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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브레 Jan 05. 2022

초보가 왕초보 선배 가르치기

운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막내로 지낸 지 어느덧 5년. 나이로선 아직 막내 자리를 내주지 않았지만, 선배들이 내게 일을 배우는 상황은 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 어색하다.




우리 부서의 업무는 그야말로 '양질 전환'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 최대한 많이 반복해서 머리보다 손이 먼저 반응하는 경지에 올라야 하는, 한마디로 말 그냥 '뼈 빠지게 해야 하는'시간이 답인 일이다.

도제식으로 멘토에게 스킬을 배우며, 그와 한 팀이 되어 초보의 실수를 멘토가 대신 커버해주어야 한.


지난주, 나보다 나이가 최소 6살 이상 많은 새로운 팀원이 들어왔다. 우연히 첫날 같이 일한 파트너가 나뿐이었기에 아직 한참 부족한 내가 그분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 와버렸다.


.... 어떡하지?


왜 선배들이 다들 멘토가 되는 것을 피했는지 알겠더라.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상황에서 초보는 고수들의 눈치가 보인다. 자칫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우스운 꼴이 되어 버리거나, 거만해 보일 수 있어 나름 지금껏 익혀온 눈치 바이브를 사용해 야금야금(?) 가르쳐 드린다. 

최대한 고수 선배들이 없을 때만, 그리고 혹여나 조금이라도 그분이 주눅 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4년 차 짬바도 짬바라고... 벌써 지식의 저주에 빠져버렸다


이거 어떻게 하셨어요?

음... (그냥 하는 거지 뭐...) 그냥 했는데요...?



*지식의 저주

- 사람이 무엇을 잘 알게 되면 그것을 모르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게 된다는 뜻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시간만이 답인 일도 현명한 가르침이 있다면 추월차선을 탈 수 있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확 와닿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감각을 느끼도록 알려드릴 수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4년 전 내가 처음 이곳에 왔던 느낌으로 되돌아가 본다.)



왕초보 시절은 매일이 멘붕의 연속이라 기억이 삭제되어 버렸다. 정말 내가 뭐하고 지냈는지 까마득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 실수하고, 혼나고, 힘들고, 아프게 지냈던 것 같다.

어후 벌써 이렇게 기억이 안 나다니 참.




정말 멋진 선배들과 함께였구나


내가 왕초보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때마다 그간 선배들이 내게 베푼 성의와 호의가 또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다. 정말이지 너무나.


학교 선후배라고는 한 명도 없는 외톨이인 내게 먼저 관심과 식사를 베풀어주시고, 직접 만든 업무 일지도 출력해주셨다. 이때까지 정말 단 한분도 질문에 핀잔주었던 분이 없었으며, 실수했을 땐 행위에 대해서만 꾸짖고 고칠 점을 명확하게 알려주셨다.


힘든 업무 탓에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기 일쑤라 내 몸 하나 챙기기 힘든 와중에 누군가를 가르치고, 그의 실수를 대신 해결해주는 건 내 일보다 30% 이상은 더 힘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그간 왕초보였던 내가 초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선배들이 1/N로 노력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식사와 음료를 얻어먹었던 가? 그 모든 시간과 노력이 나를 1인분 몫은 하는 사람으로 키워낸 것이다.


요즈음 업무가 너무 많아 잘 알려드리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고, 그분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볼 때마다 막막한 심정이 전해 씁쓸해진다. 그리고 그나마 대화할 수 있는 몇 분 남짓 짧은 시간엔 내 할 일 하기 바빴던 것도 괜스레 미안해진다.

사실 내 음료 사러 갈 때 '뭐 드실래요?' 물어봐주는, 그 정도 마음의 공간은 언제나 충분한데 말이야.


내일은 커피 한 잔 하자고 먼저 말해야겠다. 금도,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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