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왔다. 맞고 다니기에는 양이 많고 그렇다고 가리기에는 애매한 여우비였지만 오다 말다를 반복하며 자연스레 동네 미끄럼틀과 그네에 물이 고였다. 내 머릿속에도 생각이 고인다. 요 며칠 놀이터에서 놀지 못했구나. 낮에는 더워서, 저녁엔 조용히 해야 해서 놀고싶은 아이들을 재촉해 집을 향한지 좀 되었다. 여름의 동네는 그래서인지 한산하다. 하교하는 아이들은 집으로 내달리거나 학원 버스에 올라탔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느릿느릿 뒤따르는 첫째와 둘째의 시선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잠깐, 오르막길 집을 향하는 내 머릿속은 온통 이 여름을 어찌 나나 고민 뿐이다.
더워서 그런지 이런저런 탈이 많이 났다. 첫째가 생일날 꼭 돌치레처럼 조금씩 아프듯 나도 생일 달인 여름이 되면 몸도 마음도 다소 불편해졌다. 비에 젖은 세상이, 냄새가 친숙하고 반갑지만 습기를 머금은 날씨는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 불편은 불안의 친구라고 했던가. Butterfly in my stomache라는 표현처럼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 생각이 팔랑거려 가만히 앉아 있기도 노력이 필요해졌다. 불안으로 가득 찬 풍선처럼 양껏 부풀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쪼그라드는 나날이 이어졌다.
풍선이 한껏 부푼 날, 느린 둘째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유치원 참여수업 시즌이었다. 아이를 원에 보낸 그간의 성과(?)를 보기 위해 적잖은 사람들이 모였다. 불안이 치솟던지라 도무지 갈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둘째가 아빠와 함께 유치원을 가겠다고 자청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이의 적응을 사심 없는 눈으로 바라보기 어려웠던 차였다. 의외로 수업을 다녀온 남편은 담담했다. 찍어 온 동영상에 아이가 율동을 따라 하지 않고 좋아라 뛰며 노래만 부르는 모습에 조금 낯부끄러워지긴 했지만 이만큼 크려고 아이도 노력했구나 싶어 감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시선일 뿐. 둘째를 처음 본 몇몇 어른의 케어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그것을 원에 전달하겠다는 말이 돌았다. 정확하게 둘째와 몇몇 아이들이 거론되었고 늦은 밤에도 이 부분에 대해 의논하려는 문자가 내게 날아왔다.
지금도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쓰림은 뭘까 생각해본다. 무리에서 이탈할까, 손가락질받을까 봐 내내 가지고 있던 불안이 여기서 드러난 것이었을까. 이럴때 나의 예민함을 마주한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넘겨왔던 스스로가 그리고 나를 똑 닮은 아이가 무리에 섞일 때 얼마나 도드라지는지를 목격한 셈이다. 여름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 둘째도 나도 계절을 앓았다.
어느 날 아이는 빗물이 고인 신발이 불편하다며 하원길에 우뚝 서버렸다. 자꾸자꾸 내리는 비에 젖는 몸이, 신발이 야속한지 계속 계속 울며 걷기를 거부했다. 굵은 빗방울이 우산에 부딪혀 사방이 시끄러운 와중에 아이를 설득하려고 쪼그려 앉은 내 언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비를 뚫고 유난히 또렷이 울려 퍼지던 아이의 울음이 난처했다. 이런 것이 아비규환이려나. 내리는 비를 멈출 수도, 불편함을 사라지게 할 수도 없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이런 무력함이 나를 짓누른다. 짓눌리다 짓눌리다 부풀어진 풍선이 결국 터지는 것처럼, 나 또한 터지곤 했다. 그러면 갑자기 정신이 든다. 지금처럼. 감정이 오르다 못해 내 안에서 터지고 나면 원래 해야 할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내는걸까.
"참아야 해."
응어리진 불안을 뚫고 짓눌린 말이 비집고 나온다.
"원래 비가 오면 그런 거야."
여느 이들에게는 너무도 쉽게, 간단하게 개의치않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어째서 우리 두 사람에겐 어려운 일일까. 왜 우리의 도로는 방지턱 투성이일까.
불안이 많은 엄마의 불안 가득한 작업 속에서 이루어지는 불안한 육아는 항상 나를 마라톤 시작점에 세운다. 마라톤에서 바통을 기다리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곧 다음 주자가 될 것 같고 금방이라도 누군가 나에게 바통을 쥐어줄 것 같고 그래서 안절부절 마음의 준비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진 않고 나에게 바통을 쥐어주는 이 하나 없다. 그러면 시무룩해져서 밥 먹고 오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옆 사람들은 하나 둘 트랙을 떠나는데 나는 여전히 시작점에 서있다. 오도카니 서 있는 내게 계절이 다가오면 여느날처럼 이렇게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래도, 폭우처럼 쏟아진 불안은 머물지 않고 내 곁을 스쳐 사라진다. 더러는 발밑에 고이지만 어느새 모조리 증발해 버려 텅 빈자리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했는지에 대한 의문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날이 개이고, 하늘이 보이고 다시금 구름이 흘러간다.
한참이 흐르고 나서야 그날의 불안을 복기하면, 나 스스로에게도 들려줘야 할 말이 무언지 떠오른다.
'참아야 해.'라고.
원래 비란 그런 거야.
원래 여름이란 그런 거야.
원래 육아란 그런 거야.
원래 산다는 건 그런 거야 -.
그냥 그런거야.
그냥 그런거야.
그냥 그런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