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자작 일기

2. 몸으로 생각하는 일

by 김소형

살아가는 일은 시간과 공간을 내가 점유하는 일이다.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한다'는 것 안에 '생각한다'도 포함시켰지만, 세상의 모든 명제는 자기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이미 드러나 있는 명제들은 어떤 것도 진실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삶이 따라온 명제만이 진실이 된다.

생각이 생각만으로 명료했던 것은 10대와 20대였다. 여러 가지로 자유롭지 못했던, 새장 속 새와 같았던, 어떤 것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없었던 시간들. 그래서 그 새는 생각만 줄창 했다.

하지만 오래 갇혀 있었던 새는 문을 열어줘도 날아가지 못한다.


나는 오랫동안 '몸'을 제대로 인정하거나 대접해주지 않았다. 몸을 위해 뭔가 특별히 하거나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미식, 내게는 기분 좋게 먹으면 다 미식이다. 다이어트, 그런 건 굳이 할 필요 없다. 화장, 아주 기초적으로만 하면 된다. 옷, 있는대로 입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살아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었음에 감사드릴 뿐이다)

나는 운동형 체질도 아니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두 가지를 빼놓고 운동은 특별히 해본 적이 없다. 그 두 가지가 하나는 검도고, 다른 하나는 국궁이다. 이 두 가지 운동 모두, 몸을 생각해서 한 운동이 아니라 정신을 세우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이었다.

대학 때 했던 검도(대한검도)는 졸업한 뒤에도 시내도장에 다니면서 좀 했지만 실력이 좋았다고 말할 순 없다. 자세가 좋다는 소린 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의 힘은 조금 길러지지 않았을까.

몇 년 전 시작한 국궁도 마찬가지다. 애아빠가 엄청 반대해서 시작이 쉽지 않았는데 기어코 했다.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하는 게 문제였다. 거의 매일 활터에 가서 훈련을 한다는 것은 (일주일에 세 번을 간다 해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시간 날 때 하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삶의 루틴으로 삼아야 가능한 운동이었다. 활쏘기를 시작했지만 일년도 넘게 쉬는 등 그리 꾸준하지 못했던 나는, 그만 둘 생각도 여러번 했다. (잘리기는 싫어서 연말이 되면 쓰린 속으로 밀린 회비를 내곤 했으니) 그런데 활과 화살을 가지러 활터에 갔다가 활을 쏘는 이들을 보면,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다시 하고 있다.


살면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생각'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데카르트는 생각을 밭을 일구듯 일궈서 마침내 생각의 열매들을 주렁주렁 수확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들은 머리 속에서 가지를 치고 자라다가 스스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손으로 글을 써야 그것이 생각이 되고, 몸으로 활을 쏘아야 그것이 생각이 된다. 머리속 생각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몸은 허약하고 생각만 무성한 것은, 뼈대는 앙상하고 살집만 커진 모양새여서 처음 보기엔 그럴 듯할지 몰라도 툭 치면 넘어진다. 내가 그러함을 지금은 알고 있다.

몸으로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것, 몸으로 생각하는 것이 진짜 생각하는 일이라는 것.

시간과 공간, 지금 현재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을 '곧장'(생각만 하지 않고) 하는 일이야말로 '살아있는' 일이라는 것. 글쓰기와 삶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


'몸을 움직이는 만큼만 살아있다'는 단순한 명제를 내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좀 쑥스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으니, 스스로에게 특화된 길을 찾아야 하겠지.

나이들어가면서 삶의 명제가 점점 단순해진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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