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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지 Feb 27. 2021

[BOOK_REVIEW]렝켄의 비밀/바로 보는 멈춤시간

미하엘 엔데 덕후라면 한 번쯤 필독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나에게 가장 큰 뿌듯함을 안겨줬던 책은 미하엘 엔데 작가의 작품인 '모모'였다. 나는 책을 다 읽고서 '초등학교 고학년 필독서'라는 문구를 발견했는데, 어릴 적의 나는 책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했기에 저학년으로서 고학년의 언어를 이해했다는 성취감에 으쓱했었다.


하지만 미하엘 엔데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작가가 아니었다. 세상의 쓴맛을 혀끝으로 나마 겪어본 성인 되고서 다시 읽은 모모의 세상은 내가 읽었던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었다. 그의 문장들은 아이도 어른도 모두 읽을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감상을 일으키는 '심상'을 가진 시에 가까웠다.


미하엘 엔데는 초현실주의 화가인 아버지를 두었다. 철학자이자 화가인 그의 아버지 에드가 엔데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현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생각보다 냉철하고 잔인한 느낌이 환상이라는 모양새를 가지고 현실을 보다 현실적으로 표현해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미하엘 엔데는 그의 사후에 "동화와 판타지라는 수단을 통해 기술과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고발한 철학가"로 평가받기도 했다.


에드가 엔데의 작품을 구글에 검색하여 나온 그림들. 


그는 모모 말고도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오늘 소개할 책은 그의 흥미로운 작품 중 중 단편들이 모아진 단편집 <렝켄의 비밀> 중 '끈기 최고 트랑퀼라 거북이'이다. 책에는 사색의 소재가 될 상징들이 담긴 단편들이 줄기차게 들어있으니, 혹시 읽어볼 분들은 그가 묘사하는 현실이 어떤 상징들로 표현되고 있는지 짚어가다 보면 보다 깊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끈기 최고 트랑퀼라 거북이


'끈기 최고 트랑퀼라 거북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단편의 주인공은 거북이다. 여느 거북이 동화가 그렇듯 성실한 거북이 트랑퀼라는 느리지만 꾸준히 걸어 동물나라 대왕 레오 28세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간다. 수많은 다른 동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찾아간 그곳엔 레오 29세의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고 거북이는 "거 봐요!" 하고 뿌듯해하며 마무리된다.


보물창고의 책 소개에 따르면 이 동화는 "아이들에게는 인내심과 끈기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어른들에게는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 준다."라고 교훈적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런데 그렇게 마냥 찬란하게 해석하기에는, 거북이는 너무 융통성이 없고 고집불통이었으며 그가 도달한 결혼식은 28세가 아닌 29세의 결혼식이었기에 완전히 목표에 도달했다고 볼 수 없었다.


미하엘 엔데가 남겨둔 해석의 여지가 이곳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


거북이 트랑퀼라는 결혼식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여러 소식들을 전해 듣는다.


 레오 28세의 결혼식은 이미 끝났대. 

 레오 29세가 태어났대.

 레오 28세의 장례식이 열렸대.

 레오 29세의 즉위식이 열렸대.


하나같이 그의 목표가 사라졌다는 소식들이었고 이는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트랑퀼라는 여전히 앞으로 전진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에 다다랐을 때, 그가 열망한 레오 28세의 결혼식이 아닌 레오 29세의 결혼식이었음에도 그는 목표를 이룬 듯 으스댔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없었다.

레오 28세의 결혼식을 한 사람의 목표, 크게는 꿈이라고 산정해 보자. 요즘은 종종 내가 꿈꾸던 목표가 미래에 그대로 있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러저러한' 기획자가 되고 싶은데, 살다 보니 경험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시 고민하고 수정하고 다시 정립해가는 것이 성장이 아닐까. 스무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내가 다른 꿈을 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그것이 곧 나의 성장의 증거가 될 것이다. 


트랑퀼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와중에 친절한 사람들이 전하는 소식들을 듣는다. 분명 그것은 그가 처음 정했던 목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사색의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소식들을 부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을 '우직함', '성실함'으로 봐야 할지 '생각의 게으름', '아집'으로 봐야 할지는 독자의 몫인 것이고 나는 후자로 본다. 책에서 트랑퀼라는 모든 길목에서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할 용기를 가졌어야 하지 않을까? 사색이 생략된 목표를 향한 달리기는 오히려 낭떠러지를 향한 지름길일 수도 있다.

트랑퀼라 앞에 놓인 수많은 길목들. 그가 고민해보고 생각해볼 기회들이 참 많았다.


그는 기만했다.

트랑퀼라는 마지막 목표지점에 다 달아서 으스댄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28세가 아닌 29세의 결혼식이었다.

하객은 '축하'라는 중요한 목적과 '즐거움'이라는 부수적 여흥을 위해 결혼식에 참석한다. 축하의 당사자가 달라진 결혼식은 의미는 사라지고 행사라는 껍데기만 남아 즐거움을 줄 뿐이다. 트랑퀼라는 정말 그냥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어 그 먼길을 달려간 것일까? 


의미를 잃은 목적의 달성은 당사자에겐 껍데기만을 남길뿐이었다. 트랑퀼라는 스스로 꿈을 이뤘다고 했지만 결국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과 같은 것이다. 달라진 것을 보지 않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꿈을 이뤘다고 되뇌는 기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관성을 가지고 달린다. 하지만 때로는 관성을 이겨낸 멈춤이 필요하다.

관성을 이겨내는 건 꽤 어렵다. 달리다가 멈추면 앞으로 고꾸라질 수도 있고 상처도 날 수 있다. 그리고 다시는 달리게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멈추어 서서 내가 향하던 그 잔치가 주인이 변하지는 않았는지, 장소가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다른 길목에 더 멋진 잔치가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더 살피고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게 다다른 꿈 앞에서 깊은 해방감보다 스스로를 속여야 하는 찜찜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쉼을 위한 멈춤이 아닌 바로 보기 위한 멈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일시정지의 시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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