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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Jul 23. 2024

[옛날 이야기] 여행은 힘들어!

여행을 출근보다 더 빡세게 하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여기저기 구경 다니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어릴 때의 여행이란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꽤 어려운 것이어서, 어릴 적에 여행을 갔던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되어서도 여행은 꽤나 먼 남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월급쟁이가 된 뒤에도 몇 년간은 해외여행을 다닌 적이 없다.


어쩐지 팍팍하게 살던 내게, 여행을 좋아하는 직장 동료가 여행을 꿈꾸도록 도와 주었다. 그는 나와 대화한 뒤, 내가 부담을 느끼는 것이 '여행'그 자체가 아니라 여행에서 써야 할 '교통비'나 '숙박비'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의 추천대로 항공권 초저가 추천 앱을 깔았다.  정말,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행을 갈 생각이 없었다.


그 때가 2015년 즈음이었던가, 16년이었던가 그랬다. 일본 여행이 핫했고, 비행기도 굉장히 많았다. 당연히 초 저가 항공기도 넘쳐났다. 에선 이 만원, 삼 만원짜리 항공권이 등장했다. 이거 서울 가는 거보다 싼데? 싶어서 예약을 했다. 그냥 취소하면 되겠지, 하는 심보였다. 그런데 초저가는 보통 예약 취소가 안 된다. 그 사실을 여행 가기 한 달 전에 알았다. 그 때의 내가 얼마나 여행을 몰랐는지.....


다급히 해외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살폈다. 우선 여권을 만들었고, 여행 갈 곳도 살폈다. 여행지를 검색해서 숙박지도 살펴보고, 어디서 뭘 구경할지도 찾아 보았다. 사실 여행 가기 전 이 단계가 가장 재밌다. 금방이라도 그곳에 갈 수 있을 것 같고...  먹을지, 무엇을 보게 될지 상상하는 건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계획을 여섯 번이나 일곱 번쯤 엎은 것 같다. 너무 빡빡하게 짜서... 하지만 여덟 번째 계획도 그렇게 느긋하지 못해서, 나는 하루에 대략 4만보를 걸은 인간이 되었다.


첫 여행지는 일본이었다. 정확히는 교토만 갔다 왔다. 인터넷으로 끊어놓은 이코카-하루카 패스는 키티가 그려진 귀여운 모양이었다. 교토 역 사람들은 친절히 내가 타야 할 곳을 알려 주었다. 길은 깨끗해서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았고, 신호등은 파란 불로 바뀌면서 삐뽀삐뽀 소리를 냈다. 온통 내가 모르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일본을 오롯이 느끼고 왔으면 좋았을까, 하지만 나는 관광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압박을 느끼던 차였다. 관광 루트부터가 못 믿을 것이다. 첫날은 1시간을 넘게 걸어서 청수사를 다녀왔고, 둘째 날은 은각사에서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그 근처의 모든 관광지(은각사, 호넨인, 안라쿠지, 에이칸도)를 '걸어서 다녀왔다'. 셋째날은 니시혼간지와 히가시혼간지 이후 후시이미나리타이샤를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은각사뿐 아니라 호넨인의 가레산스이는 아름다웠고, 에이칸도의 갓 단풍이 들 듯 말 듯한 잎은 고즈넉했다. 안라쿠지에서는 엄마와 딸이 정좌를 하고 밖을 보며 무언가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했다. 에이칸도는 하필 양말을 신지 않아 맨발 관광을 해서, 너무 발이 시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셋째날이 되니 지쳐서 견딜 수가 없었다. 히가시혼간지와 니시혼간지는 한번 다 둘러봤지만, 후시이미나리타이샤는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돌아와버렸다. 정말 예쁜 곳이었지만, 동시에 피로가 몰려왔다.

 

그 당시, 내 스케쥴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꽉꽉 차 있었다. 교토를 가게 되었으니 최소한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자는 굳은 의지였다. 그리고 금각사나 아라시야마를 가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나 스스로 타협했으니 더 열심히 구경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첫째 날 청수사를 다녀온 저녁에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는데도 그 다음 날 6시에 바득바득 짐을 갖고 나온 걸 보니, 정말 쉴 줄 모르는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 땐 체력이 되어서 가능했을까?  


아무튼, 이제야 느낀 것이지만 그건 여행이라기보단 노동에 가까웠다. 나는 마치 숙제를 하듯 여행을 다녀왔다. 기억 속 여행은 아름답지만, 내가 여행을 다시 가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의 여행도 비슷했다. 언제나 고되고 빡센 일정이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여행을 불편하게 느끼게 되었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최근 친구에게서 조언을 받았다. 내 여행 스케줄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지나치게 무리한다'는 평가였다. 그래, 나는 여행 스케줄을 너무 과하게 잡는 버릇이 있었다. 친구는 내가 포기한 여행을 다시 가보라고 권했다. 하는 김에, 일정을 하루만 더 추가하라는 말도 덧붙여서. 사흘 치 일정엔 꼭 하루를 더 덧붙여서, 나흘로 만들어 가라고 했다. 나의 무리한 계획을 염려한 조언일 거다.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 어딘가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만약에 그런 생각이 든다면 훌훌 떠나볼 생각이다. 이번엔 친구의 말대로 날짜를 좀 더 붙여서. 그 날의 나는, 여행을 내 생각처럼 여유롭게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언젠가 일본 여행기를 한번 써보려고 한다, 꽤 옛날 이야기지만, 이런저런 이벤트가 많았으니 쓸 거리는 꽤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일본을 가게 된다면, 내가 즐기지 못한 많은 것들을 좀 더 즐기고 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하게 된다.


평안하고 아름다운 여행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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