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 때는(한 살 더 먹을 때가 얼마 안 남아서 그런가 '라테는 말이야'가 절로 나오는구나) 수능이 끝나면 운전면허시험을 보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주민등록증은 때가 되면 나오지만 운전면허증은 때가 되면 따게 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연한 수순을 밟지 못했다. 지금은 명함도 못 내미는 빠른 년도생이기도 했고 바로 재수를 준비하러 상경(라떼를 들이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단어 선택임을 인정한다)을 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학교를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방학마다 부모님 집으로 가서 지내는 것이 내 생활의 전부였다. 어느 것 하나 운전을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자동차를 살 수 있는 돈이 없는 대신 나에게는 젊어서 튼튼한 다리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돈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동차가 없는 대학생은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데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운전면허 취득 적령기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 한 달 한해씩 멀어져 갔다. 그 기간 동안 나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는 취업 준비와 취업, 연애와 결혼에 시기적절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다 나의 뇌가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는 신호를 나에게 전해준 날이 있었다. 결혼 후 2세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과 나누던 때였다. 적령기에서 한참 멀어진 나는 자신이 없었는데, 나의 뇌는 그동안 쌓아둔 정보들을 종합해 운전의 필요성과 나의 가능성을 끝없이 늘어놓았고 결국 설득을 당했다.
학기 중에는 무리가 될 것 같아서 겨울 방학 중에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을 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난 후 나는 학원 갈 준비를 했다. 정해진 시각에 'OO운전면허학원'이라는 글자가 앞유리창 쪽과 손잡이 쪽에 큼직하게 쓰여 있었던 노란색 봉고차가 정해진 장소로 나를 데리러 왔다. 처음엔 입시 준비를 하던 학생 때로 타임슬립을 떠나는 줄 알았다. 학원차가 나를 데리러 오는 것만으로도 그랬을 텐데 봉고차에 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보다 어렸다. 운전면허 취득 적령기는 역시나 수능 직후였다.
운전면허 학원은 1차 필기시험과 2차 실기 시험과 3차 주행 시험을 준비하고 실제로 시험을 보기도 하는 곳이었다. 필기시험을 위한 수업을 듣긴 했는데 사실은 학원에서 나눠주는 기출문제집을 달달 외우는 방식이었다. 편하긴 했지만 학원에 등록을 하면서 낸 돈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본전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실기 시험을 위한 수업에서는 시동 켜는 법, 전조등을 켜는 법, 전진하는 법, 후진하는 법, 코너를 도는 법, 주차를 하는 법들을 배웠는데 어디까지나 학원에 마련되어 있는 시험 코스들에만 맞춰진 수업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여기서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최대한 꺾다가 운전석 사이드 미러가 이 지점까지 오면 그때부터 풀기 시작하면 된다.'와 같은 족집게 요령이 만연했다. 필기시험 준비할 때처럼 편하긴 했지만 과연 내가 이렇게 면허증을 딴 후에 시험 코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운전을 할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생각은 눈앞의 현실을 창조한다고 했다. 3차 주행시험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3차 주행시험 전에 정해진 횟수만큼 일대일 강습을 받게 되는데, 2차 실기 시험을 보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배운 조악한 지식과 경험들로 '진짜' 자동차를 몰고 '진짜' 도로로 나가게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운전대에는 다름 아닌 내가 앉아서 운전을 한다. 바로 옆의 조수석에 강사님이 앉아 계시긴 했지만 정말이지 큰 도움만 주셨다. 내가 앞차와 충돌할 것 같을 때 조수석에 설치해 둔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외에는 굉장히 말을 아끼시는 편이었고 나 역시 그랬다. 질문이 생길 때마다 질문을 하기에는 내 눈앞의 상황에 맞춰 내 손발을 움직이기에 바빴다. 학원 이름이 적혀있고 주행 연습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지 않았다면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를 향해 울려 퍼지는 클락션 소리에 귀가 멀었을 것이다.
3차 주행시험은 세 번을 떨어지고 네 번만에 붙었다. 이것도 내돈내산인지라 학원에 기부(?)한 시험접수비가 참으로 아깝다. 나의 모자란 공간지각능력과 순간판단력만 나무라기엔 나의 뛰어난 비판적 사고력으로 운전면허학원의 커리큘럼이 한참 모자랐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날숨의 콧김이 뜨거워지고 있으므로 3차 시험 합격 기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