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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달선생 Jan 22. 2024

도로가 화기애애 해지려면

도로 위에서 운전을 하는 중이셨거나 혹은 빨간 불에 잠시 정차를 하고 계셨을 때, 다른 차에 있는 운전자와 육성으로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있으시다면...아마도 고성이 오고 가는 상황이지는 않으셨는지요? 클락션을 꾸욱꾸욱 여러 번 누르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하시고도 분이 풀리지 않으셨겠지요. 화를 식힐 겸 창문을 내린 김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상대 운전자 쪽을 노려보셨겠지요. 안타깝게도 순간의 눈빛을 놓치지 않은 상대 운전자도 비슷한 얼굴로 선생님을 보았을 테지요. 그 이후엔 어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번째 손가락을 치켜들어 올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손을 모두 사용하셨다면 정말 재미난 해프닝이었을 텐데요. 그런 일은 없었겠지요. 이어서 두 분은 아주 걸---쭉한 대화를 나누셨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졌나 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수도권에서 5년째 운전을 하고 있는 여성 운전자입니다. 저는 웬만큼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클락션을 절대 누르지 않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제 클락션 소리가 가리키는 자동차 안에 혹여라도 어깨가 무진장 넓고 인상은 험상궂으며 웃옷의 가장자리 부분에 용의 꼬리가 살짝씩 보이는 사람이 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주먹으로 이길 자신이 없어요. 두 번째는 클락션을 누르는 순간 제 안에 있던 자잘 자잘하기만 했던 짜증과 화들이 한데 모여 분노라는 이름표를 단 채로 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보조석에 앉아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참 한없이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지요. 세 번째는 보복성 의도를 가득 담아 클락션을 눌러도 기분이 딱히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기분이 계속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클락션 소리를 유난히 자주 들은 날이었거나 너무나 클락션을 누르고 싶은 순간을 만났던 날이면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해 봅니다.


일단 깊은 한숨부터 내쉬고 '하...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음...클락션의 종류가 하나뿐이라 그런가...클락션 버튼을 다섯 가지 정도로 만들어서 (1) 제가 먼저 가도 될까요?, (2) 그럼요, 물론이죠, (3)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4) 교통 규칙을 지켜주시겠습니까?, (5) 아이코, 미안합니다...이런 목소리가 나오게 하면 어떨까...만약 너무 길어서 전달이 잘 안 된다면, 마찬가지로 버튼 개수는 다섯 가지 정도로 하되 각기 다른 의미를 뜻하는 소리를 나오게 해도 좋겠다....'고요.


아직 업체에 문의를 해보진 못했는데요. 가능성이 크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저는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중교통인 버스와 아이들이 타고 있는 차가 차선을 바꾸려고 할 때는 이유를 불문하고 기다리기. 한 번 해보세요. 별 것 아닌 듯한데 기분이가 많이 좋아집니다. 두 번째는 차선을 바꿀 땐 반드시 깜빡이를 켜고, 무리해서 차선 바꾸지 않기. 제가 당했을 때 제일 기분 나빴던 것이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로 무리해서 차선을 바꾸는 사람을 만났을 때였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 비상등 버튼을 애용하기. 말 그대로 좋아하여 애착을 가지고 자주 사용하자는 거죠. 양보를 받았을 때나 조금이라도 급하게 끼어들었을 때나 느리게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주차장에서 출차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차를 할 땐 비상등 버튼을 눌러보세요.


그랬을  따라오는  이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기분 나쁜 클락션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요. 기분 나쁠 일이 없으니 일그러진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어 얼굴이 예뻐집니다. 예뻐진 자신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지요. 도로 위가 화기애애 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어지는 거죠. 어때요? 해볼만하지 않나요? 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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