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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브레 Dec 26. 2021

산타할아버지는 평양일까 함흥일까?


나는 그의 입김 덕에 고수들의 영역이라는 평양냉면에 눈을 떴다.

K의 소울푸드 평양냉면. 어김없이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그의 입에선 탁탁 면을 치는 소리만 들렸다.





2019년 12월 24일.

연애 한 달 차, 서로에 대해 한창 이것저것 탐구하기 좋아하던 시기. 와인바에서 '크리스마스에 뭐할까?'라며 고민하던 차에



아... 평양냉면 먹고 싶다. 먹으러 갈래?



너무 단순하고 황당해서 그냥 웃겼다.(이게 K의 아슬아슬 줄 타는 매력포인트) 그리고 쏟아지는 평양냉면 스토리텔링에 빠져들어버렸고... 그러다 연락이 안 되는 그의 단짝 친구, 고시준비생 S의 얘기를 하다가...


오! 그럼 그 오빠랑 우리 셋이서 평양냉면 먹으러 갈까? 완전 신박하다!



그렇게 K, K군의 절친 S(방에 박혀있으려던 고시준비생) 우리 셋이 <을밀대>에서 났다.

처음 만나는 남자 친구의 절친을 크리스마스에, 그것도 평양냉면집에서!


이한치한 추울수록 평양냉면이 생각나고, 방 안에 박혀 쓸쓸해할 친구가 걱정되는 K군의 다정한 마음, 우리 커플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약간 망설이다 흔쾌히 나와 준 S오빠. 모두 '크리스마스는 사랑을 전하는 날'이라는 목적과 함께.


"근데 너희 커플 첫 크리스마스인데 내가 껴도 괜찮아?"


"응 난 좋아. 셋이니까 수육에 녹두전까지 다 먹을 수 있잖아!"


"너 감성 뭐야...? 너네.. 커플 맞지?"


정말 즐겁게 깔깔깔 웃었던 그때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니 지금도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가장 인상 깊었던 크리스마스 기억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난 을밀대에서 셋이 평양냉면 먹었던 2019년 크리스마스!라고 답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엔 분위기 좋은, 조용하고 아늑한 식당에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야 제대로 즐겼다는 정관념을 깨고 가장 많이 웃었고, 좋은 인연을 알게 된 날이었기 때문.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먹고 싶다는 K의 단순한 욕망, 그리고 '재밌겠는데? 한 번 해볼까?'는 나의 열린 마음이 만나 때부터 우리 커플의 크리스마스 리추얼(?)이 되었다.





어느덧 3번째 크리스마스 리추얼. 목도리에 장갑까지 꽁꽁 싸매어 살얼음 육수를 먹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영하 15도에다 오늘 크리스마스 저녁인데 사람 몇 테이블이나 있을까?'


예상보다 고독한 미식가들이 많았고 2030은 단 한 테이블도 없었다. 이게 또 은근히 쾌감을 주는 포인트!

여기선 크리스마스 캐럴 대신 스테인리스가 내는 성스러운(?) 면치기 소리만 적막 속에 퍼진다.




수족냉증인 나를 위해 K군은 계속 내 손의 온도를 살핀다. 감성 없으면서도 챙길 건 챙기는 사람.

살얼음 육수 먹고 손이 더 차가워지면 따땃한 주전자에 손 좀 녹이고, 그러고 또 먹고... 다 먹고 나서기 전엔 한 번 발을 털어주는 것도 좋다. 안 그럼 발가락 감각이 잠시 사라질지도..






내년 크리스마스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 있을까?

첫 크리스마스처럼 고정관념에서 살짝 벗어나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생각하고, 많이 행동해보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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