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 이제는 없애자
한겨레 세상읽기, 이명박 사면에 부쳐
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이 왜 있어야 할까. 인터넷 포털은 뉴스이용자들이 사실상 뉴스로서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신뢰도와 영향력이 종이신문보다 높은 수준이고 점점 커지고 있다)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연예면과 스포츠면 댓글은 이미 없어진 상태. 그렇다면 그냥 댓글이 없어져야 하는게 아닐까? '방파제'라는 표현은 소녀시대 수영이 설리를 기리며 한 말인데, 이 글에서 굳이 언급되기를 원치 않을 수도 있다 싶어서 인용표시라는 작은 따옴표로만 처리했다. 실효성있는 규제를 도입하기까지 논의과정 너무 길고 대부분 실패했다. 이 문제는 이제 '응급조치'차원에서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10.29 참사관련 댓글을 보면서 쓴 올해의 마지막 한겨레 칼럼. 이명박 특별사면을 앞두고 이명박이 했던 사악한 일을 하나 언급해두고 싶기도 했다.
인터넷 포털 댓글 이제는 없애자.
한겨레 세상읽기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 (2022-12-26)
연예면 뉴스에는 댓글이 없다. 2019년 10월14일 걸그룹 출신 배우 설리씨가 숨진 이후 생겨난 변화다. 스포츠면 댓글도 없어졌다. 2020년 7월31일 악성댓글에 시달리던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씨가 사망한 이후의 일이다.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그리고 팬들은 댓글이 없어진 걸 반기는 분위기다. ‘방파제’가 필요할 정도로 무차별적인 악의에 노출돼왔기 때문이다.
방파제가 필요한 곳은 또 있다. 사회면 뉴스에 등장하는 각종 사건·사고 피해 생존자들에게 악성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7월 인하대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우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해 사망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심각했다. 지난 10월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피해자에 대한 도 넘은 댓글 또한 보기 괴로운 수준이다. 이전에는 극우남초 커뮤니티인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준의 댓글이 이제는 네이버 댓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물론 네이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유튜브에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재빨리 짜깁기한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사이버 레커’들은 유명인을 공격해서 조회수를 올린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 뉴스 플랫폼의 댓글은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노출되고, 댓글 자체가 뉴스 신뢰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2021년 언론수용자조사 결과에 따르면, 뉴스 미디어 유형별 신뢰도 1위는 텔레비전(3.74점), 2위는 인터넷 포털(3.5점)이 차지했다. 이는 종이신문(3.37점)보다도 높은 수치다. 영향력도 크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는 2021년 기준 1위는 <한국방송>(KBS)(27.5%)이었고, 2위가 네이버(17.3%), 3위가 <문화방송>(MBC)(11.5%)이었다. 특히 네이버는 2020년과 비교했을 때 4.5%포인트나 증가했다. 사실상 뉴스 이용자들에게 인터넷 포털은 그 자체로 뉴스 매체이며 그 영향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영향력 증대에는 댓글의 역할이 크다.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 서비스 제공자는 댓글을 뉴스와 함께 노출하는 방법으로 사이트에 머무는 시간을 늘린다. 이용자들은 포털 뉴스홈에서 댓글이 많이 달렸거나 공감이 많이 눌린 기사를 클릭하고, 뉴스를 볼 때 댓글까지 함께 본다. 뉴스 자체에 대한 대중의 반응까지를 뉴스 형태로 제공하는 셈이다. 특히 인터넷 포털 뉴스의 댓글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그 자체로 여론의 흐름이라고 보이기 쉽다. 이런 점을 이용해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경찰청 등 국가기관이 온라인상에서 특정 뉴스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다는 등 여론 조작에 나선 사실이 밝혀져 관련자들이 형사처벌 받기도 했다.
이런 악성댓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다. 양혜승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9년 28곳 언론사의 범죄뉴스 2974건에 달린 댓글 13만여개를 분석한 결과, 여성 혐오와 이주민 혐오, 노인 혐오가 도드라지게 나타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참여연대에서는 2021년 7월27일~8월16일 3주간 네이버 이용자를 대상으로 혐오표현 노출 경험을 조사했는데, 설문조사 참여자 85.8%가 ‘혐오표현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75.4%는 서비스 이용 중 ‘거의 항상’ 혐오표현을 접했고, 97%가 뉴스 댓글에서 혐오표현을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법학자 이승현은 혐오표현은 표적이 된 집단의 구성원들을 침묵하게 해 공적 토론에 참여할 실질적 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표적 집단에 대한 혐오와 적대를 만연시키는 방법을 통해 공론장을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를 당장 마련하기에는 규제 대상과 방법에 관한 논의 과정이 매우 복잡해 번번이 실효성 있는 조치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피해자는 늘어나고 목격자들은 방관을 학습한다. 해답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한국의 인터넷 포털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뉴스 전달과 유통의 주요 플랫폼으로서 유독 도드라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용 시간과 이용자 수, 빈도수 모두에서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니 가장 문제가 된 영역부터, 가장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에게 문제 해결의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자. 인터넷 포털 뉴스 댓글, 이제는 없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