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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욜란다 Aug 12. 2022

06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

그 때는 오직 '밥 때' 뿐


인생의 중요한 때를 말할 적에 나는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시계 없이 살기로 마음먹고 하루의 때를 어쩌다 알게 되었다는 글을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쓰고 나서 내 인생의 중요한 때도 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웃님의 댓글을 보았다.  그 적절히 중요한 '때'라는 것이 도대체무엇인지 글로 써 보지요, 하고 쓰기 시작한 것이 이번 주의 일이다. 


아직 나는 미혼이니 제때 제때 남들 다 하는 인생 숙제를 못한 내가 무슨 적당한 때를 논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 또 결혼을 안 했고 아이가 없는 것이 그것도 또 때를 놓친 것도 같고 시기와 때를 맞추어 살아야 하는 데 남들 다 하는 때에 나는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렇게나 많으니 조급한 마음이 들 때도 더러 있었다. 




그러고 보니 태어날 때와 죽을 때, 결혼할 때와 이혼할 때 머무를 때와 떠나갈 때를 나는 다 알 길이 없었고 알지도 못한다. 오직 내가 알고 컨트롤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때는 '밥때'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때


비록 국민학교 시절 교장선생님께 뺨을 맞은 아이였고, 꿈 많아야 할 여고시절에는 모범생 이었던 짝꿍이 논리적으로 의문나는 부분을 선생님께 질문했다가 점심시간에 담임선생님께 생물실로 불려가 구타를 당한것을 목격하고도 도와주지 못했던 나 이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학창시절을 보낸 나에게도 스승의 날 하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나에게 밥때의 소중함을 알려 주시고 반드시 지키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신 여고 1학년때 영어 교과 나의 담임선생님 이시다. 영어를 잘하게 만들어 주신 것도 아니고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나무라셨던 분도 아니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라며 특별히 강조하신 적도 없다. 선생님의 가장 큰 가르침은 아침 조회 때와 저녁 종례 때 어김없 한결같이 365일 밥을 제때 먹어야 한다는 말씀 뿐 이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십수 년이 지나 중년의 나이가 되고 난 후에도 교과의 내용보다도 이 생활습관을 몸에 배게 만들어 주신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의 마음이 든다. 내가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가장 큰 고마움이다. 선생님 본인이 밥때를 놓치며 공부하고 일하시느라 위를 모두 버려 심한 위장병을 앓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밥때를 잘 지키는 것이고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 가도 아프면 소용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번 고장 난 위를 다시 고쳐 쓰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 이니 너희만 할 때 그저 제때 잘 먹고 잘 자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너무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고 아침 끼니를 거르지 말고 지각을 해도 좋으니 특히 아침밥만은 꼭 먹고 등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러기로 했다.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 졸리지 않은 상태로 엄마가 차려 주시는 아침 정식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엄마도 딱히 내가 지각하는지 몇 시까지 학교에 가야 하는지 묻지 않으셨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한번도 학교가라고 지각이니 일어나라고 깨우신 적은 없다. 그저 차려놓은 아침밥을 싹싹 다 먹고 등교를 하는 딸내미를 당연하다 생각하셨던 것 같다. 등교길에 아무도 없다. 눈치가 보여 후문으로 들어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아직 1교시 시작 전이고 자율학습은 끝난 것 같았다. 한참 조회 중인 아침 시간 드르륵 앞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뒷문을 열고 들어가면 친구들이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더 싫어서 그냥 앞문으로 들어갔다. 




[......]


"너, 이노무 자으식 왜 이제 와?"


"아침을 먹고 오느라 이제 왔습니다."


"아이고 그으래!! (허그해 주시는 선생님) 잘했어 잘했어. (머리도 톡톡) 그래그래. 너희들도 아침 먹었지? 안 먹었어? (친구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신다) 안 먹었어? 왜 안먹었어! 다 이렇게 아침밥을 꼭 먹고 와야 한다. 얼른 들어가, 들어가. 자알~했어. 잘했어." 




그 후로 한 명 두 명 아침밥 친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일 늦게 등교하던 나의 뒤를 따르는 친구도 있었다. 한 분단 정도가 늦게 등교를 하게 되었고 빈 운동장을 후문을 통해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등교를 하는 우리 반 친구들은 교감선생님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으며 담임선생님은 교감선생님께 불려 가셨다. 




오늘은 여느 날과는 다르게 아침밥 동지들을 한 줄로 복도에 '분류'하셨다. "야, 진짜 미안한데, 오늘은 좀 벌을 받아야겠다. 1층 가서 교무실 앞 복도 끝에서 끝까지 '이제는/지각을/ 하지/ 않겠습니다.' 큰 소리로 말하면서 오리걸음 한번 하고 와. 교감 듣게 큰소리로." 나와 절친들은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는데 구령을 딱딱 맞추며 오리걸음을 하고 교실로 올라왔다. 그 후에도 나는 계속 그 가르침을 실천했다. 2학년 때 한번 걸려서 손바닥을 맞았고 3학년 때는 방과 후 책상을 옥상으로 빼 놓고 다음날 아침 먹고 등교하는 것이 걸려 담임선생님이 대입 원서를 써 주시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 도움 없이 스스로 입학 원서를 써야 했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땡땡이치거나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냥 아침밥을 서두르지 않고 먹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위가 아주 건강하다. 




선생님은 스스로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밥때를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말씀과 함께 말뿐이 아닌 실천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학교의 시스템은 다르지만 내가 교사가 되어 선생님을 생각하니 밥때를 알게 해 주신 선생님의 가르침과 용기가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시지옥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게 도와주셨고 어른들이 만든 시스템이 모두 건강한 것이 아님을 알려 주셨다. 




"한참 크는 애들이 잠도 충분히 자고 아침도 먹고 학교에 와야지 왜 학교에서 자고 쉬는 시간에 급하게 도시락을 까먹냐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지금이 밥때를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때라며 흥분하시던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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