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arlet Sep 24. 2024

나의 돈 관리 이야기 4 - 변화기②

누구나 생각하는 하찮지 않은 구멍

앞에서 나의 가득한 실패담을 보며, 좀 어이없어할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어마어마한 실패도 아니고, 끽해야 카드 좀 많이 쓴 정도 아냐? 싶기도 할 것이다. 내가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여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일상적으로 돈을 조금 썼을 뿐이다. 하지만 이게 보통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며 번 돈을 모두 투자해버리거나, 혹은 철저히 관리하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나는 젊을 때는 돈은 쓰는 거라고, 젊은 시절 돈 관리는 필요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꼭 알려주고 싶다.

여기서 살펴볼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왜 그렇게 돈을 썼을까? 문득 통장 잔고나 카드 세부내역을 살펴보면서 문제를 발견할 생각을 못 했을까? 그렇다. 나는 앞서 '충동구매'를 했다고 적었는데, 이 충동구매가 나는 꽤 잦은 편이었다. 나는 그것을 유혹에 약한 내 탓이라고만 여겼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순수하게 의지의 문제였냐 묻는다면, 아니었다. 그건 내 의지를 벗어난, 병리적인 문제였다. 최근에 병원에서 ADHD를 진단받고 머리가 띵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제서야 내 행동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되었다. 나의 충동성, 과몰입과 과집중은 어느 정도 병리적인 문제였다. 지금은 약을 먹어 괜찮아졌지만, 그걸 모르던 과거에는 어땠겠는가.

나는 선천적으로 중독에 약했다. 게임 중독, 휴대폰 중독... 뭐든 하나에 빠지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행동을 부지런히 제어했다. 공부를 하는 동안은 휴대폰을 없앴고, 컴퓨터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인터넷도 안 되는 PMP에 강의를 다운받아 들으며, 내가 딴짓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을 원천 차단했다. 학생때까지는 그렇게 관리하는 게 가능했다.

사회 생활은 어려웠다. 휴대폰을 항시 들고 다니며 연락을 받아야 했다. 사진을 찍거나 긴 문자를 보내야 할 일도 있었고, 카톡방도 끊임없이 늘어났다. 그러니 휴대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당연했다.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터넷을 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쇼핑을 하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그러니 물건을 사는 건 더 손쉬웠다. 네이버페이에 카드를 등록하고, 인터넷 뱅킹으로 손쉽게 이체했다. 충동구매의 뒷면에는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뜻이다.

그렇다 한들, 업무 등의 문제로 당장 스마트폰을 폴더폰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사실 몇 번 바꿔 보았지만, 업무를 진행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 뒤로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니 문득 걱정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 이 제멋대로인 충동을 제어할 수 있을까? 아니, 제어를 할 수는 있는 문제일까?

그 때 내가 떠올렸던 것은 고3때, 컴퓨터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썼던 방법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아예 다른 방으로 옮겨버리고, 선을 전부 뽑아버렸다. 그러고 나니 컴퓨터를 할 수가 없어져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었다. 내가 돈 관리를 위해 쓴 방법도 비슷하다. 나는 휴대폰에서 폰뱅킹을 지우고, 네이버페이에 등록된 카드를 지웠다. 모든 것을 ATM에서 해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아서, 은행에 가 폰뱅킹 서비스를 전부 탈퇴해 버렸다. 정말이지 엄청난 결심이었다.

알고 있다. 이 행동은 어마무지한 불편을 초래할 거라는 사실을. 사실 아직도 저 행동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라서, 불편해서 미칠 것 같다. 물건 하나 사려고 해도 은행을 가야 하고, ATM기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 행동으로 나는 '충동'에 대한 브레이크를 얻었다. 지금 당장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겨도, 입금하기까지의 귀찮은 과정은 이 충동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은행까지 가서 결제할 정도의 의지가 생기는 물건이라면 사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것이다.

이렇게 충동을 제어하고 나서야 나는 내 돈 관리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었다. 옷으로 따지자면 주머니에 뚫린 구멍을 수선했다고나 할까. 이제 나는 주머니에 물건을 채워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어서 나는 돈 관리 책을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후반부로 가면 너무 어려워져서 다 덮어 버렸지만, 초~중반부에는 내가 원하는 내용이 다수 있었다. 간단한 돈 관리법, 돈을 아끼는 법 등등....

돈 관리 책들이 일관되게 권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가장 내 눈에 띄는 것은. '통장을 나누어,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을 관리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내 고정 지출을 알지 못했다. 상술했듯이 나는 내 중독을 고치기 위해 휴대폰을 다수 바꾸었고, 그 때 가계부 앱과 데이터를 전부 날려 먹었다. 그 이후로 가계부를 전혀 쓴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면 내 지출을 전혀 정리할 수 없을 터였다.

이제, 가계부를 쓸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돈 관리 이야기 3 - 변화기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