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 관리 이야기 5 - 가계부①
나만의, 나를 위한 가계부
나의 돈 관리를 위해,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물론 본인 스스로는 잘 파악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추측한 금액과 실제가 다를 경우, 그 원인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점에서 가계부는 지출입 파악에 탁월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가계부를 쓸 때 중요한 점은, 내게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 스타일과 맞지 않은 가계부를 선택하면,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시간만 날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가계부가 내게 적절할까? 나는 세 가지의 가계부를 두루 써 보았고, 지금은 정착한 상태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내 스타일을 전도할 생각은 없다. 사람마다 각자 맞는 것이 다를 테니, 나는 내가 써 본 가계부들의 장단점을 소개하려 한다.
첫째로 가장 많이 쓰는 앱 가계부이다. 나 또한 4년 정도 앱 가계부를 써 보았기 때문에, 그 유용성에 굳이 말을 얹지 않으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편이성이다. 입출금 문자가 들어오는 순간 앱으로 자동 등록되고, 카테고리 설정을 잘 해놓으면 카테고리도 자동으로 안내된다. 요즘은 아예 은행과 연계해서 재정 운용 상황까지 확인할 수 있다. 몇 번의 터치만으로도 매우 쉽게 나의 재무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단점은 너무 쉬워서, 오히려 확인을 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4년간 앱 가계부를 썼지만, 월별 평균 소비금액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카테고리 설정을 제대로 해 두지 않은 탓에, 전체 소비금액은 알고 있지만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도 알지 못한다. 잘 쓰면 정말 무궁무진한 활용도를 갖고 있지만, 제대로 못 쓰면 '나는 가계부를 쓴다' 라는 기분내기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앱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썼던 것은 엑셀 가계부였다. 엑셀 가계부는 여러 블로그에서 다양한 서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나도 그 중 몇 가지를 다운받아 쓴 적이 있다. 나는 엑셀을 잘 몰랐으므로 거기에 어떤 서식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엑셀에 숫자를 등록하면 그 숫자대로 현재 재정 상황이 변동되는 것은 신기했다. 무엇보다 적금이나 예금 등을 내 재산으로 포함해서 관리할 수 있다는 게 최고였다. 재무 설계를 하기에 이보다 좋은 도구는 없을 것이다.
단점은 접근성이다. 앱 가계부가 휴대폰에서 바로바로 수정하고 등록할 수 있는 데 반해, 엑셀 가계부는 내가 컴퓨터를 켜고, 엑셀을 열고, 일일이 숫자를 써넣어야 한다. 이건 내게는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나는 거실에서 주로 생활했고 방에 들어가면 잠만 잤는데, 컴퓨터가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켜야 한다는 귀찮음에 미루고 미루다 결국 쓰기를 포기하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컴퓨터를 자주 쓰는 사람이라면 아마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내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마지막으로 종이 가계부를 썼다. 벼룩시장에서 천 원에 산 조그만 가계부로 시작한 기록이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 가계부는 정말 나의 패턴과 맞았다. 소비를 카테고리에 맞추어 기록하고 한 달 치를 정리하는 형식이었는데, 현재 내 재정을 정확히 기록할 필요가 없어서 내게 알맞았다. 내가 보유한 돈을 정확히 계산하는 일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 얇기도 얇고 A5정도의 사이즈여서 가방에 넣어놓고 다니며 쓰거나, 집에 와서 일기를 쓰며 같이 쓰기도 했다. 조금 미뤄두고 써도 입출금 문자를 확인하면 되어서 꽤 편하게 썼다.
물론 손으로 쓰다 보니 계산기를 두드릴 일이 많다. 숫자 계산이 꼬이는 경우도 있고, 일일이 손으로 통계를 내야 하니 1년치나 몇 년 치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데이터가 꾸준히 쌓이지 않는 것은 정말 불편해서,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네이버 가계부로 데이터를 옮겨 놓는다. 몇 년 전 데이터를 확인하기 위해 종이 가계부를 뒤적거리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종이 가계부는 정말 쓰기 귀찮아서 어떻게 쓰나 싶다. 하지만, 그 귀찮음과 함께 깨달음이 온다. 아, 내가 돈을 여기에 이만큼 썼구나. 손으로 쓰게 되면 그게 보인다. 얼마를 써야지, 하는 다짐과 이러면 안 되겠다 싶은 반성도 함께 온다. 그래서 나는 최종적으로 종이 가계부를 선택했다. 나는 가계부를 손으로 적어야만 돈을 관리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쓰던 가계부는 품절되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 서식을 내 취향대로 편집하여 한글로 만들어서, 출력소에서 한 권씩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를 위한 가계부이다. 이토록이나 가계부에 진심이 된 이유는 하나이다. 가계부를 쓰면서 내 삶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있는 가계부의 특징과 가계부를 쓰면서 생긴 변화는 다음 편에서 좀더 상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혹시나 가계부를 추천받으려고 들어오신 분이 있다면,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가계부는, 본인의 취향껏 직접 골라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누군가의 추천에 따른 선택은, 절대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내가 직접 써보고 나서 깨달은 것을 토대로 내게 가장 알맞은 가계부를 찾아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나만의 가계부를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하지만 나만의 가계부라고 하면
너무 특별하고 멋져 보이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꼭 한 개쯤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