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그를 사랑하는 아내
응급실에서 노숙자로 지낸 지 4일째다.
응급실에서 이렇게 오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응급실은 응급환자가 잠깐 다녀가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응급실은 보호자 침대가 없고, 보호자용 의자만 있다. 그 의자를 더 차지하고자 보호자끼리 신경전을 한다. 언제 입원될지 모르니 앞의 침상 보호자 의자를 하나 더 챙겨 와 3개를 만들어 내가 누워서 잔다.
미안함이 덜한 것은, 우리 발치 있는 침상은 수시로 환자가 바뀐다.
큰 목소리에 말이 엄청 많았던 어르신은 하룻밤 만에 병실로 올라갔다. 그분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니 너무 다행이었다.
두 번째 환자는 화장 곱게 한 내 또래 여성이었다.
병원 얇은 이불포 위에 셀린드 숄이 이불 삼아 올려져 있다.
화장도 그대로 한껏 드라이한 머리 하며, 그야말로 응급상황에서 이곳으로 온 모양이다.
왜 들어왔을까?
그녀도 반나절도 못 되어, 그의 남편과 1박에 85만 원짜리 하는 특실로 올라갔다.
부럽지만 또 부럽지 않았다.
"너무 늦게 오셨어요. 마음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이 든 어르신은 왔다가 바로 병실로 가고, 다들 가는데 우리만 그대로다.
혈액암 병동은 입원실이 안 나나 보다.
아침 6시가 되면 전등이 다 켜진다.
눈이 부시는 머리 위에 천정 등을 끄면 안 된다고 불을 켜두란다.
환자를 가리는 커튼도 닫지 못하게 한다. 낮동안은 그래야 한단다.
창문이 없는 응급실은 환자들에게 낮과 밤을 구분해 주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안 그러면 섬망 증세가 있을 수 있다고.
수시로 뭔가를 체크하면서 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본다.
알면서 왜 묻나 했더니 그들이 하는 처지가 맞는 사람과 정확한지 한번 더 확인하고자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 목적에 더하여 환자의 섬망 증세 여부를 체크하는 중 임을 알았다.
그가 체중계에 올랐다.
구역감 때문에 먹는 게 없는데 체중이 늘었다.
희한할 일이다, 아차, 복수가 차고 있는 것을!
물 1리터는 몇 그램일까?
그걸 또 찾아본다.
우리 집엔 정수기가 없다. 정수기 업체마다 물 맛이 다르다고 맛에 대해 예민한 그이 때문에 난 선뜻 정수기 구입을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정수기가 없었나 생각해 보니 왕터 살면서도 생수를 먹었으니 10년쯤 되어간다.
난 정수기 물맛도 잘 모르겠고 생수는 더욱이 모르겠다. 물 맛은 물 맛인 줄. 장금이가 되긴 애초에 틀렸다.
편의점에서 백산수 생수를 사 왔는데,
"난 중국산 물 싫어" 한다.
"백산수가 중국산이었나? 중국산 물도 수입해 와?"
그의 말은 백산수의 수원지는 중국 연변 백두산 천지 부근이니, 다음엔 비싸더라도 제주산 물을 사다 달라는 거다. 비싸봐야 생수가 거기서 거기지.
프랑스 알프스 산맥 에비앙 생수를 사달라는 것도 아니니, "알았어. 제주산 물이면 되는 거지?"
생수를 사면서 수원지를 살피게 된다.
먹고 싶은 게 없어서 고작 물 타령이다.
복수가 조금 찼음에도 먹는 것을 힘겨워한다.
그러면서도 이걸 먹으면 더 안 좋을까 염려하면서 못 먹는다. 위를 눌러 배가 고픈 줄도 모르겠다고.
그래도 이것저것 사다 날라 본다. 뭐라도 먹길.
토요일 하루가 전등불 아래서 지나간다.
생수를 사러 나갔다가 비가 내리는 포근한 날이라고 하니 밖에 나가고 싶어 한다.
"나갔다가 들어올 수 있을까?"
"아마, 안될걸"
응급실에서 자유롭게 걷는 사람은 그이뿐이다.
겉은 멀쩡하니 '나이롱환자'로 보이겠지.
마음과 달리 걷기도 힘들어하면서 화장실을 다녀서 침대로 왔다.
그와 달리 난 운동화를 신고 씩씩하게 그이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같이 보조 맞춰 걷기도 한다.
"참 씩씩하게 걷는 게 보기 좋아. 나도 그렇게 걷고 싶다."
"그러면 되지. 곧 그럴 수 있어"
얼른 입원실로 가서 주치의에 진료를 받기를.
약을 바꿔 다시 일상을 씩씩하게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오늘도 품는다.
25.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