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금붕어 영물의 환영
영물시장의 두 번째 챕터에는 청계천에 터를 잡은 금붕어 영물의 환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금붕어 영물이 가장 첫 번째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분명 새벽다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는 까닭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많았더랬다.
오늘은 청계천, 환영, 그리고 금붕어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이거 정말이에요?"라고 사실을 묻는 질문에 대한 풀이도 될 수 있겠다.
많은 것이 부유하던 청계천의 과거
금붕어가 아이의 손에서 풀려나 헤엄쳐간 청계천은 아주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물가였다고 표현해두었다. 사실이었느냐 하면 들은 바대로라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에 금붕어의 죽음이 있다는 것은 나의 상상의 영역이었다.
청계천에는 온갖 것들이 떠다녔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에서 흘러온 각종 기계 부품들이나 생활 오수들이 가득 채웠다. 더러워진 청계천이 사람들에게 잊혔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피할 만도 한데, 도시의 사람들은 그 속에서 삶을 발굴했다. 시대의 쓰레기 더미에서 어떻게든 다음을 찾아 나선 도시 사람들의 삶엔 내천의 악취도 가릴 수 없는 치열함이 묻어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세운상가의 시작은 청계천에서라고 한다. 청계천을 따라 흘러들어온 미군의 기계부품들을 모아 조립하고 만들어내면서부터, 세운상가 주변엔 철을 깎고, 기계를 조이고,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대의 아픔이 삶의 기회가 되고, 도시민들의 터전이 되는 현장. 흘러온 시간과 시대를 흐르는 청계천에 비유한다면, 천 주위를 둘러싸고 하나 둘 쌓인 바윗돌이 도시민들의 삶이지 않을까. 아주 무거워 한 사람이 온 힘을 쥐어짜 들어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바윗돌엔 그 사람의 온 생이 다 담겨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도시의 가장 맹렬한 삶이 지나는 한가운데, 영물 하나 살고 있지 않으면 그것 참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만한 사건일 수 밖에.
그래서 금붕어 영물은 흐르는 시간, 시대를 닮았다.
다른 영물들과는 다르게 금붕어는 조금, 아니 사실은 많이 인간보단 시대를 닮았다. 도시에게 시대란 어쩔 땐 모든 것을 내어주는 친절한 이웃이지만, 또 어떨 땐 모든 것을 앗아갈 거대한 악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세운상가에서 몇 년간을 보내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시대의 무서움이었다.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세운상가 주변의 작은 동네들이 시대의 이름 아래 헤쳐졌다. 몇십 년의 세월의 시대를 만들어왔을 공업사와 공장들은 재개발이라는 필요 아래 파헤쳐졌고, 흙과 먼지로 돌아갔다. 입정동은 가장 많이 돌아다녔던 동네였는데, 설을 지내고 룰루랄라 상쾌하게 일터로 돌아오니 흔적조차 남지 않았더랬다.
한동안은 멍했고, 얼마간 원망했고, 또한 체념했던 것 같다. 그간 해왔던, 동네의 시대를 증명하고 가치를 알리는 문화기획 활동은 정말 시대라는 이름 아래 건물의 잔해처럼 파묻힌 듯한 감상만 들었다.
모두의 삶이 고스란히 새겨졌을 콘크리트 벽과 먼지 쌓인 지붕은 이제 없다. 그 모습은 마치 쓰나미가 지나간 자리 같고, 한입 베어 문 햄버거의 빈자리 같기도 했다. 시대란 놈은 아마도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생각한다. 이제는 예지동이 문을 닫고 통째로 먹힐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시대를 닮은 영물이 있다면 금붕어 영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금붕어는 배가 터질 때까지 밥을 먹어 사료를 적당히 주어야 한다. 식탐이 많고 잘 먹는다. 청계천에 사는 금붕어 영물도 그럴 것이다. 시대를 닮아 식탐이 많고, 인간의 불운을 먹이로 삼지만, 종종 너무 배가 고파올 때면 근처 동네의 시대를 한 번씩 베어 문다.
참으로 악독한 놈이 아닌가.
금붕어 영물에는 시대를 향한 나의 미움이 담겼다고 고백해 본다.
하지만 금붕어는 또한 환영한다.
겨우 2년짜리 뜨내기에게도 이런 절망을 주는 시대란 놈은, 세운상가군에는 젊음이란 기회를 주기도 했다.
아무도 건너지 않던 세운상가 3층 데크에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옥외영업에 관한 협의를 위해 상인들을 모아 이야기해야 할 정도였다. 새로 정비된 세운상가엔 레트로라는 시대의 트렌드가 휘몰아쳤고, 일부의 길가에는 사람이 가득 찼다.
돌고 돌아 결국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이자 객을 맞이하는 집주인이 되어 현관문 활짝 열고 기다리는 시대. 시대란 이렇게 보면 평소엔 신기루처럼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환영일 뿐이지만, 한 시대는 동네 하나를 쓸어버리는 재앙이 되기도 하고, 결국엔 모든 것을 시작으로 돌려 새로운 사람들을 환영하는 주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때의 시대는 아주 예쁜 옷을 입고 있을 테다. 두 눈도 빛나겠지? 지나가면 상쾌한 향이 나고, 절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날 홀릴 수도. 그렇다면 금붕어가 제격이다.
맞아. 금붕어 너무 예쁘잖아?
마지막은 다소 의식의 흐름 같지만, 금붕어를 애정을 담아 키우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일 이쁜 건 금붕어지. 하는 마음이랄까.
그래서 금붕어의 환영이라는 제목 속 환영이란, 눈에 보이지 않음을 의미하는 환영이라는 뜻도 있고 두 팔 벌려 환영한다에 그 환영이기도 하다. 그 말이 하고 싶어 주야장천 늘어놨는데, 소설에서 이짓하면 아주 재미없는 글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과감히 생략했다.
청계천 위로 시대가 흐르는 시장 앞에서 금붕어 영물을 만났다면 아무튼 도망가자.
달려서 앞을 바라보면 바로 방산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