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경우가 이런 것인가. 네모난 공간을 빙빙 배회하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릴레이 경기의 바통처럼 다음 주자에게 넘길 걸 찾느라 계속 머릿속을 뒤지는데 도무지 이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뒀는지, 내 머리 구석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리 뒤적거려 봐도 찾을 수 없는 그것을 몇 시간째 찾아 헤매고 있다. 두려워하던 3월이다.
탕! 출발 신호와 함께 첫째의 준비물과 둘째의 서류, 미뤄두었던 병원 진료와 소견서들이 줄줄이 독촉을 시작했다. 이사 오고 첫 등교 그리고 첫 등원이었다. 제출할게 많았다. 왜 미리 하지 못했느냐면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게 변명이고, 힘들어서라고 말하면 방학의 내 상태였다. 이 모든 압박에서 옴싹달싹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다니 스스로가 봐도 참 딱하다. 혼자 해내야 하는 부담감에 질식할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지인들과 통화하면 누워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누워있는 그들이 신기했는데 이제는 누워있지 못하는 자신이 의아해졌다. 질문이 달라진 건 최근이다. 나는 왜 눕지 못하는가. 내 몫의 공간을 집 한편에 만들었더랬다. 내 취향의 책이 진열되고 나만 쓰는 재료가 들어갈 사물함을 고르고. 온전히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분주했지만 알고 보면 그건 나를 더 뾰족하게 세우는 곳이지 누울 자리는 아니었다.
새 학기 준비물을 사러 이케아에 들렀다. 주말 나들이는 오랜만이다. 평일이었으면 한가했을까. 사람도 사람이지만 팝업처럼 꾸며놓은 이케아 특유의 공간 구성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카트 두 개를 꺼내 흥분한 아이들을 한 명씩 담으며 머리로는 사야 할 것들을 빠르게 떠올렸다. 이곳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만하면 저렴하지 않나요,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우리만의 간결함이 그야말로 실용적이지 않은가요를 속삭이는 상품들이 너도나도 말을 걸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금 근엄해진다. 근엄미를 가지고 입장해야 속절없이 담지 않는다.
일정 사이 잠깐 들른 것이라 오래 머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세 시간을 그 안에서 뱅뱅 돌았다. 카트는 어찌나 크고 묵직한지. 아이들을 태워 방향틀기가 더 어려웠다. 부딪히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다가오는 사람들을 비껴가며 전진하자니 피로도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아이들 코너에서 구경을 더해서였을까. 중간에 우연히(?) 당도한 식당에서 커피를 마셨기 때문일까.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나오면 꼭 도로가 차로 빼곡해지는 것처럼 어느새 이동경로는 사람들로 꽉 찼다. 일부터 스물몇 개까지 길게 펼쳐진 구역과 쇼룸,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나는 인파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유독 사람들과 부딪힌다 느꼈던 게. 바닥에 화살표도 그때 눈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인지했다. 이곳은 미술관처럼 구경하는 방향이 있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각이 되며 반대편에 오는 인구가 큰 덩어리로 시야에 들어왔을 때 깨달았다. 아차 싶었다. 사람들은 계속 계속 밀려 들어왔다. 쇼핑을 즐기느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듯했지만 잔뜩 움츠린 내 어깨에 번번이 부딪히며 죄송하단 말을 연발했다. 거대한 사람의 물결 사이를 헤엄치는 내가 위성으로 보이는 듯했다. 강물을 거슬러 온 힘을 다해 헤엄치는 연어가 이런 모습일까. 연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말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는데 나 포함 내가 이끈 일행들이 흐름을 거슬러 다른 방향으로 가는 상상은 조금 울적하다. 대세를 따른다고 우스갯소리들 하지만 그것은 소수가 아닌 다수의 세상, 비주류가 아닌 주류의 세상이다. 압도적으로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평범함이라고 이름 붙인 그곳에 나와 내 작업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나도, 내 작업도, 나의 느린 아이도. 이 무렵 기관이라는 곳에, 무리라는 것에, 사회라는 것에 시선이 자주 꽂혔다. 새로운 곳에 입학을 앞두고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했던 사실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던 때도 있었다. 아마 내가 그 안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리라. 무리에서 멀어지니, 오늘같이 단순한 쇼핑에서조차도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스스로처럼 의도치 않게 부딪히고 반대에 맞서야 하고 세상살이에 금방 지치곤 했다.
묵직한 무게감. 방학 내내 아이들이 향할 사회를 인터넷으로 접하며 나를 내리누르던 물리적인 부담감이었다. 또래와 남다르고, 느리고, 섬처럼 동떨어진 듯한 아이들이 잘 적응할지, 나는 그것에 대해 무얼 해줘야 할지 뚜렷한 방법은 모른 채 밤잠만 설쳤다. 양육자라는 어떤 이에게는 무거운, 어떤 이에게는 가벼운 타이틀.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방학 내내 괜찮아라는 말을 찾아 헤매었다. 이렇게 살아도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라고 되뇌기도 한다. 나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이미 지나온 곳을 다시 갈 순 없어서 양해를 구하며 쇼룸 끝을 향해 카트를 밀다가 문득 침대 코너에 눈길이 갔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무릎에 기댄 어떤 양복차림의 남성이었다. 남성 옆에는 긴 머리를 한 원피스 차림의 여자아이가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웅크린 남성의 모든 구석에서 감정이 우러나오고 있는 반면 초등학생 1,2학년즘 되었을까 싶은 작은 아이는 아무런 표정도 없다. 드넓은 쇼룸에, 한눈에 잘 보이도록 디자인된 이 공간에 두 사람은 물고기 떼처럼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가만히 멈춰 있었다. 잠깐 앉아서 쉬는 걸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발걸음은 앞을 향하면서도 자꾸만 고개가 돌아갔다. 한참을 본 것 같다. 군중 속에서, 시끌벅적한 즐거움 속에서 미동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은 집에 돌아가는 내내 시야에 어른거렸다.
그럴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방안을 서성이면서 뭐라도 해보려고 잡히지도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던 건 휩쓸림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속도와는 무관하게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모습이 생각보다 안타깝지 않다는 것. 동정도, 걱정도 들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나를 동정하는 건 스스로 뿐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9월. 나는 자주 눕는다. 거센 물살에 묵직한 돌 하나 안아들었다 셈치고, 지긋히 아주 지긋하게 나를 뉘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