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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대 May 05. 2021

녹두장군은 어디에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기념 풍경 Ⅲ

기념 풍경, 특히 동상은 인물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물에게 바라는 이미지를 나름대로 품고자 한다.


우리 시대 전봉준 상에서 어떠한 이미지를 지닐 수 있을지?



1. 정읍, 전봉준 장군 단소

동학혁명 60주년이 되는 1954년 11월, 전씨 문중에서 옛집에서 500m쯤 떨어진 이곳에 전봉준 장군의 위국 단심을 기리는 제단을 조성하였다.


단소 부지는 도로에서 거꾸로 진입하게 되어 어색하다. 그래도 앞이 틔여 있고 낮은 담을 둘러 그나마 제를 위한 영역을 확보하였다. 전봉준을 기리는 최초의 장소이다.

전봉준 장군 단소

사학자 김상기 박사가 단비 이름을「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지단(甲午民主倡義統帥天安全公琫準之檀)」으로 지었다. 그때는 아직 ‘동학란’이었으니, 전봉준을 ‘동학당의 수괴’로, 참여자는 ‘반란군’으로 불러 모두가 ‘역적’으로 인식되던 시대였으니, 이 단소의 조성은 큰 시도였던 셈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조금씩 구색을 갖추었다.

석판에 두드러진 전봉준 눈빛이 뚜렷하다. 많이 알려진 그림이다. 비석이나 글보다 그림 이미지가 더 효과적이긴 하다. 영정으로 모신 형식도 아니니, 장식인가?



2. 전주 덕진공원, 전봉준 선생 상

넓은 덕진호 가장자리 한편에 자리한 동상은 여러 나무로 둘러싸였다. 걷다 보면 홀연히 나타난다.

전주 덕진공원, 「전봉준 선생 상」

작은 체구에 갓을 쓰고 표정이 단호하다. 포고문을 말아 쥐고 주장한다.


그런데 녹색 빛이 어색하다.

본래 청동상은 시간에 따라 고유한 녹빛이 드러나니 그 자체가 깊이가 있게 된다. 그런데 동상을 보호하려거나 혹은 다른 의도로 덧칠을 하거나 별나게 다루면, 자칫 부자연스럽게 되기 십상이다.

특히 인조 녹색은 얼핏 자연의 초록 같아도, 기실 가장 비자연적이고 어색한 색상이다. 형태 못지않게 색채가 주는 영향은 매우 크다.


선생의 상을 올려다보며, 우리가 아는 전봉준에 얼마나 제대로 다가가게 될지? 혹시 엉뚱한 녹색의 이미지에 사로잡히지는 않을까.



3. 정읍 황토현 전적, 전봉준 선생 상

최초의 전승지로서 유명한 이곳, 제대로 “정화”된 전적지의 중심부에 전봉준 선생의 상이 건립되었다.


전형적인 기념상의 틀이다. 여러 스토리를 부조로 새기어 조형 벽을 만들어 주종의 구성을 갖추었다.

녹슬어 변하는 과정인지, 상의 옅은 청록색은 뭔가 호소하는 듯하다.


새겨진 전봉준의 절명 시,

“때를 만나서는 하늘과 땅도 힘을 합하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어쩔 수가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무슨 허물이라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황토현 전적 「전봉준 선생 상」

그런데 오히려 더 눈에 드러나는 것은 “정화 기념비”이다.

황토현 전적지 정화 기념비

국가 주도의 대규모 복원사업에 흔히 자리하는 자칭 상패와 같다. 물론 필요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했느냐 하는 실명제 역할일 뿐인데, 문제는 배보다 큰 배꼽처럼 정화 기념비가 더 거창하고 커지기 일수다.

기념했다는 행위를 기념하고 선전하는 꼴이다.

게다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훼손 사태도 종종 일어난다. 이곳 역시 다름 아니다.


한편, 2021년 4월 정읍시에서 “전봉준 선생 상”을 재 건립키로 결정하였다. 작가 김경승의 친일 전력문제와 작품의 역사적, 예술적 논란에 대응한 해결책이다. 새 동상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와 자주적인 국가보전이 중심인 동학농민군의 시대정신이 담긴 작품”으로 교체할 계획이라 한다.

황토현 전적 「전봉준 선생 상」 부분

작품만 볼 것인지, 작가를 감안할 것인지? 작가의 자격 논란은 계속되는 쟁점 중 하나이다. 특히 김경승의 경우는 심각하다. 그의 작품 중 서울 남산의 안중근 상은 두 번이나 철거되었다. 남산의 김구 선생 상은 아직 건재하다.  


그런데 만일 작가의 자격에 흠만 없다면, 작품은 어떠해도 괜찮다는 식의 논리 비약은 경계해야 한다. 절차에 문제가 없어도, “부실한” 작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4. 정읍 이평면,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기념물 자체가 과한 경우도 있다.  

“과하다”는 기념의 주제와 대상이 필요로 하는 알맞은 한도보다 지나치고 분에 넘치는 형상 제작을 일컫는 말이라 하겠다. 적절성의 과제이다.

정읍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부분

만석보 유지로 가는 길목, 이곳 이평리 넓은 농경지 경관 속 홀연히 나타나는 상징조형물은 낯설기만 하다.

한 자리에 있는 혁파 비각이나 정자 때문만이 아니다.

정읍「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전경

물론 주최 측의 주장은 다를 수 있다. 게다가 상징조형물은 기념의 영역에서도 살짝 벗어나 있다.

비록 상징조형물이라지만 그 명칭을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로 내세웠으니, 주제의 해석과 조형성, 즉 적절성의 가치 판단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에 전문적인 평가가 요구되지만, 그냥 보통 사람의 눈길도 한몫을 한다.


결국 과한 형태의 판단은 선입관 없는 신선한 시각에 맡기기로 하자. 물론 사진 한 두장으로 판단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기념 풍경이란 역시 현장의 분위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5. 고창, 동학농민혁명 기념탑

정읍 못지않게 고창은 동학농민혁명에 있어서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옛 무장현 동음치면 구수마을에서 포고문과 사대 명의 및 12개 조 기율이 선포되었고, 농민들 스스로 전국에 걸쳐 사회 개혁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내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고창 무장 동학혁명 기포지 「동학 농민혁명 기념탑」 부분

이곳 기념 풍경은 그러한 의도를 적극 담고 있는 듯하다.

 

기념탑의 형상은 “횃불”이다. 농민혁명의 강렬한 의지와 열성의 횃불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횃불 속에서 전봉준은 포고문을 선포하는 “역사적인 모습”이다. 주변에는 죽창이 호위하고 있다.


탑신의 비문 중 수수한 구절을 보자. 동학농민혁명 포고문,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것은 인륜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각자 그 생업에 편안히 하여 함께 태평세월을 빌고 임금의 덕화를 누리게 되면 천만다행이겠노라! 서기 1894년 3월 20일 호남창의소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고창 무장 동학혁명 기포지 「동학 농민혁명 기념탑」

횃불은 이해되긴 하나, 괜한 연상작용 탓인지 엉뚱하게 보이기도 한다. 마패 같기도 하고….

횃불답게 보여야 하는데, 보는 사람이 문제인가?



6. 장성 황룡 전적, 기념탑

높이 약 15m. 죽창이 이렇게 거대한 탑이 되어 치켜세울 수도 있다.

그 아래에 “장태”를 앞세운 동상이 나서고, 그 아래 청동부조가 황룡 전투를 묘사하였다. 박진감이 뛰어나다.


그런데 아쉽게도 첫인상은 고대 서양의 신화 속 한 장면 같이 보인다는 것. 어떤 전쟁 영웅 같다.

장성 황룡 전적 부조 부분

탑신 좌측면에 새겨진 시,

장성 황룡전적 기념탑

조선의 눈동자: 곽재구

“조선의 눈동자들은

황룡들에서 빛난다 …

그 모든 낡아빠진 것들과

그 모든 썩어빠진 것들과

그 모든 억압과 죽음의 이름들을 불태우며

조선의 눈동자들은 이 땅

이 산 언덕에서 뜨겁게 빛난다”

기념의 가치를 위해 어떠한 형상이든 마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창작의 폭을 넓히어 얼마든지 새롭게 해석하고 또 연출할 수도 있다. 다만 어색한 표현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결국 과제는 감정이입이며 공감대 형성이기 때문이다.



7. 전주 동학혁명기념관, 전봉준 흉상

전주 한옥마을 내 동학혁명기념관이 제대로 자리 잡았다. 관광지 속으로 파고든 셈이다. 작은 규모이지만, 나름 전시효과가 충분하다.

전주 동학혁명기념관 손화중, 전봉준, 손병희 흉상

3인 흉상은 사실적 표현을 의도하였다. 그런데 이 표정을 읽기 어렵다.

작은 모양새 하나가 달라져도 인상은 크게 변한다.

전주 동학혁명기념관 최시형 상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은 최시형 상이다. 강렬한 눈빛이 심오하고 비장미까지 느낄만하다. 그냥 바닥에 자리하니 더 다가온다. 고증을 떠나 존재감과 그 작품성이 충분하다.



8. 정읍 전봉준 공원, 장군 동상

수려한 내장산 한편을 갑오동학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전봉준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아름다운 내장호를 바라보며 동학혁명을 재현한 형국이다. 왜 이곳인지는 모르나, 자연 관광명소에 하나 더 더해진 셈이다.

정읍 전봉준 공원 김개남, 전봉준, 손화중 장군 상

좌우에 두 장군을 거느린 당당한 자세로, 전봉준 장군은 포고하듯, 세상을 향해 보란 듯, 꾸짖는 듯하다.

뒤편의 작은 동판화 시리즈는 묘사가 절절하다.

동판 부조 1, 「일본 침략에 항거한 삼례 집결 재봉기」

동상 뒤 100주년 기념탑이 높이 섰다.

주탑의 4 각뿔은 갑오동학농민혁명의 이상을 상징하고, 흰 대리석은 민족 봉기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특히 주탑의 높이가 1,894㎝라 한다. 1894년이므로. 상층부에 3단 3단 금태는 고부 농민봉기, 3월 백산봉기, 9월 삼례봉기를 상징한단다.

문경석으로 된 부탑은 사민(사농공상) 즉 온 백성들의 평등, 수평 사회를 상징하는 4개의 원기둥으로 이루어졌다. 조형의 논리를 갖춘 셈이다.

정읍 전봉준 공원의 갑오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

전면 비문: 갑오동학혁명 백주년기념탑 명문,

“… 갑오선열에 대한 신원과 국가적 예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1997년 5월 11일 갑오동학혁명백주년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9. 정읍 샘골의 빛, 전봉준 장군 부조

샘골의 빛, 전봉준 장군 부조

전봉준 공원 건너편, 3 거석으로 내장산의 아름다움과 정읍사의 여인과 그리고 갑오농민혁명의 부조가 어우러져있다. 정읍시의 “문화 상징조형물”이다.

그중 장군의 표정에는 아쉬움인지, 얼핏 보아서는 불만에 가득 찬 듯하다.



10. 순창 녹두장군 전봉준 관, 창의문을 선포하는 전봉준 장군

전봉준 장군이 잡힌 현장, 그래도 극복하기라도 하듯 3인 동상이 당당하다.

짙은 황동색과 잘고 거친 질감이 꽤 자극적이다.

순창 녹두장군 전봉준 관 「창의문을 선포하는 전봉준 장군」

이 모습이 더 현실적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선택은 우리 몫일뿐이다.



11. 서울 종로, 녹두장군 전봉준

도심 속에서 약간의 비대칭 기단은 정갈한 좌대로서 또 수수한 액자 틀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동상은 압송되는 사진의 장면을 재연한 모습인데….

서울 종로, 「녹두장군 전봉준」과 그 부분

기단 앞 바닥에는 영문 설명, “Statue of Jeon Bong-jun … ”


기단 이면에 한글 설명, 전봉준(全琫準, 1855~1895):

“동학농민군의 함성은 … 그리고 권설 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내린 다음 날인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이제 순국 123주년을 맞이하여, 국민 성금을 모으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운다.” 

서울 종로 「녹두장군 전봉준」 부분

마지막 모습의 조형화. 눈빛이 강렬하다. 전체적으로 세련되었다. 그리고 비장미도 갖추었다.


전국의 전봉준 상을 여럿 둘러보았다. 폭도에서 선생으로 다시 장군으로. 그리하여 불의에 행동하는 지도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기념 형상으로 만들어진 그의 이미지는 다채롭기만 하다.


이 시대 우리가 기대하고 다가가려는 전봉준의 이미지는 분명히 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전봉준을 보고 싶은 것이다. 결국 우리의 바람이 동상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어디인가? 아직 아닌가?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전봉준 장군 단소: 1954년 11월 25일 조성 1994년 5월 11일 및 2006년 12월 보완,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산 10-3, 단비 명 짓기: 김상기, 판화 제작: 전정호

2. 전봉준 선생 상: 1981년 10월 3일 건립,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권삼득로 390 전주 덕진공원, 글: 이상비, 글씨: 이규진, 제작: 배형식

3. 전봉준 선생 상: 1987년 10월 1일 조성,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황토현 전적, 글: 박영석, 글씨: 권갑석, 제자: 이규진, 조각: 김경승

4.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1994년 건립,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197-1, 제작: 나루

5. 동학농민혁명 기념탑: 1994년 4월 24일 건립,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운대로 308 고창 무장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조각: □□□

6. 장성 황룡 전적: 1994년 12월 조성,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 356. 글: 이상식, 시: 곽재구, 글씨: 강형채, 조각: 나상옥

7. 전봉준 흉상: 1995년 11월 10일 건립,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34 동학혁명기념관, 조각: 문정화

8. 장군 동상: 1997년 5월 11일 건립, 전라북도 정읍시 쌍암동 391 전봉준 공원, 찬(짓기): 최현식, 서(탑 제): 송하경, 명문 각자: 정진철, 작가: 전수천

9. 샘골의 빛: 2002년 12월 조성,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 호반로 214 인근, 작가: 박진희

10. 녹두장군 전봉준 관: 2005년 5월 4일 건립,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피노길 65-29, 조각: □□□

11. 녹두장군 전봉준: 2018년 4월 24일 건립,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제작: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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