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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델 Jun 21. 2023

루소의 사회계약론 표지에 고양이가 나온 까닭은?

18세기 프랑스 미술에서 고양이의 의미


루소, 『사회계약론』(1762) 표지의 하단 부분


원문 : Amy Freund and Michael Yonan, Cats: The Soft Underbelly of the Enlightenment, Journal18, 2019
 (고양이 : 계몽주의의 부드러운 아랫배)


루소의 『사회 계약, 또는 정치권의 원리』 혹은 『사회계약론』(1762)은 동시대 사회,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국가와의 관계를 논하고 있는 책이다. 책 표지에는 그것의 내용을 암시하듯 자유의 여신이 화면의 중앙을 차지한다. 그런데 여신의 발치에 고양이 한 마리가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왜 『사회계약론』의 표지, 그것도 정중앙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을까? 그것은 고양이가 18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에서 고양이는 빈번하게 부정적인 속성과 연결 지어졌다. 로버트 단턴의 저서 『고양이 대학살』에서 묘사된 바 있듯 고양이는 부정적인 것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동물로 여겨지곤 했다. 이는 루소의 주된 활동시기였던 18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18세기 초, 프랑스에서 고양이는 다양한 이유로 부정적 가치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는데 이것은 일정 부분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즉, 고양이는 악마의 사도가 그렇듯 행동양식이 표리부동하고 쉽게 교화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만으로 인간을 유혹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종교적 함의뿐만 아니라 그것의 행동 양식과 습성의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함의를 갖게 되었다. 특히 인간을 잘 따르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즐겨하는 고양이의 속성은 통제되지 않는 동물로서 고양이의 속성을 부각했다. 특히 고양이는 인간의 의지에 복종하지 않으며 되려 인간과 동등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동물로 여겨졌다. 역설적인 점은 계몽주의 사상이 널리 퍼진 유럽의 지식인들에게도 고양이의 독립성은 부정적인 특성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독립성의 유무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바티스트 페로노, <그랑주의 막달렌 퐁셀루 Magdaleine Pinceloup de la Grange>, 1747, 캔버스에 유채, 폴 게티 미술관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 쪽으로 고정된 것이 아닌 당대의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급격하게 변화했다. 특히 18세기에 들어 고양이는 부정과 긍정 두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양가적인 존재로 평가 받았다. 이런 변화는 고양이가 귀족, 왕족들에게 반려동물로 길러지기 시작하며 그 특성이 사람들에게 보다 널리 알려진 사실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거 고양이는 설치류를 잡는 용도로 주로 길러졌다. 하지만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에 걸쳐 중동과 지중해 동안에서 다양한 고양이 종이 유입되고 그에 따라 애완동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상이 장바티스트 페로노(Jean-Baptiste Perronneau)의 작품 <그랑주의 막달렌 퐁셀루Magdaleine Pinceloup de la Grange>(1747)에 나타난다. 작품 속 주인공은 무슬림과의 교역으로 큰 부를 축적한 직물업자의 아내로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다.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양이는 샤트룩스로 보인다. 이 종은 오늘날까지도 그랑 샤트르뢰의 수도승에 의해 탄생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의 대표적 품종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유전학적으로 프랑스가 아닌 레바논 지역에서 탄생되었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그렇기에 중동과의 교역으로 큰돈을 벌었던 상인가의 아내가 샤트룩스 품종을 안고 있는 것은 주인공 가족의 직업적 배경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 작품은 부유한 상인가의 아내가 자신이 아끼는 고양이를 안고 있는 전형적인 초상화로 보인다. 하지만 18세기 중반 동물이 포함된 부르주아, 귀족 초상화에서 고양이를 포함시키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그림이 가진 독특한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당대에 초상화에서 동물은 단지 의뢰자 본인의 기호를 반영한 것을 넘어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이 시기 빈번하게 그려졌던 개의 경우 충성이라는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회화적 알레고리였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고양이는 단지 주문자 자신의 기호 외에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고양이는 마치 품에서 벗어나려고 주문자의 팔을 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고양이가 본래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한다는 동물적 습성을 포착해 낸 것이겠지만 그러한 점을 넘어 고양이가 가진 독립적인 속성을 드러내기 위한 화가 나름의 설정일 가능성이 높다. 당대에 문헌에서 고양이가 가진 독립적인 성격은 그것이 애완동물로 각광을 받던 시기에도 온전히 그것을 길들이기 힘들다는 관념과 결합되곤 했다. 주인의 품을 떠나려 하는 작품 속 샤트룩스의 모습 또한 그러한 고양이에 대한 관념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고양이의 목에 달린 방울 또한 그러한 점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고양이 방울은 많은 경우 장식을 위한 목적과 함께 고양이가 주인의 허락 없이 작은 동물을 물어 죽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좌) 장 시메옹 샤르댕, <가오리>, 1725-1726,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 박물관 // (우) 장 시메옹 샤르댕, <뷔페>, 1728,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 박물관


이렇듯 고양이가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은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가령 샤르댕은 18세기 초 동물을 그린 일련의 정물화에서 고양이가 당대에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 속성의 일면을 보여준다. <가오리>(1725-1726)라는 제목이 붙은 한 정물화에서 샤르댕은 등을 활처럼 굽힌 채 공격 자세를 취하는 고양이를 묘사했다. 그런데 이는 유사한 방식으로 그려진 또 다른 작품에서 강아지를 묘사하는 방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가오리>에서 고양이의 모습은 영락없이 탁자에 놓인 해산물을 먹으려는 혹은 훔쳐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에 반해 <뷔페>(1728)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에서 강아지는 꼬리를 흔든 채 풍성하게 놓인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한 학자는 샤르댕의 정물화 작품들을 비교하며 작품 속 동물들이 주변 정물들에 보고 느낄 수 있는 인간의 감정들을 대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고양이의 공격적인 자세는 적나라하게 해체된 가오리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관람자가 느낄 충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며 꼬리를 흔드는 개의 모습은 풍성하게 놓인 과일들을 바라보았을 때 관람객들이 느낄 기쁨을 동물의 행동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지의 여부를 떠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양이의 습성이 인간의 부정적 감정을 대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특히 탁자 위에서 먹이를 움켜쥐려는 고양이의 모습은 생선을 도둑질하는 고양이라는 클리세적인 표현이 18세기 서유럽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더구나 탁자 위에 있는 고양이와 탁자 아래에서 과일을 바라보는 개의 대조는 인간에 충성하는 동물인 개와 인간과 같은 독립성을 누리는 고양이라는 대조적 속성과 연결되어 고양이에 대한 당대인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18세기 초 샤르댕이 보여준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18세기 중반에도 여전했다. 1758년에 널리 제작되어 유포된 동물 판화 연작 중 하나는 고양이을 교활하고 암약을 일삼는 존재처럼 묘사하고 있다. 가령 장바티스트 오드리(Jean Baptiste Oudry)가 그리고 장 돌레(Jean Daullé)가 판각한 <퍼그의 하렘>이라는 판화에는 정면에 배치된 강아지들을 노려보는 검은 고양이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검은 고양이가 음모를 꾸미고 속임수를 일삼는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바티스트 오드리, <퍼그의 하렘>, 1758, 에칭, 대영박물관
장바티스트 오드리, <장군>, 1728, 캔버스에 유채, 엘렌 베다르-알렉산드르 드 보트리 컬렉션
장바티스트 오드리, <미세와 툴루>, 1725, 캔버스에 유채, 퐁텐블로 성


이처럼 고양이가 가진 독립적인 속성은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러한 특성이 몇몇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에게 고양이의 긍정적인 특성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드리의 작품 <장군 Le Général>(1728)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작품 속에 묘사되어 있는 고양이는 루이 15세의 애완묘 중 하나로 추정된다. 비록 기록상으로는 루이 15세 부부가 검은색 고양이가 아닌 하얀색의 터키시 앙고라 종 고양이를 키웠다고 알려져 있지만 고양이가 그려진 장소와 연작 회화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왕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고양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림은 1725년부터 1732년까지 그려진 11점의 동물 연작 중 하나다. 연작 작품 중 유일하게 고양이를 그린 이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그것이 다른 10개의 작품과 다르게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은 혹은 인간의 행위에 반하는 동물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사냥개를 그린 연작 작품들에서 작가는 사냥개가 가진 탁월한 사냥 능력을 다양한 기물로 표현하고 있거나 야외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사냥이라는 인간의 목적에 충실한 존재이자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진 개를 묘사해 그들을 복종시킨 왕의 권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양이를 그린 작품에서 그러한 목적은 오히려 역전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 열주를 배경으로 한 실내에 그려진 검은 고양이는 사냥을 위한 것도 귀족들의 감상을 위한 목적도 아닌 먹이를 먹는다는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한 존재로 묘사된다. 심지어 고양이는 스스로 먹이를 사냥한 것이 아닌 인간이 잡은(왼쪽의 엎어진 바구니는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냥감을 훔쳐먹으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바 있던 고양이가 가진 부정적인 속성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평자들에게 이것은 충성과 복종만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동물화에서 자유와 독립의 요소를 새로 발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일례로 오드리의 그림이 나오기 1년 전 나온 고양이에 관한 책에서는 개와 고양이를 비교하며 개는 충실한 노예에 불과하지만 고양이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석은 작품 속 검은 고양이가 페로노가 그린 샤트룩스와 달리 목걸이 조차 하지 않은 고양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피에르니콜라스 보발레, <자유>, 1784-1785, 석고, 콩피에뉴성


이런 특성은 루소가 자유의 상징으로서 고양이를 주목한 배경이기도 했다. 인간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독립적인 습성은 분명 부정적이지만, 그것은 한편으로 전제왕권의 지배를 거부하는 지식인의 속성과 잘 맞았다. 그 결과 루소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함의를 벗겨내고 개인의 자유를 상징하는 동물로 고양이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루소는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애묘가로 알려져 있다. 『에밀』(1762) 출간 이후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망명 생활을 이어가는 도중에도 지인에게 맡긴 반려묘 두아엔느(Doyenne)에 대한 편지를 지속적으로 썼으며 양육 방법에 대한 꼼꼼한 지시서를 써 보내기도 했다. 이런 루소의 고양이 사랑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사상에까지 이어졌다. 1764년 루소를 찾아갔던 런던의 작가 제임스 보스웰은 자신이 경험했던 독특한 문답에 대해 기록한 바 있다. 루소는 보스웰을 만나는 자리에서 대뜸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았고 보스웰이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다음과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물어본 것은) 당신의 성격을 테스트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인간의 독재적인 본성이 있군요. 그러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고양이가 자유롭고 노예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처럼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에 보스웰은 고양이뿐만 아니라 암탉 같은 동물들도 인간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만약 당신이 암탉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암탉은 당신의 말에 따를 겁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당신의 말을 완벽하게 알아듣는다고 하더라도 당신에게 복종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러한 일화는 루소가 고양이를 18세기 지식인 사회에서 움트고 있던 개인의 자유를 상징하는 존재로 봤다는 것을 보여준다.


루소의 사회계약론 표지에 나타난 고양이의 존재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루소 개인의 의견을 넘어 계몽사상가 전반의 의견으로 널리 퍼지게 된다. 혁명이 일어나게 몇 년 전 피에르니콜라스 보발레(Pierre-Nicholas Beauvallet)가 제작한 부조 <자유>(1784-1785)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작품은 클럽을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측면상으로 표현된 고양이가 조각되어 있다. 과거 판화 작품에서 꽃병에 숨어 모략을 획책하던 음흉한 동물은 이제 그리스로마 여신에 준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18세기 후반의 극적인 변화는 동물의 습성이 당대의 사회, 문화적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의 존재에서 신성한 존재로의 변화는 그 자체로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가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만인이 사랑하는 동물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니다. 애드가 앨런 포의 작품 『검은 고양이』에서부터 에두와르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 속 고양이까지 그것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19세기 내내 존재했으며 이와 같은 이미지는 고양이와 불길한 징조를 엮는 오늘날의 문화 콘텐츠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즉, 고양이는 애완동물로 각광을 받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것이 가진 습성으로 인해 양가적인 평가를 받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고양이를 대하는 인간의 양가적 감정이 그들이 지닌 독특한 성격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동물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 그것의 가치 판단은 어떤 절대적 과학적 기준을 가지고 평가되는 것일까 아니면 당대에 지배적이었던 사회, 문화적 경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여기서 확실히 내릴 수는 없으나 적어도 18세기 프랑스에서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마냥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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