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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브레 Feb 17. 2022

오미크론으로 미각을 잃는다면, 어떨 것 같나요?

좋겠다. 난 입맛이 너무 돌아서 탈인데.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 미각이 상실되었다고 하니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맛과 이별한 지 벌써 흘이 넘었다.


'그 맛'이 안 나요.


김을 먹으면 짭조름한 맛이 나야 하고, 비빔국수를 먹으면 매콤 달콤한 맛이 나야 하거늘... 무얼 먹든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 그저 식감만 느껴질 뿐이다.

내가 알던, 바라던 '그 맛'이 안 나니 먹는 즐거움이 사라졌다. 좋아하는 나물을 질겅질겅 씹고 이내 삼켜버렸다. 혹시 더 오랫동안 잘게 씹으면 '그 맛'이 나지 않을까? 는 기대는 접은 지 오래다.



미각 상실 후 4단계 마음 변화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고, 막연히 불안했다.

'1~2달 지나도 미각 안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던데... 혹시 나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대체 언제쯤 먹는 즐거움을 다시 누릴 수 있을까?'


그리고 4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점점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1. 기대

혹시 신 맛은 느껴지지 않을까? 아니네.

그럼 매운맛은? 목구멍이 약간 따가운 느낌뿐이네.

마늘도? 청양고추도?

초콜릿은? 혓바닥으로 입안 가득 요리조리 굴리면서 먹어보면 좀 다르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옅은 희망을 품고 이것저것 시도했으나 현실 부정에 지나지 않았다. 미뢰가 죽은 건지.. 살아는 있는 건지... 코로나는 호흡기 바이러스 아니었나?



2. 실망

자취생이 서러울 때 1위는 뭐니 뭐니 해도 아플 때.

가뜩이나 아파서 식욕은 없지만, 약 때문에 뭐라도 챙겨 먹어야 하는 이 상황에서 그나마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좋아하는 맛집을 배달시켜주는 것이었다.

가장 좋아했던 음식을 먹는데 아무 맛도 못 느끼는 이 상황. 기대하고 먹진 않았지만 마음은 아팠다.




3. 무미건조

후각, 미각이 이렇게나 중요한 감각이었다는 걸 코로나 바이러스가 몸소 알려주었다. 심리적으로 크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무얼 먹어도 아무 맛이 나지 않으니 삶 자체가 무미건조해졌다. 무미건조라는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무미가 왜 맛 미(味) 였는지를...

특히나 자가격리로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데다가, 먹는 음식마저 아무 맛이 나지 않는 건... 차라리 벌을 주세요.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칼을 삼키는 듯한 인후통, 전신 근육통도 모자라 미각마저 앗아가다니 너무 가혹했다.



4. 우울

가장 쉽고 빠른 즐거움이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아닌가!

혀가 무미건조해지니 삶 자체가 무료해졌다. 책을 읽어도, 좋아하는 영상을 봐도 정말 아무런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고 통증과 더해져 우울감이 더욱 심해져만 갔다.


우울의 늪 속으로 몸이 자꾸만 가라앉아 허리쯤까지 빠져 버렸을 때쯤, 가만 놔두면 다 잠겨버리고 말겠다 싶어 마음가짐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미각 없어져서 좋은 점은 없을까?'


1. 재밌는 시도 해보기? X

주변 사람들로부터 얻은 아이디어는 '평소 싫어했던 음식 도전해보기(ex. 까나리액젓, 불닭발 등)', '맛없어서 안 먹는 클린푸드 먹기'였다. 난 비건 지향인이라 주로 야채, 콩, 두부로 이루어진 자연식을 한다. 먹어도 맛있게 먹는 사람이라 맛없어서 안 먹는 클린푸드란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건 패스.


2. 음식의 질감에 더 집중해보기 O

단단, 물렁, 까드득, 뽀득뽀득, 미끄덩, 쫄깃쫄깃한 그 질감 자체에 더욱 집중해보았다. 그냥 씹는 것보단 확실히 재미있었다. 이것 말고는 아무리 봐도 없다.






 지금은 11일 차. 아침에 삶은 배추를 먹는데 '배추스러움'을 느껴서 기분이 좋았다. 아주 아주 희미하지만 배추가 배추임을 알려주는 향이 스쳐 지나간 것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각이 0%였다가 5% 정도 느껴지는 것도 감사하다. 앞으로 점점 더 감사할 일만 남았다며 오늘도 긍정 회로를 실컷 돌려본다.

 여전히 매일 아침이면 미각 테스트로 소금을 먹어본다. '음... 오늘도 안 왔네? 찾아오는 데 오래 걸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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