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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대 Apr 14. 2021

의병 정신 구현하기

1895년 을미사변과 그후 의병 항쟁의 기념 풍경

이 시대 기념 풍경을 통해 100년 전 의병정신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1895년 을미사변, 1895년 을미의병, 1905년 을사의병, 1908년 의병 서울 진공 작전 등에 대응하여 조성된 몇 기념지를 통해 알아보자.



1. 명성황후 생가 유적지

을미사변을 기리는 기념 현장으로서 의의가 크다. 생가를 중심으로 여러 시설과 기념물이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안쪽의 명성황후 기념관 형태가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의 요소를 절충하여 흥미롭다. 긴 처마가 이채롭다.

명성황후 기념관

건천궁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명성황후 순국 숭모비는 이 유적지 드넓은 평지 중앙에 자리하였다. 사방이 틔어 접근 동선이 산만하다. 마주 하니, 그나마 생가를 배경으로 하여 모양새를 갖추었다.

숭모비는 영정이 부조된 동판을 모신 오석 벽을 받든 좌대 형식이다. 안정적이고 격을 갖추었다. 조용히 다가오듯 친근감이 들 정도이다. 차분하다.

명성황후 순국 숭모비, 명성황후 추모비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 명성황후 추모비는 작지만 강한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두 직사각형 기둥과 그 사이에서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명성황후의 모습을 비문으로 표현하고,  또 상부의 빛 형태 조형물은 황후를 상징한다고 한다. 


숭모비는 전형적인 형식을 중시하였고, 추모비는 상징과 의미를 내세웠다.

나름대로 그 의도를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두 비는 모두 명성황후를 기리는 데, 그 형태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 

생가 본채와 별당

명성황후의 영정 자체의 문제는 별도로 치고,


복원된 생가 감고당의 별당의 닥종이 인형이 옛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구체적인 인형이 귀엽기만 한데, 황후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관람객 눈높이를 감안한 배려일 수 있겠으나, 자칫 테마파크 분위기가 될 수 있다.


비통함을 새기려면 차라리 “나 가거든” 노래를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다.



2. 신돌석 의병장 기념관신돌석 흉상

태백산 호랑이 별명의 신돌석은 평민 출신으로 나이 30에 반역 부하에게 타살당한 비운의 의병장이다. 

기념관 전체 배치가 애매하다. 북측에서 진입하게 되니, 전통건축 배치와 엇갈린다.

신돌석 의병장 기념관의 월송정 시비, 신돌석  흉상, 전쟁 기념관의 신돌석 흉상

신돌석의 월송정 시,

“누에 오른 나그네 갈 길 잊은 채

단군의 옛터가 쇠퇴함을 한탄하네

남아 스물일곱 이룬 것이 무엇인가

추풍에 의지하니 감개만 솟는구나”


27살에 지은 한시, 그런데 글씨는 본인 것이 아니다.

비분강개함을 내세워야 하는데, 두 인물상은 후덕함을 보여준다. 초연한 것인가.



3. 13도 창의군 탑

탑은 높이 15m의 삼각뿔 형태이다. 삼각으로 펼쳐진 하부는 거친 돌벽으로 마감하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대지에서 오르는 상승감도 보탰다. 스케일감도 일부 느낄만하다.

13도 창의군 탑

“… 이곳은 비록 서울을 탈환하지는 못하였으나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려는 연합의병들의 고귀한 뜻이 깊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서울 망우리공원의 13도 창의군 탑과 전주의 전북지역 독립운동 추념탑이 비교된다.

1991년 7월 31일 건립된 13도 창의군 탑과 1994년 7월 21일 건립된 전북지역 독립운동 추념탑

전체 분위기와 삼각형의 주탑 형태와  석상 형태는 물론, 마감재료와 탑신의 모양새, 흑백의 구성까지 대부분 비슷하다. 

13도 창의군 탑의 석상 부분과 전북지역 독립운동 추념탑의 석상 부분


문제는 기념 대상과 주제가 전혀 다르다는 것.

전문가의 심미안으로는 같지 않다고 주장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인 시선으로서는 어찌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


과거에는 전통비탑처럼 몇 형태가 대부분인 경우가 있었지만, 현대는 그 틀에서 벗어났다. 많은 시도가 있고 실재 작품도 많고도 다양하다. 이중 삼각형 기념탑이 물론 표준이 된 것이 아니다. 


기념풍경 제작이 추진 주체나 작가에게 너무 좌우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 창작도 아니요 순수예술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기념의 목적을 지니기 때문이다.



4. 제천 의병 기념탑

자양영당 인근 전시관 진입부에 높이 15m 탑이 섰다.

멀리서 보면, 차분히 펼쳐진 탑 분위기인데도 꼭대기가 사선으로 꺾인 주탑이 예사롭지 않다.

제천의병 기념탑

작가의 설명, 

“곧게 솟은 주탑의 수직 상승 감은 진취적인 의를 위한 의병의 항거 정신을 뜻하고 윗부분의 깨어진 흔적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불굴의 저항정신과 자유를 표상하였으며, 

아랫부분의 부조는 8도 의병과 제천의병의 활동 모습을 서사적으로 표현하여 항일투쟁의 기본정신을 나타내었다.”

제천의병 기념탑 주탑 부분

주탑의 부조는 여러 반나체의 남녀 상으로 위로 길게 펼쳐졌는데, “서사적 표현으로 의병의 항일 투쟁 정신”을 나타낸다고 한다. 

작품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투쟁과 희생과 고통과 환호 등 온갖 모습이 섞였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시대착오적 이해가 될지 염려된다. 허기야 다루는 정신 자체가 시대를 초월한다고 할 수 있으니 무방하다고도 하겠다. 그래도 누구나 자신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보기 마련이다.

제천의병기념탑 좌 우 조각상

“탑 우측의 2인 조각상은 의병의 주체인 유생과 농민을 형상화하여 민족의식과 투쟁 의욕을 나타내는 의병정신을 상징한다. 좌측의 3인 상은 당시 굴복하지 않는 의병항쟁의 실제상황을 생생하게 형상화하여 역사성을 일깨우게 하였다.”



5. 강릉 의병항쟁 기념탑

강릉 통일공원의 한쪽에 동해를 바라보고 자리하였다. 즐비한 기념물 중 하나이다 보니, 의병 항쟁의 주제가 조금 상쇄되는 듯하다.

탑신은 두 가닥인데 그 평면이 태극 문양이다. 위로 갈수록 더 커지는 형태이니 마치 바닥의 태극이 공중으로 치솟는 형상이다. 

강릉 의병항쟁 기념탑

책 조형물의 교훈, “의병이란 민군이다. 국가가 위급할 때 즉시 의로써 일어나 조정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서 스스로 종군하여 적과 싸우는 사람들이다.”     

강릉 의병항쟁 기념탑 탑신과 부분

전통요소와 현대적 감각이 함께 하였다. 



6. 청송 화전등 항일의병 기념공원, 무명 의병 용사 충혼탑

건립기에서 밝히고 있다. “… 미래정신으로 요망되는 의병정신은! …  효제충신에서 온 선비정신이 행동으로 나타난 민족자존과 국권수호를 위한 국난극복에 솔선수범하였던 나라사랑 호국정신으로서 …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정신문화인 의병정신을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 


즉 의병정신을 실천하는 선비정신으로 꼽았고 그 전파의 중심지를 꾀하고 있다.

청송 항일의병 기념공원 기념관, 도움비 명각대

그런데 이곳 화전등 언덕 위에 위패 사당을 중심으로 의병기념관, 창의루 등 주요 건물은 물론 화장실까지  모두 전통건축양식의 건물이다.


명각대는 의병 유공 선열 2,564명(2017년 8월 15일 현재) 전원의 이름과 훈격을 도별 가나다순으로 명각한 8폭의 오석판을 폭 9m, 높이 3m의 화강석 원석에 부착하였다. 거창하다. 그런데 판 곳곳에 이름을 파낸 자국이 남아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한계다.

무명 의병 용사 충혼탑과 접근 계단

전국의 “15만 명의 무명 의병 용사”를 추모하는 무명 의병 용사 충혼탑은  화강석 통석 90계단과 “의병정신 열주” 돌기둥 12 명문과 15m 높이의 주탑으로 구성되었다. 

무명 의병 용사 충혼탑

건물과 배치 등이 전통양식을 취한 이곳에서 충혼탑의 형태가 부조화스럽고 이질적이다. 사선 구성의 탑신이나 좌대까지 일체감을 보여주지 않는다. 또 계단 가에 늘어선 의병정신의 구호를 새긴 열주 형식이 낯설다.



7. 홍주 의병 기념탑

홍주의사총의 우측 언덕 너머 자리하고 있다. 

넓은 공간에 큰 바닥판을 깔고 그 위에 18m의 2 탑신을 중심으로 금속 구, 태극기, 동상, 조형벽 등이 결합되어 있다. 즉 원과 곡선과 수직·수평선 등이 기하학적 구성을 이룬 셈이다.

홍주 의병 기념탑 전경

홍주의병 기념탑 준공비, 

“… 기념탑은 삼재(하늘, 땅, 사람)를 의미하는 기본 구도 위에, 홍주성과 월계천, 홍성천을 형상화한 기단/ 거병 연도(1895, 1906)를 담은 두 개의 탑신/ 홍주의병을 상징하는 인물상과 부조/ 홍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소통하는 구와 문주/ 홍주의병사를 기록한 기념비 등을 조형화하여, 홍주의병의 호국정신을 보여주고 …”

의병활동의 기념과 지역 풍토에 시간 변천까지 함께 하여 조형화하고 있다.

동상 군 부분과 충혼

충혼은 변형된 태극기 형상의 조형물이다. 

그 의도는,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영혼/ 겨레를 위해 일제와 맞선 홍주의병, 그 영원한 사랑 겹겹이 쌓인 ‘홍주의병 기념탑’을 마주한다. 이제 옷깃을 여미고, 그 의로운 마음결을 되새기며…” 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런데 태극기를 마주하는 의병 동상의 모습이 전투적이라 헷갈린다. 자칫 오해소지조차.

홍주 의병기념탑 부분과 군상

의병정신을 구현하는 기념은 보다 더 시민중심이 되어야 한다.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존중하고, 자발 의식을 받아들이며, 특히 의병 고유의 정체성을 발현하는 형식과 방법이 절실하다.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신돌석 의병장 기념관신돌석 흉상: 1965년 7월 영덕 우곡리 조성, 1999년 11월 18일 이전 유적지 성역화,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신돌석장군길 218, 흉상 조각: □□□

2. 신돌석 흉상: 1965년 7월 설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 전쟁기념관, 조각: □□□

3. 명성황후 기념관명성황후 순국 숭모비: 1981년 경복궁 내 건립→ 2001년 3월→ 2007년 이전,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 명성황후 기념관, 기념관 건축: □□□, 전시: □□□/ 명성황후 순국 숭모비 비문: 박종화, 글씨: 김충현, 조각: 민복진/ 명성황후 추모비 글: 김남조, 글씨: 구자송, 조각: 이영섭, 신건화

4. 13도 창의군 탑: 1991년 7월 31일 건립,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 57-3 망우리 공원, 글: 최영희, 글씨: 박원규, 설계·제작: 김영중    

5. 전북지역 독립운동 추념탑: 1994년 7월 21일 탑 건립.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1가 234-16, 조각: 김수현     

6. 제천의병 기념탑: 2001년 10월 26일 건립,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의암로 566-7 자양영당, 조각: 김종호

7. 강릉 의병항쟁 기념탑: 2010년 5월 7일,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산 45-49 강릉 항일 기념공원: 설계·시공: 아름다운 세상 조형연구소, 조각: 이경순

8. 청송 항일의병 기념공원 기념관무명 의병 용사 충혼탑: 2011년 6월 2일 개관,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청송로 4123, 충혼탑 2017년 6월 제작: (주)예홀

9. 홍주 의병 기념탑: 2013년 2월 28일 준공,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379 홍주의사총, 조각: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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