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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대 Aug 01. 2021

남북관계에 엇갈린 소망과 희생

1968년 1·21 사태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까지의 몇 기념 풍경

20C 후반 한반도, 남북의 대립은 극심했다.

상호교류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무력도발이 잇달아 발생하였다.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화합의 소망은 정녕 가식이었던가?     


사건마다 위령탑을 세우는 비통함이 계속되는 가운데, 희망의 끈이 이어질 듯 아니 끊어질 듯했으니….     



1. 최규식 경무관, 정종수 경사 상: 1968년 1·21 사태      

서울 창의문로 오르막길, 사태 현장 조금 위 자하문 쪽 녹음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두 동상이 보인다. 차량은 무심코 지나는데.

1968년 1월 전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1·21 사태의 두 전사자를 기리는 기념지이다.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과 정종수 경사 순직비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은 사실적인 표현에, 굴하지 않는 높고 당당한 자세를 보여준다.


금석문:

"… 비록 한 때의 비극 속에서 육신의 생명은 짧았으나 의를 위하는 그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으리라…."

비대칭의 기단이 엄정한 형식을 다소 완화하는 효과를 준다. 부조는 구현하는 리더의 모습이다.      


정종수 경사 상은 기단을 감싼 동판 부조가 비둘기와 무궁화를 새겨서 마치 휘장 둘린 듯하다.


금석문:

"조국과 자유를 위해 순직한 동지의 거룩한 뜻과 행적을 기리며"

오석의 순직비가 문득 비극임을 환기시킨다.

사건 현장에 순직비가 세워진 경우는 드물다. 현실적 의의가 크긴 하다만, 자칫 열린 번잡함에 경건한 분위기가 약해질 수도 있다.

정종수 경사 순직비와 흉상,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그런데 최규식 경무관의 입상은 순직 1년 만에 건립되었으나, 정종수 경사 흉상은 순직 49년 만에 겨우 자리하였다.

어색한 일이다. 계급 차이 때문인지? 규모와 형식이 차별된 것도 좀 그러한데, 하물며 거의 반세기 시차는 납득하기 어렵다.



2. 이승복 상: 1968년 울진 삼척 무장공비 사건

이승복기념관은 산지 속 넓은 터에 자리하였는데, 여러 시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있다.

본관 전시실에는 이승복과 가족의 유품에 더하여 유화, 훈장, 법정 공방 자료, 추모 자료 등을 갖추었다. 살던 집을 재현해놨고, 다니던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장을 재생하듯이 1960~70년대 교실을 복원하여 당시 기자재까지 갖춘 전시장으로 꾸몄다.

한때 반공교육의 일번지였으니 안보교육 의도가 컸다. 이제는 퇴색하여, 자연학습장과 강원교육홍보관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만, 그 효과는 미지수.

강원도 평창군 이승복 기념관의 이승복 어린이 상: 정면과 측면 부분

회칠한 듯 너무 흰 이승복 상은 2.3m 높이의 간단한 기단에 올려졌다. 더하여 큰 틀 작용을 하는 직사각형 테두리를 갖추었다. 일종의 열린 탑 역할이자 조형성도 갖추어 효과가 충분하다. 상부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그 유명한 절규를 덧붙였다. 주춤거리는 자세, 저항하듯 내젓는 두 팔이 안타까워 보인다.

이승복 기념관의 다른 동상과 부조, 초등학교 앞 동상

교사 옆 동상은 기단이 높이 약 1.6m, 그 옆 비의 기단은 약 1.25.m 높이에 지나지 않는다. 동상은 옹골찬 모양에 성난 얼굴이다. 부조에는 상황과 바람을 연출하듯 비둘기까지 새겼다. 문 왼편 작은 이승복 동상은 작고 평범한 어린이 모습이다.


높게 올려다 보이는 뒷산 중턱의 가족 묘지에는 최근 작고한 아버지까지 모셨단다. 그런데 비탈면의 소나무를 거의 다 베어서 황량하다. 그 위에서 잘 보인다고 한다.

이승복 기념관의 전시 1

일부 기념관과 무관한 시설도 보인다. 변신을 꾀하는 중.


마치 폐관 수순을 밟는 듯 적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만일 이렇듯 국가 기조의 변화에 따라 반공 시설이 없어진다면, 북한도 같은 논리로 반한적(?) 시설과 우상을 없앨까?


          

3.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일반에 공개된 이곳은 서울 성북구 의릉 구역을 가로질러 접근할 수 있다. 숲 속에 숨은 듯하다.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 종합학교 내 등록문화재 강당

1962년에 2층의 철근 콘크리트조로 된 강당(연면적 466.28㎡)을 신축하고, 1972년에는 인접한 회의실(연면적 234.7㎡)을 추가하였다.

1972년 7월 4일 이곳에서 남북 화해를 위한 첫 번째 국가적 시도의 결과,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 되었다.

강당 내 2층 회의실

강당 실내는 평범하다. 회의실은 창이 크게 열렸지만, 나무숲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칭적인 탁자 배치가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신축 이래로 강당의 무대 바닥의 마루판을 교체하고 조명을 손질한 정도이며, 회의실은 의자 커버를 정비한 정도일 뿐이란다. 거의 그대로이다.     


건축형태가 기능적이면서 단순하니 그 어떤 군더더기가 없다. 재 도색한 짙은 회색 벽조차 무거운 듯 가라앉는 분위기이다. 대립과 화해에 대한 선입감 탓일지.


        

4.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희생자 위령탑: 1983년 KAL기 피격 참사     

구소련이 저지른 참극이다. 남북 대립은 간접영향으로 볼 수 있으니, 여기에 함께 다룬다.


충남 천안시 망향의 동산 내 오른쪽에 자리하였다.

비행기의 날개 같은 두 탑신을 모아서 높이 26.9m의 탑을 이루었다. 희생자 269위를 감안한 높이다. 더하여 희생자의 국적 16개국에 맞추어 탑신의 단이 모두 16단이며 빗살 또한 16개로 새겨졌다. 좌우 두 청동 군상도 남녀 16인이다. 좌절에 빠진 그리고 희망을 품은 자세이다.    

충남 천안시 망향의 동산 내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희생자 위령탑

사건 경위: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인류의 이상과는 달리 비인도적인 참극이 소련에 의해 저질러졌으니 …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폭력적인 만행과 인류평화에 대한 도전은 반드시 후세에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아래 전면에 희생자 명단을 탑신 안쪽의 오석판에 새겼다. 마치 객실 속 같다.


헌시:

… 오 영령들이여 그 희생이여

유구한 역사 속에서 생생히

온 인류의 생존을 위한

불멸의 증인으로 길이

이곳에 있으시려니     


명복이여

평온이여

이곳에 영원하여라     


“자유와 평화의 증인”이라      

대한항공여객기 피격희생자 위령탑의 명비 제단과 좌우 동상 군

이 탑의 조형은 상징적 형태와 수치로 이루어졌다. 항공기 모양에 여러 숫자 꿰어 맞추기 등.

다만 그 자체가 위령탑의 형상을 합리화시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자기만족의 수단인가?


그런데 상징의 효과와 타당성 여부를 떠나, 여기에서는 다행히 숫자 맞춤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희생자 위령탑은 그 자체로 빼어난 기념 풍경이다.

무겁게 가라앉아있지 않다. 승화를 기원하는가? 날개를 고이 접은 그리하여 이제는 영면에 드는 형상이다.     



5. 버마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위령탑: 1983년 아웅산 사건

사건 1년 만에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관광지 내 초입 좌측 터에 세워졌다.  


설명문:

"탑 높이 17m 탑신, 계단 등 각 17개는 희생된 열일곱 분을 상징하며 중앙 1개 지주에는 대통령 각하께서 친히 쓰신 탑명이 조각되어 있다. 4기의 청동 군상은 외교를 통한 국력신장, 민족화합, 조국 번영, 승천 영생의 뜻을 나타내고 있으며 탑 정면에 마련된 “구원의 불꽃”대는 순국하신 분들의 명복과 영생을 빌기 위한 것이다."


설명이 충분하다. 더하여,

폭이 30m에 달하는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크고 완만한 반구형 기반 위에 17 결이 모여서 높이 17m의 탑신 하나를 이루었다. 17 결 혹은 17가닥은 그 의의가 충분하다. 전체는 물론 개별 위령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관광지, 버마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위령탑

주변에 청동 군상 넷은 염원을 한풀이하고 있다. 용암처럼 치솟듯 탑은 못 이룬 응집 그 자체이다.


17위:

부총리 서석준, 외무부 장관 이범석, 상공부 장관 김동휘, 동력자원부 장관 서상철, 대통령 비서실장 함병춘, 주 버마 특명전권대사 이계철,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김재익,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하동선, 재무부 차관 이기욱, 농수산부 차관 강인희, 과학기술처 차관 김용한,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국회의원 심상우, 대통령 주치의 민병석,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 이재관, 대통령 경호실 경호원 한경희, 대통령 경호실 경호원 정태진,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이중현     


이곳과 별도로, 사건 발생 31년인 2014년 사건 현장에 아웅산 묘역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틈"을 활용한 추모비는 그 자체 기림의 가치가 대단하다고 본다.

     


6. 화합과 통일의 염원 상: 1985년 남북 고향방문단 상호교류

서울 종로구 이북 5 도청 내 주차장 경계 녹지에 있다. 거의 막다른 이곳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시멘트 좌대의 높이는 1m, 폭은 3.8m. 조형물의 높이는 약 2.8m 정도이다.


설명문:

“… 지금까지 겪어온 국토분단과 혈육 이산의 통한을 민족화합과 평화통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7천만 겨레의 절절한 염원을 담은 ”     

서울 종로구 이북 5 도청 내 화합과 통일의 염원 상

대립과 반목에서 화해와 소통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형상이다. 거의 균등한 양측이 장애를 뚫고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있다. 철조망은 헤쳐지고 한 축의 두 바퀴는 궤도를 이탈했지만.

화합과 통일의 염원 상 부분

조형물은 강력하다. 파괴 후 창조를 역설하듯.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우리 모두 나아가서 북녘땅 사람들까지 모두의 염원이다. 통일과 함께하기. 그 염원을 담은 이 조형물은 기념이라기보다 희망을 노래한다. 좀 더 널리 알려지고 더 많이 보이면 좋으련만.


소망대로 이루어졌으면….


   

7. 대한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1987년 KAL기 폭파사건

서울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속 깊숙한 곳에 자리하였다. 멀리 차량 소음만 들릴 뿐, 의외로 조용하다. 숲 속 넓은 빈터 중앙에 탑이 자리하였다.

서울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대한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탑의 형태는 안정적 구도인 삼각형으로서 양면성을 갖추었다. 정면은 명비를, 이면에는 115위의 희생자 명부를 새겼다. 양측 다 제단을 갖추었다.      

대한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측면

그런데 삼각 테두리에 거친 화강석이 걸쳐있다. 건실한 구조물에 뭔가 녹아 흘러내리는 듯하다. 구름이 녹은 것인가.

측면에서 보면, 거친 돌의 비탈이자 어떠한 멍에처럼 굳어버린 딱딱한 껍질 같기도 하다. 무거운, 뭔가 어쩔 수 없는 막무가내이다.


조형은 상승과 하강을 동시에 보여준다. 위로 비상하려는 삼각 구도가 짓눌린 형국이다.



8. 강릉 무장공비침투 희생자 위령탑: 1996년 강릉 무장공비침투사건          

강원도 강릉시 강릉 통일공원 내에 세워졌다. 당시 북한 잠수함 침투 장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희생자 17위를 위령하는 탑은 높이 10m로서, 바닥에서부터 위로 명문과 부조벽화에 더하여 태극 링을 받든 여인상을 올렸다. 그 뒤로 태양 등 다양한 이미지를 얽어 채운 아치 틀을 구성하여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강릉 통일공원 내 강릉 무장공비침투 희생자 위령탑

탑 하부는 전통 석탑의 그것에 비슷한 형태를 갖추었다. 그러나 상부는 서양의 고전적 신전의 인상을 준다.

여러 단계가 있듯이 쌓아지다 보니, 복잡다단하다. 하나의 큰 조형물 같은 분위기이다.

좌초 지종 여러 이야기와 소망까지 담아내려 하니, 자칫 주목적인 위령의 분위기가 약해질까 염려스럽다.



9. 6·15 남북 공동선언 비: 2000년 남북정상회담

서울 연세대학교 캠퍼스 내 이한열 동산에 자리하였다. 선언문 자체만 동판화로 새긴 작은 명패 형식이다.     


이 역시 역사적인 사건인만큼 어딘가에 기념은 필요하다. 선언 즉 약속을 잊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왜 이곳에 자리했는지?

서울 연세대학교 캠퍼스 이한열 동산 내 6·15 남북 공동선언 명판


돌아보면, 감동을 주는  위령탑이 드물다.


정녕 안타까움에, 그리고 사무침에 가슴 저리게 하는 위령의 기념 풍경은 불가능한가.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1969년 10월 21일 건립, 2017년 6월 5일 재/이전 건립,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산 1-1, 글: 이은상, 글씨: 김충현, 조각 및 제작: 이일영

2. 정종수 경사 순직비: 1970년 1월 21일 건립, 흉상: 2017년 6월 5일 건립.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산 1-1, 흉상 추모의 글: 이은상, 조각: 류경원

3. 이승복 기념관, 이승복 어린이 상: 1982년 10월 26일 조성 건립,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운두령로 500-11, 기념관 건축: □□□, 이승복 상 글씨: □□□, 제작: □□□

4.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 희생자 위령탑: 1984년 9월 1일 건립,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요방리 55-4 망향의 동산, 탑 명 쓰기: 전두환, 헌시: 조병화, 글씨: 김기송, 조각: 백현옥

5. 버마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위령탑: 1984년 10월 9일 건립,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472-7 임진각 관광지, 건립: 파주시민과 파주시장, 글: □□□, 헌시: □□□, 글씨: □□□, 조각: □□□

6. 대한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1990년 11월 29일 건립,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234 양재 시민의 숲, 조각: 박석원, 시공: ㈜경한 석재

7. 화합과 통일의 염원 상: 1993년 9월 23일 건립,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길 64 이북 5 도청, 제작: 주해준

8. 강릉 무장공비침투 희생자 위령탑: 2000년 6월(8월 29일?) 건립,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616 안인진리 강릉 통일공원, 조각: 김훈

9.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 2004년 9월 4일 등록,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37 한국예술 종합학교 등록 문화재 강당, 건축설계: 나상진

10. 6·15 남북 공동선언 명판: 20□□년 설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연세대학교 캠퍼스 이한열 동산,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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