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없는 사랑 노래 6곡
"사랑해" 없는 사랑 노래는 없을까?
때로는 세상에 사랑을 말하는 노래가 너무나 많아서 사랑이 흔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랑이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남용되는 모습을 보면,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사랑해"라는 말이 울림 없는 공허한 외침이 되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내게 오는 길의 가사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좀 아껴둬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사랑한다는 그 말 아껴둘 걸 그랬죠 이제 어떻게 내 맘 표현해야 하나"
제가 <크로스 게임>을 감명 깊게 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나 봅니다. 아오바는 갑자원에 진출한 코우에게 "너를 줄곧 싫어했다"면서 반어법으로 고백하는데, 심지어 뺨까지 때립니다. 츤데레도 이련 츤데레가 없죠. 제겐 '사랑한다는 흔한 말'보다 훨씬 감동이 컸습니다. 아오바의 고백처럼 "사랑해" 없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총 6곡 선곡했습니다. 귀한 사랑이 점점 흔해져만 가고 사랑 노래는 범람하는 시대에, 오히려 사랑을 말하지 않아서 더 달콤하고 애틋한 느낌을 주는 명곡들입니다.
"매일 그대와 아침 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매일 그대와 도란도란 둘이서 매일 그대와 얘기하고파 새벽비 내리는 거리도 저녁놀 불타는 하늘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걸 같이 나누고파"
들국화의 1집 7번 트랙에 수록된 명곡입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걸스데이 소진의 목소리를 통해 리메이크되었고, 1년 후 아이유의 꽃갈피 둘 앨범에서도 리메이크되어 요즘 세대에게 잘 알려진 곡이죠. 가사 그대로 ‘매일 그대와’ 사소한 일상을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노래입니다 상대방과 매 순간 함께 하고픈 마음, 서로의 품에 안겨 잠에 들고 같이 아침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고 싶은 마음. 이게 진짜 사랑이 아니면 뭘까요?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요즘엔 뭔가 텅 빈 것 같아 지금의 난 누군가 필요한 것 같아 친굴 만나고 전화를 하고 밤새도록 깨어 있을 때도 문득 자꾸만 네가 생각나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난 널 느껴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이번 큐레이션은 이 노래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저에게 이 곡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랑해 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최고의 세레나데예요. 가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진심 어린 고백처럼 느껴지는터라, 아내를 위해 쓴 노래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신해철이 아내와 연인이 되기 전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워낙 예쁘고 진정성 있는 가사 덕에 아내는 이 노래를 통해 신해철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하죠. 결혼 이후 아내에게 제대로 선물하기 위해 만든 곡은 '단 하나의 약속'입니다.
“나는 사랑 노래로 채워진 음악들이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활동을 하지 않고 쉬는 동안 다양한 책을 읽고 경험을 하게 되면 당연히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노랫말로 쓰게 된다. 사랑 내용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신해철은 생전에 이와 같은 말로 가요계의 과도한 사랑 타령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는 커리어 내내 자신의 말을 지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사회비판적 노래를 만들었고, 계몽적인 노랫말로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쳐 왔죠. 사랑 노래마저 그 흔한 사랑해 한 번 없이 이렇게 감동적으로 만들었고요. 후반에 영어 가사로 “I love you”가 나오기는 하지만 랩이니까 넘어가주세요. 하현우가 신해철을 향한 존경심을 담아 복면가왕 무대에서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 무대에 큰 감동을 받아 무한반복으로 감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노래방에서 가시, 고해, 응급실 대신 일상으로의 초대는 어떤가요?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쳐다보면 하늘만 바라보고 내 맘을 모르는지 알면서 그러는지 시간만 자꾸자꾸 흘러가네 스쳐가듯 내 곁을 지나가도 돌아서서 모른 척하려 해도 내 마음에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대는 무지갠가 뛰어갈 텐데 훨훨 날아갈 텐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시대를 앞서간 명곡입니다. 한국의 80년대는 유독 그 시대에 나올 수 없는 노래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죠. 사랑이 불현듯 찾아오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가사는 밀당을 표현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이적이 유학 중에 아내를 위해 만든 자작곡입니다. 아내를 위한 진심이 담긴 노래여서일까요? 다른 노래와는 달리 이적이 리메이크를 허락하지 않는 유일한 곡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보너스 트랙이었지만 김동률이 나서 타이틀곡으로 적극 권장하여 3집 타이틀곡이 되었다고 해요. '다행이다'를 모르는 한국인은 아마 없겠죠. 3집 <나무로 만든 노래>의 수록곡은 모두 명곡이니 앨범 전체를 통으로 들어보는 걸 추천합니다.
"Oh, they say people come, say people go This particular diamond was extra special And though you might be gone, and the world may not know Still I see you, celestial When I should but I can't let you go?"
크리스 마틴이 기네스 팰트로와 이혼하던 중 만든 노래입니다. 보통 사랑을 주제로 한 콜드플레이의 명곡으로 ‘Fix you’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오히려 헤어진 후에도 상대를 ‘영원한 빛’이라며 찬양하는 이 곡이 더 깊은 여운을 주더군요. ‘Everglow’는 크리스 마틴이 직접 만든 단어입니다. 영원과 빛을 합쳐 영원한 빛을 만들었지만, 그런 것은 사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슬프게 들리는 것 같네요.
이후 방탄소년단과 함께 발매한 싱글 'My Univers'는 크리스 마틴의 새로운 연인, 다코타 존슨에게 헌정하는 곡입니다. 제이홉의 랩 가사 중 '시링'이 한 차례 등장하기는 합니디만, 이 노래 역시 사랑, love 등의 단어는 그 외에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을 직접 말하지 않고 이 정도로 로맨틱해질 수 있다는 점이 놀랍네요.
"You are so beautiful To me You are so beautiful To me Can't you see You're everything I hoped for You're everything I need"
원곡자는 빌리 프레스턴이지만 조 카커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유명한 노래입니다. 빌리 프레스턴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담아 만들었는데, 정작 지금은 남자가 여자를 꼬실 때 부르는 노래로 인식되어 있죠. 실제로 미국 알앤비 듀오 샘 앤 데이브의 샘 무어가 라디오에서 밝힌 일화에 따르면, 샘 무어가 공연장에서 여자를 꼬시기 위해 최대한 느끼하게 감정을 실어 이 노래를 커버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 광경을 본 빌리 프레스턴은 이 곡이 어떤 곡인지 알고 그러는 거냐며 화를 냈다고 해요.
짧은 가사에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어 감정 전달에 특화된 노래로, 커버하는 가수 스타일에 따라 곡 해석이 각양각색입니다. 국내에도 다양한 가수의 커버가 있으니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조 카커의 목소리는 그리 듣기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이외에도 엘튼 존의 'Your song', 폴리스의 'Every Breath You Take'(아, 이건 미저리인가?)가 떠오르네요. 사랑해 없이 사랑을 말하는 여러분만의 숨은 명곡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