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독립신문 창간에서 1909년 대종교 창시까지의 몇 기념 풍경
100년 전 기울어가는 조국의 주권을 지키고자 분투했던 선각자들.
그들의 열망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관련 기념 풍경이 그 통로가 되기를 바라며.
20여 년 동안 발생한 큰 사건 다섯은 관련 기념지가 없다. 부득이 각 사건의 주인공이랄까, 중심 역할을 한 선각자의 기념지를 통해서 다가가 보려는 것이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은 서재필, 1905년 천도교 성립은 손병희,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은 이준, 1907년 신민회 설립은 안창호, 1909년 대종교 창시는 나철. 그 외 1907년 국채보상운동은 현지에서 찾았다.
독립신문 창간을 주도한 서재필 선생의 동상이 서대문 독립공원에 있다. 1990년 건립되었다. 3·1 독립선언 기념탑과 독립문의 연결 축 사이에 자리하였다. 그만큼 높은 위상임을 보여준다.
좌대 금석문,
명문, “…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 개화 운동에 힘쓴 위대한 선각자이며 우리 민간 신문의 시조인 「독립신문」을 창간한 송재 서재필 선생의 공적을 간추려 명문을 대신한다.”
선생의 열망을 느낄만한지?
전남 보성, 선생의 생가 인근에는 서재필 기념공원이 있다.
서대문 독립공원의 동상보다 8년 뒤에 조성되었다.
안내에 따르면, 인위적 유적지로서 “근대 한국 민족의 선각자”를 위한 국민 교육장 건립을 목표로 하였다. 사당 송재사를 중심으로 기념관, 조각공원 등 여러 시설을 갖추었다. 도로 건너 서재필 조각공원도 조성되었다. 거의 테마파크형 기념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시절 탓인지 너무 한적하다.
서재필 기념관의 전시는 선생의 생애를 중심으로 여러 연출을 보여준다. 공원 가운데 서재필 선생의 동상은 난간석을 둘렀다. 작은 틀이다. 동상의 표정과 자세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이한 것은 독립문이다. 주최 측은 설계도에 따라 공원 내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복원이라 할 수 있는가?
복원은 하나임을 전제로 한다. 즉 원래 있었지만 없어지거나 훼손된 것을 본디 그대로 회복하려는 기법이다. 다만 복원이 완전한 회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다시 만든 것이 원래의 것이 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곳 독립문은 제2의 건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아무튼 서대문의 원 독립문이 무색해질 지경으로, 이 자체 제 모습을 뽐낸다.
서울 탑골공원의 손병희 선생 상은 삼일문을 지나 정면에 나타난다. 3·1 독립만세운동의 33인 대표에 걸맞은 위치이다.
여기도 기단을 만들었다. 그 위 좌대가 독특하다. 좌우 대칭적 비대칭이다. 간단한 구성이 자연스레 긴장감을 들어준다. 동상 표정에서 의기를 엿볼 만하다.
전면 비문, “… 산 같은 대의는 흔들리지 않았고 큰 뜻으로 역사를 움직여 이름을 천추에 드리운 이다. …”
비문처럼 이곳은 민족혼의 고향이다.
청주의 손병희 선생의 유허지에도 기념 풍경이 형성되었다.
넓은 유허지 중앙에 복원된 생가가 자리하였다. 가까이 동상과 사당도 모셨다.
그런데 선생의 동상은 좌대만 조금 다를 뿐, 탑골공원 것도 꼭 같다. 북향이라 눈부심 탓에, 한낮 동상은 더 높고 더 위엄 있게 보인다. 좌대에 천도교의 상징을 크게 새겼다.
기념관이 좌측으로 물러나 있는 배치가 자연스럽다. 전체 관람동선의 흐름도 고려하고, 시설 사이의 위계를 존중한 결과이다. 당연히 기념관은 마지막에 자리한다.
가까이 청주 3·1 공원에도 손병희 선생의 상이 있다.
청주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우암산 기슭 이곳, 공원의 명칭에 걸맞게 3·1 만세운동 관련 기념지로 변모하였다.
청주 출신 인물 다섯, 즉 동오 신홍식, 우당 권동진, 의암 손병희, 청암 권병덕, 은재 신석구 다섯 선생의 동상이 나란히 섰다. 이어서 큰 횃불 조형물이다. 황동색이 짙게 다가온다. 너무 강렬하다.
배경의 화강석의 조형벽 중앙에 태극기 형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운동하는 활동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그 자체가 펄럭이듯 곡선을 취하여 율동적이다.
대구 콘서트하우스 앞에 이전 설치되었다. 당시 북후정 자리로서 운동의 현장이다.
국채보상운동은 경제적 구국운동의 기림이다. 기념비는 남 여 상인 3인의 청동상은 하나가 되어 합심과 협동을 보여준다. 동상의 형상이 비교적 차분하다. 그런데 더불어 구성된 큰 반타원형 조형과 철재 패널은 어떤 의미인지? 국채보상운동의 정수를 표현하려는 듯하다.
국채보상운동 기념비에 이어서 대구 도심 국채보상 기념공원에 여성 기념비가 설치되었다. 여성의 참여를 부각한 점은 이해된다.
제작 의도에 따르면, 큰 2개의 석조 원환이 겹쳐있는 형상으로 금가락지 형상이다. 가락지의 폭이 2m에 이른다.
그러나 가락지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정 형태를 의도할 경우, 사실적이든 아니든, 그 의도한 표현의 전달이 관건이 되기 십상이다.
여성 기념비의 정면에 새겨진 비문,
경고 아 부인 동포라
“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짜 남녀가 다르리요. …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니 부인을 논외로 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 중 일몰이 아니오. … 본인 등은 여자의 소처로 일신 소존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적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물구하고 혈심 의연하와 국채를 청장하심이 천만행심.
정미 정원 삼일일 (1907년 2월 23일)
발기인에 대구 동상 남일동 … 김수원 처 배씨 은연화등 일개 두냥 구본중”
국채보상운동 발상지 광문사 터 조형물
옛 광문사 터. 다소 좁은 이면도로의 옆 작은 녹지 속에 겨우 자리하였다. 조형물은 원석과 다듬어진 책장 같이 여러 겹의 화강석판으로 이루어졌다.
“2년여 동안 불타오른 국채보상운동의 첫 불길이다.”
기념의 가치를 내보인다. 존재감을 알아달라는 듯하다. 안내 홍보물이 여럿이다. 거리벽화가 통속적이다.
김광제, 서상돈 흉상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는 관련 기념관과 기념물이 몇 있다. 오히려 달구벌대종을 비롯한 도심 공원으로서의 중심기능이 더 우세하다.
두 인물 상은 저항 운동의 주체성, 그리고 헌신과 자유의 귀감을 바라는 자율성을 중시한다고 한다. 사실적 인물 표현이다.
설명문,
“ … 들불처럼 전국으로 확산된 … 이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길이 귀감이 되게 하기 위해 이 운동 100주년을 맞아 두 지사의 흉상을 건립하다.”
국채 보상가
“애국심이여, 애국심이여,
…
지금 우리 국가 간난한데
누가 이런 열성 가질건가.
경상도 대구의 서 공 등
사람마다 찬미하도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앞에 좌대 높이가 0.45m에 자연석의 길이가 3m에 달한다. 길게 이지러진 형태가 얼핏 팔공산 형태 같기도 하다. 좌대가 마름모꼴을 취해서 안정감을 준다. 제한된 크기의 좌대를 극복하려는 듯 자연석이 좌대보다 길다.
장충단 공원 한편 언덕 위에 당당히 섰다. 좌대 높이가 약 5m에 달한다.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자세가 도전적이다. 울분을 감춘듯한 표정이다. 그런데 얼굴이 꽤 넓고 크다. 표준 영정이 없으니 판단도 어렵다.
설명문,
“… 의분을 이기지 못하고 할복 자결함으로써 세계만방에 대한독립의 정신을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
그의 유언,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고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으니 살아도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않고 잘 죽으면 오히려 영생한다.”
열사의 의분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지….
서울대학교 교정에 최초로 건립된 인물 전신 동상이다. 그만큼 위상이 높다는 뜻.
뭔가 다른 듯한 캠퍼스 분위기에서, 청동상은 벌써 시간이 흐른 듯, 세월의 빛이 새겨진 듯하다. 범상하지 않다. 양복 정장 차림으로 콧수염까지 기른 열사는 담담한 포즈이다.
좌대 앞,
이준 Yi Jun 1859~ 1907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 이준 Great person should be the blood of life for the motherland.”
50년 전 조성된 도산공원은 안창호 선생의 애국심과 교육정신을 기념하는 뜻으로 명명되었다.
서울 강남 도심에 위치하면서 안창호 선생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기념관은 물론 부부 묘까지 모셨다.
중앙의 동상은 그 은근한 금빛이 예사롭게 여길 수 없게 만든다. 좌대 또한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순하고 듬직하다. 나름 비례감을 살렸다. 선생의 사상과 열정을 아니 최소한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의 교훈,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백성의 질고를 어여삐 여기거든 그대가 먼저 의사가 되라 의사까지는 못되더라도 그대의 병부터 고쳐서 건전한 사람이 되라.”
사진 71점과 신채호 선생이 미국에 있는 안창호에게 보낸 서한 등 편지 19점, 흥사단 문서 48점, 임시정부 사료집, 도산 일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매년 3월 10일 흥사단 및 도산 기념 사업회 주관으로 도산 선생 추모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활발한 편이다.
기념관 안팎 포토존의 동상은 통속적이다. 기념에 있어서 참여는 큰 역할을 하게 만든다.
공원 내에 어록비가 여럿 있다. 그중 정문 옆에 어록비, “도산 기상”은 거대한 자연석으로 높이 약 7m에 이른다. 크기가 결코 전부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큰 것에 경외하게 된다.
1909년 나철 선생은 대종교를 근대적인 종교로 중광한 나철 선생의 동상은 천안의 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민족 역사문화공원은 건립취지문에서 밝히고 있다.
“… 한민족 역사문화공원은 홍익정신으로 새로운 한민족의 탄생을 이루고, 지구 경영의 시대를 열겠다는 민족 서원의 장이며, 인류평화교육의 전당으로서 역할 …”
동상은 사실적인 표정과 모습이 인상적이다. 간략한 좌대에 높게 자리하였다.
멀리 전남 보성 벌교의 나철 선생의 고향에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기념관 바로 이웃하여 그의 생가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전통건축 형식이다. 안팎 공간 규모는 큰 편인데, 공간의 효율성이 높지 않다. 전시 내용이 대부분 일차적이다.
일부 내용을 새긴다.
“… 나철은 을사늑약 소식이 알려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여러 차례 일본을 건너가 국권 수호를 위한 외교활동 … 1907년 비밀결사 자신회를 결성하여 ‘을사오적’ 처단을 주도 …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일제의 무단적 종교정책에 항거하여 자결”
얼마나 제대로 선각자들의 열망에 다가갈 수 있나?
기념지이든 기념물이든 모두 형식이다. 우리 근대사 위인의 기념은 형식에서 한 단계 뛰어넘어 그 정신에 다가갈 수 있도록 통로 역할을 제대로 해주어야 한다. 기념의 교육적 순기능 문제이다.
1. 일성 이준 열사 상: 1964년 건립,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10 장충단 공원, 글: □□□, 글씨: □□□, 조각: □□□
2. 탑골공원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1966년 5월 19일 건립,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38-1, 글: 이은상, 글씨: 김충현, 각자: 손재형, 조각: 문정화
3. 도산공원, 도산 안창호기념관, 도산 안창호 동상: 1973년 11월 9일 도산공원 조성, 1998년 11월 9일 도산 안창호기념관 개관, 1973년 11월 9일 동상 건립, 2003년 5월 13일 동상 재건립,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20, 조각: 이승택, 포토존 동상과 좌상 제작: 이후 디자인
4. 손병희 선생 상: 1980년 8월 15일 3·1 공원 준공, 2010년 3월 1일 중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159-1 삼일 공원, 조각: 문정화
5. 송재 서재필 선생 상: 1990년 4월 7일 건립,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서대문 독립공원, 조각: 김경승, 명문: 이관구, 저자: 김응현, 조경: 이교원
6. 서재필 기념공원, 애국지사 송재 서재필 선생 상: 1991년~ 2003년 공원 준공, 1998년 독립문 복원, 2001년 3월 1일 동상 건립,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길 8, 글씨: 전종주, 조각: 김행신
7. 국채보상운동 기념비: 1997년 10월 6일 건립,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 141 대구 콘서트하우스, 글: 여영택, 글씨: 정계근, 제작: 이상일
8. 손병희 선생 유허지, 성사 의암 손병희 상: 2000년 3월 1일 전시관 개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의암로 234 의암 기념관, 조각: 문정화
9.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 2006년 2월 21일 건립,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 10길 25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감역: 이상원, 제작: 이상일
10. 김광제, 서상돈 흉상: 2007년 2월 21일 건립,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 10길 25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제자: 백영일, 제작: 이상일
11. 홍암 나철 선생 상: 2008년 10월 3일 건립,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교천 지산 길 284-88 한민족 역사 문화 공원, 글: □□□, 조각: □□□
12. 이준 열사 상: 2012년 4월 25일 건립,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서암 법학관, 글: 최종고, 글씨: 정종섭, 제작: 최인수
13. 홍암 나철 선생 기념관 흉상: 2016년 11월 개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녹색로 5163, 조각: □□□
14.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2017년 10월 30일 등재. 2019년 2월 21일 제막,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