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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욜란다 Jul 21. 2022

04 그때 그 사람

#좋은 사람 #찝찝한 사람 #벌 받은 사람

시간을 거슬러 ‘그때’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났다.


시간 여행일  알았는데 공간 이동이어서 놀랐으며 나를  때로 데리고  다시 그들앞에 놓아 더 놀랐다.

Episode 1 #좋은 사람


'컴퓨터가 앞으로 미래 사회에는 필수 라더라' 말씀하시며 엄마는 당장에 학원을 알아보셨다. 80년대 말, 제5 공화국 때의 일이다. 갑자기 학교에 컴퓨터부가 생겼으니 오늘부터 내가 우리 반을 대표하여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지시로 강제 방과 후 활동 가입을 하게 되었다. 방과 후 활동이니 이제 귀가가 좀 늦을 것 같다고 엄마에게 말씀드렸고 컴퓨터도 한대에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눈으로만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일러바친 후의 일이다.




엄마는 요리조리 알아 보시더니만 마침 시장통 버스 정류장 상가 2층에 컴퓨터 학원이 있으니 이제부터 그 곳으로 다니라고 하셨다. 학원은 버스 종점이니 집에서는 두 정거장이나 가야 했지만 학교 후문으로 가면 한정거장이면 되니 가볼만했다. 학원가는 준비물은 컴퓨터 학원 가방에 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고 공테이프를 가지고 오면 탱크 게임이나 갤러그 슈팅을 Copy 해 갈 수 있다고 해서 늘 챙겨갔다. 항상 동생, 언니와 함께 학원을 다녔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나만 다니게 된 것이 이상하지만 아무튼 싫지 않았다. 학교 컴퓨터 부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느니 뭐가 되었던 학원 가서 이것저것 조작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새로운 학원은 너무 즐거웠지만 단 한 가지 매주 화요일인지 수요일인지 윗동네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데모하는 날은 죽을 맛이다. 가는 길에 윗동네서 가스가 뿜어 나오면 온 동네에 매캐하고 메운내가 진동했다. 매주 있는 일이니 이 핑계로 학원을 빠질 수도 없어 그날도 열심히 컴퓨터 학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학원이 저 앞에 보인다. 파랑 불이 켜져 길을 건너려고 하는 순간 함께 길을 건너려던 맞은편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시장 안으로 모두 뛰어 들어가고 길 위에는 나만 남아있다.




나도 시장으로 들어가려면 어땠든 이 길을 건너가야 하므로 건널목을 막 건너고 있는데 어느 틈에 길 위에는 나만 있다. 오른쪽에는 언니 오빠들 시위대가 내려오고 있고 왼쭉에는 전경들이 있어 나를 두고 대치 중이다. 데굴데굴 휴지 같은 것으로 입구를 막은 불이 붙은 소주병이 내 앞으로 굴러오는 것이 신기해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는데 전투경찰 오빠가 한 손으로 내 배를 꺾어서 허리춤에 들고 다른 손으로 화염병을 다시 저 멀리 던지고는 던졌는지 발로 찼는지 잘 모르겠다 시장 안으로 뛰어들어 나를 거기에 놔두고 다시 전투를 하러 나가셨다. 방석복에 방석모로 가려져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를 구해 준 유일한 분. 좋은 사람이다.



Episode 2 #찝찝한 사람


좀 더 어릴 적의 일이다. 막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속으로만 말하고 떳떳하게 큰 소리로 말을 못 한다 하여 발표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엄마는 나를 웅변학원에 집어넣으셨다. 거기서 내가 뭘 배웠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평소에 말은 작게 작게 느리게 해도 무대에만 세워 놓으면 스피치는 떨지 않고 하는 이중적인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그날도 집에서 꽤나 가까운 웅변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고 오늘도 웅변학원 앞 상가 건물 사거리에서 '버버리 아저씨'의 낮술 주정이 시작되었다. '버버리 아저씨'는 우리 옆집 사는 분인데 눈 한쪽이 제 눈이 아니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부인이 도망가셔서 슬프신지 낮에도 술을 드셨고 술 드시면 동네방네 돌아다니고 특히 큰길 사거리에 나와 속옷 바람에 행패를 부리셨다.


‘버버리 아저씨’가 파출소에 끌려가시거나 할 때까지 상가 맞은편 문방구 밑에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을 딱 맞추어 나왔기 때문에 학원에 늦을 것 같은데 어쩌나 지각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몇몇 행인들 나를 포함 이 문방구 스탠드 밑에 들어가 '버버리 아저씨'의 행패를 한동안 직관하였다. 무섭지만 거의 행위 예술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음향 감독까지 스스로 하시는 점이 낯설지만 보면 빠져드는 공연이다.


한참을 관람하고 있는데 오른쪽에 아까부터 나와 바짝 붙어 서 있던 40대 정도의 말끔한 양복쟁이가 말을 걸어왔다. "얘야, 내가 지금 저기 건물에 너무 급해서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문이 고장 났더라. 네가 밖에서 좀 잡아줄래?" [......]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문이 고장 났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으니 아저씨가 옷에다 싸면 어쩌지? 하는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학원에 지금 가도 늦게 생겼다. “제가 웅변학원에 지금 많이 늦어서요 죄송합니다. 지금 가봐야 해요. " 경찰 아저씨들이 와서 '버버리 아저씨'의 양쪽 팔을 꾀차고 가시기 무섭게 나는 웅변 학원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영 마음이 그렇다. 생각할수록 찝찝한 사람이다.




Episode 3 #벌 받은 사람


오늘은 계속 제5 공화국 때의 일이다. 그때는 더러 반장도 하고 부반장도 하며 원치 않은 감투를 곧잘 쓰며 고단한 시절을 보냈다. 학급반 선거라는 것이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1학기 2학기 두 번 치르게 되는데 1학기에 반장을 한 사람은 2학기에는 연임이 불가하고 1학기에 부반장을 하면 2학기에 다시 선거에 출마해 반장에 도전할 수 있지만 두 번 부반장을 할 수는 없는 시스템이다. 나는 1학기에 부반장을 하고 2학기 때는 반장이 되지 못했으니 선생님은 과학부장이라는 명목으로 기존에 하던 부반장의 업무에 플러스 책임감 있어야 하는 선생님의 일을 떠 넘기셨다. 학급일지까지는 쓸 수 있었는데 학급 경영록을 베끼는 일 과학실 수업 준비 등등의 일도 해야 했다. 뭐, 자립심을 키워주시기 위한 특별한 경험 일 수 있지만 내가 선생이 되고 보니 선생님이 직접 하셔야 했던 일을 너무도 많이 한 것 같다.


그날은 수증기를 만드는 실험을 하는 날이었다. 본관의 과학실로 가서 아이들이 오기 전에 조별로 알코올램프와 삼발이 삼각대, 성냥 등을 구비하고 알코올램프에 알코올이 반 이상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만약에 없으면 알코올도 넣어야 했다. 그리고 과산화수소를 또 준비하는 일도 내 일이었다. 과학실의 선선하고 화학적인 공기가 싫지 않았지만 저 뒤쪽에 가운을 입고 있는 해골 모형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섭고 깜깜하다. 쉬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약 60명 반 아이들의 과학실험실 세팅을 아무 조력자도 없이 나에게 시키시는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나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복도에서 왁자지껄 아이들 줄 서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서둘러 과학실험 세팅을 마무리했다. 엘리제를 위하여 종소리가 울렸고 순간 밖에서 우악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누가 복도에서 이렇게 떠들래!!' 그럼 아이들이 복도에서 떠들지 교실에서 떠들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국민학생인데.


깜짝 놀라 선생님이 하실 일을 대신 마무리하고 서둘러 복도에 나갔을 때 교장선생님이 다자고짜 내 뺨을 때렸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 뒤에 담임선생님이 뒤늦게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조용 해 졌고 교장선생님은 교장실로 들어가시고 담임선생님이 다가와 내 얼굴을 안아줬다. 볼이 많이 빨게 지고 창피했으며 맞은 느낌이 뜨거웠다. 여태껏 선생님들에게도 부모님께도 제대로 맞아 본 적이 없었는데 아픔보다 더 큰 뜨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학군이 좀 낫다는 옆 동네로 이사를 왔다. 학군이 좋아서 그런가 아이의 뺨을 때리는 교장은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해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길에 저 멀리 밖에서 낯이 익은 대머리 할아버지가 베이지색 잠바를 입고 뒤뚱뒤뚱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고 있었다. 교장이다. 한쪽 팔이 기억자로 안으로 꺾이고 발도 절고 꺾인 손에는 일꾼들이 끼는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풍 맞았네,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모습이다. 벌 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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