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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달선생 Feb 14. 2024

경고등이 켜졌다면 무조건 입니다.

자동차 계기판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자동차를 정비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정보를 검색없이 모두 알기는 어렵다. 나의 경우, 운전 중에 계기판보다는 네이게이션(스마트폰)을 더 자주 본다. 운전 중에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와 '어디에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기판에서 잊지 않고 매일 확인하는 부분이 딱 한 곳 있다. 바로 주유 경고등이 그려져 있는 곳이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가득 채우면 작고 빨간 막대가 FULL을 의미하는 F를 가리키고, 휘발유를 거의 다 쓰면 EMPTY를 의미하는 E를 가리키는 부분이다. 


내가 하루에 운전하는 거리가 보통 50km 정도 되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급하게 주유를 해야하는 일이 없다. 그럼에도 매번 마음이 조급해 지는 타이밍이 있다. 작고 빨간 막대가 점점 E에 가까워지다가 어느 날, 내가 느끼기에 '번쩍!!!'하고 주유소에 있는 주유 기계 모양의 표시등(이하 '주유 경고등')에 불이 들어올 때이다.


나보다 한참 먼저 운전을 시작했던 남편 덕분에 '주유 경고등'이 들어왔다고 해서 바로 차가 멈추지도 않고 그러므로 바로 주유소로 직행할 필요는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주유를 계속 하지 않은 채로 몇날 며칠을 지나보낼 수는 없다. 여기에서 '그럼 언제 주유를 해야하나?'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 때 유용한 계기판 정보가 바로 '주행가능거리'이다. "앞으로 이만큼(단위는 km) 더 달릴 수 있어."하고 알려주어서 조급해진 나의 마음을 꽤나 진정시켜준다. 그래서 나는 '주유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면 곧바로 '주행가능거리'가 표시된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러면 오늘 퇴근하고 나서 주유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일 퇴근하고 나서 주유를 해도 되는지가 결정이 된다. 


안타깝게도 사람에게는 계기판이 없다. 에너지가 충분히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그 사람의 표정이나 느껴지는 활력으로 짐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와 어느 정도까지 계속해서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기 스스로도 그것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계속에서 불에 뛰어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몸과 마음에서 신호를 보내온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몸에서 먼저 신호가 왔다. 몸이 피곤해서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해냈던 일들을 그만큼 해내지 못했다. 보통 때의 피로였다면, 하루만 푹 자고 일어나도 금방 회복을 했을텐데, 그 때는 그러질 못했다. 아무리 자도 피로감이 사라지지 않고 내 어깨에 붙어서 거머리처럼 계속 내 에너지를 뺏어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때 잠깐이라도 쉬어 갔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내 에너지를 쓰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그랬더니 다음 번엔 마음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처음부터 신호가 강하게 온 것은 아니었는데 점점 더 강해졌고 나는 지치다 못해 주저않게 되었다. 마치 마음에 나에게 "내가 몸한테 들었던 얘기가 있었거든? 너는 왠만해선 원래 너의 방식을 바꾸지 않을 거라고. 설마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기다려보겠다고 했었어. 그런데 몸의 얘기가 맞더라고. 그래서 너가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방법을 써보려고 해. 힘들겠지만 이해해주면 좋겠어."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성취감과 유능감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았던 나에게 그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몸이 신호를 보냈을 때는 놓쳤더라도 마음이 신호를 보냈을 땐 멈춰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 보냈어야 했다는 뒤늦은 깨달음에 몸서리가 쳐졌다. 언젠가부터는 눈물도 나지 않았고 얼른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몸의 마음'과 '마음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단은 버텼고 그 이후로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얘네들의 마음을 돌릴까) 고민했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만 했다.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 몸과 마음이 나를 어여삐 여겨 마음을 조금씩 돌려주었고 나는 또다시 지금, 여기에 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많이 지쳐보이는 사람이 있거나 혹은 본인이 그러하다면, 하루라도 좋으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아무 이유가 없는데 좋아하는 무언가를(없다면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이나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 자체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과 그 누군가에게도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는 없어요.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 것으로 스스로를 아껴주시고, 지금 당신이 있는 그 곳에서도 당신이 평안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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