위의 거룩한 얼을 현양 하기 위하여 여기 기념상을 바칩니다. …”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순교한 첫 가족 순교자를 형상화하였다. 곡면과 선, 펼친 두 손, 그리고 셋. 몇 사인이 숨어있다. 기념상은 승화한 이미지를 구하듯 간절함이 엿보인다. 무표정 같은 모습은 벗어남을 보여주는 것인지. 


그런데 조금 옆에 큼직한 형구 돌이 아직도 올찬 올가미까지 꿰어 갖춘 채 그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끔찍한 것인데 굳이 여기 놓여있는지. 주변에 형구 몇 모아 작은 전시장을 이루었다. 기념과 박물이 함께 한 꼴이다. 


문뜩 당시 처형장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대비 효과는 있다. 교육적 영향이 너무 크다. 



2. 절두산 성지 순교기념탑

서울 절두산 성지 순교자 기념탑

아홉 계단 위 큰 무대 같은 넓은 바닥에 거대한 상 셋이 들어섰다. 배경은 숲이다. 

크고 작은 세 매스는 순교의 극적인 연출과 성인의 기록 새김으로 이루어져 있다.    

  

칼 형틀이 중앙에 크게 자리하고 오른편에 순교자의 두상이 놓였다. 왼편에는 여러 순교자 모습을 가지런히 새겼는데, 이는 그대로 다른 두 매스의 받침대에 이어진다. 뒷면에는 순교자 명단은 빈칸 여지까지 마련했다. 

    

미려한 대리석 재질에 다듬질이 여러 가지라 다채롭다. 거친 결과 결에서 빚어진 모양이 마치 세속적인 데서 뭔가 드높게 향하려는 듯하다. 아니 그런 선입감의 작용인지 모른다.


그리 크고 높지 않은데도 이만하면 크다. 올려봐야 한다. 

절두산 성지 순교자 기념탑 부분

순교를 기리는 기념은 세속을 넘어 신성화하는 의식이다. 순교에 다가가는 매체로서 그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것, 실체이다. 성지의 유적과는 다르다. 과거의 것이 아니고 늘 미래의 가능성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천주교에 다가가야 제대로 보일 것 같다. 비신자는 추측에 머무니 아쉬울 뿐.

 


3. 양헌수 승전비

인천 정족산성 동문 안의 양헌수 승전비

비각 속 승전비는 조용하다. 

승전을 기록하고 공적을 기리는 비이지만, 비 자체는 담박하다. 전통 형식의 비 모양새는 모두 같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은 차이가 있다. 


이 승전비는 더욱 그러하다. 보기에 따라 그저 단순히 다듬어 새긴 돌이지만, 미미하게나마 아름다운 선과 결을 지녔다. 승리의 자축이지만, 겸손하게 보인다. 둥둥둥! 하고 승전고가 우렁찼을 그 시절이면 더 걸맞았을지. 


그러나 지금은 사찰 시설의 일부로 보일 뿐, 관광지 길가에서 그저 호젓하다



4.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

인천 강화광성보의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 전후

신미양요의 격전 현장, 광성보는 그 자체가 중요한 사적이다. 정비되어 일부 옛 모양새까지 갖추었다. 복원이라기보다 재현에 가깝다.

  

순국 무명용사비는 인근 신미순의총에 합장된 51위 영령을 기리며, 쌍충 비각 옆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높이 규제에 옆으로 펼친 듯하다. 폭이 6m는 된다. 귀퉁이에 전투하는 장병 모습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낮게 조형된 석조물로써 주변에 순응하고 그 일부로 스며드는 듯하다. 기념물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기법의 하나다.


금석문,“ … 얼마나 치열하고도 장절했던가! … 가장 치열했던 48시간의 짧은 전쟁이었다고 전제하고 비록 승리했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이를 자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뉘우쳤다. 이러했기에 뒷날의 한미 교섭은 무력행사를 배제하고 평화적인 상담으로 오늘에 이르는 호혜 평등의 우호 동맹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명판 중심의 형태 구성으로 나머지는 덧붙인 장식이다. 다행히 큰 군더더기가 없다.



5. 영종진 전몰 영령 추모비

인천 영종진 공원의 영종진 전몰 영령 추모비

전사자 35위. 

높이 9m이나 명칭은 “비”이다. 금속 재질의 쌍 비를 이루었다. 두 비신이 큰 실루엣을 만들고 있다. 기도하듯 모은 두 손의 윤곽인가? 아니 한을 품은 쌍칼인지.      


“… 영종진이 비록 일본군에게 철저히 기습당해 패배당한 현장일지라도 근대사의 시점에서 우리의 연안을 지키던 호국의 진지로써 민족사의 피맺힌 한 장으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


패배와 한탄에 머물지만 말고 이겨내려는 듯 추모비는 쇄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다만 이런 분위기가 과연 전몰자를 그리며 생각하고 기리는 태도인지 조금 주저하게 된다. 나름 산뜻하니 추모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6.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

인천 화도진 공원의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

기념비는 거의 없는 듯한 낮은 판석 기단 위에 높이 2m도 되지 않는다.  몸체는 작은 두 개의 오벨리스크를 합체한 형상이다. 엇비슷한 두 물체가 하나로 엮어진 꼴.      


두 사람인가. 둘 사이의 작은 틈을 만드는 결과 좁은 틈새가 미묘하다. 그리고 선언문을 새긴 동판이 둘을 단단히 묶었다. 수교의 의미, 관계의 설정을 충분히 상징하고 있다.      


전면 동판, “여기 이 유서 깊은 화도진 언덕은 1882년 5월 22일 한미 양국의 대표들이 양국 외교 관계의 첫 장을 여는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한 곳으로, 이를 기념하여 1982년 12월 14일 이 표지석 Landmark를 다듬어 세운다.”     


선언문에서는 “랜드마크”라 했다. 그렇다. 커야만 꼭 랜드마크가 되는 건 아니다. 여기 충분히 그 효과를 보여준다. 이곳 전통적 풍취까지 더해지니, 이 기념비는 더욱 의미를 지닌다. 


흔한 공간적 랜드마크가 아닌, 역사의 기념비적 랜드마크의 역할이다.



7.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인천 자유공원의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공원 한편에 탑의 숲을 이루었다.      

높이가 18m 내외로 양쪽에서 솟아올랐다. 모두 8개의 첨예한 형태의 삼각 판이 큰 공간을 이룬다. 요즘 같으면 태양광 발전판으로 오해할 만하다. 격자와 빗금무늬가 가득하다. 부분 부분 청록색 빛이 난다.      


마치 두 나라의 기가 서로 맞서고 대응하는 형국이다. 스파크가 일어날 지경. 아니나 다를까 중앙에 “태”의 청동 환조가 자리했다. 결과인지. 얽힌 그러나 원만한 형상이다. 


“… 양국 관계의 발전에 가장 기본적이며 역사적인 시발점 … 뜨거운 혈맹의 관계를 맺기 … 상호 신뢰와 우호 협력관계의 계속적인 발전과 전진을 희구하는 표징으로 …”


두 나라가 함께 하니, 이제 수많은 열매를 거두라는 바람인듯하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의 조각 작품 '태'와  부분

그런데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같은 사건을 기념하는 비와 탑이.     


당연할지 모른다. 두 건립위원회와 두 작가가 의도하는 조형 철학의 차이일 뿐인지.  

그래도 수교 100주년 되는 같은 해에 굳이 두 곳에 이렇게 유난히 다른 두 기념물을 속사정이 궁금하다.


우리 근대의 순교와 수교 두 기념 풍경이 지향해야 할 조형철학은 …

절대선을 추구하는 숭고미와, 상대성을 추구하는 균형미가 아닐까.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양헌수 승전비: 1873년 건립, 1995년 11월 14일 이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갈상면 온수리 산 42 전등사 동문 안    

2.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 1973년 8월 1일 건립,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6 절두산 순교성지, 조각: 최종태

3. 영종진 전몰 영령 추모비: 1977년 건립,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 1952-5 영종진 공원, 조각: □□□

4. 신미양요 순국 무명용사비: 1978년 9월 건립,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23-1, 금석문 글: 리선근, 글씨: 김충현, 조각: □□□     

5.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비: 1982년 5월 100주년 기념 건립, 1988년 9월 10일 복원 재건립,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 319-47, 화도진 공원, 제작: □□□

6.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1982년 5월 22일 착공~ 12월 14일 준공, 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로 95 자유공원, 명문: 박두진, 글씨: 김충현, 건축: 강석원, 조각: 최만린, 시공: 현대건설  

7. 절두산 성지 순교자 기념탑: 2000년 9월 20일 순교자의 날 건립,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6, 작가: 이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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