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자작 일기

3. 부채 이야기

by 김소형

조선시대 시전(市廛)을 엿보다

“아이고, 이게 뉘십니까요, 역리나리 아니십니까요?”

“지나가다 들러봤네. 어디 좋은 물건 없는가.”

“저희집에서 취급하는 것이야 모두 지역에서 최고급 특산품으로 올라온 것들이라 알아주지 않습니까요? 특별히 생각하고 계신 물건이 있으십니까요?”

역리는 시전 안을 휘둘러보았다. 옷을 새로 지어야 하는데 옷감이 없다고 한숨 쉬는 소리를 듣고 나온 참이었다. 때깔 좋은 옷감을 골라 몇 마 사갈 요량으로 둘러보는데, 한쪽 벽에 나란히 펼쳐져 있는 부채들이 눈에 띄었다. 역리의 시선이 부채에 머문 것을 본 상인이 너스레를 떨었다.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이것들은 전주 선자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온데 아는 어른이 있어 특별히 몇 개 내어주신 것들이고만요.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물건입지요.”

역리의 마음을 훔친 부채는 대나무 껍질로 변죽을 치장하고 선면에는 검은색 옻칠을, 속살에는 은은하게 황칠을 한 죽피 칠접선이었다. 흔하지 않은 옻칠에 단아한 구슬이 매달려 있는 선추까지, 한눈에 마음에 쏘옥 들었다.

‘그래도 어디 내가 탐낼 물건인가’

역리는 짐짓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옻칠에 저런 치장을 한 부채는 양반들이나 들 물건이었다. 살수도 눈어림으로 세어보니 얼추 40살은 되어보였다. 중인 신분인 자신한테는 30살 부채가 고작일 터였다. 걸맞는 부채도 있긴 하였으나, 한번 눈에 들어온 부채가 있는 이상 다른 것들은 보아도 겉눈이었다. 설렁설렁 가게를 둘러보는 역리 앞에 눈치 빠른 상인이 죽피 칠접선을 들고 다가왔다.

“나리한테 딱 어울리는 물건입니다요. 한번 부쳐 보시지요.”

“어찌 이러는가. 이것은 양반들이나 들 수 있는 물건 아닌가.”

“나리가 양반님네와 다를 게 무엇이 있답니까요. 권세도 있겠다, 재물도 있겠다, 이런 부채 하나 드는 게 무슨 큰 일이 되겠습니까요.”

“어허, 이 사람이…….”

못 이기는 척 부채를 받아든 역리가 가만히 눈을 감고 부채바람을 일으켰다. 은은하고 그윽한 향에 대나무 숲을 한 바퀴 감아돌고 나온 듯한 깊은 바람이었다. 사락사락 댓잎 부딪는 소리도 들리는가 싶었는데, 상인의 수다가 역리의 몽상을 깼다.

“거 보십시요, 이 부채는 딱 나리 물건이고만요. 사람하고 물건도 합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요?”

“자네도 들은 풍월이 심상치는 않네그려. 좋네, 이 부채는 값이 얼마인가?”

그날 역리는 사러갔던 비단은 까맣게 잊고 쥘부채만 하나 품에 넣고 돌아왔다. 상인이 부르는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으나 이렇게 맘에 드는 부채를 찾기도 쉽지 않을 터다. 게다가 부채는 평생을 함께 하는 친구 같은 물건이 아니던가.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는 역리의 입가에 자꾸만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면 맑은 바람

선비들이 마치 몸의 일부처럼 지니고 다녔던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의 멋과 풍류, 그리고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부채의 재료인 대나무는 선비의 곧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며, 부채를 펼치는 부드럽고 절제된 동작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내면을 보여주는 행위로 여겨졌다. 선비들은 부채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같은 사군자나 산수화를 그려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고, 한두 줄의 시를 적어 벗과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회화의 거장들 역시 선면화(扇面畵, 부채그림)와 선면시(扇面詩)를 즐겨 그렸다.

정인(情人)들이 주고받던 마음도 어찌 부채에 담기지 않았을까.


한겨울에 부채 선물을 이상히 생각지 말라/ 너는 아직 나이 어리니 어찌 능히 알겠냐만/ 한밤중 서로의 생각에 불이 나게 되면/ 무더운 여름 6월의 염천보다 더 뜨거우리

위 시는 선조 때의 풍류선비 임제가 어린 기생에게 보낸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시가집 ‘고금가곡’ 중에는 이에 대한 화답시 같은 시도 한 편 실려 있다.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은 불을 끄라고 보냈도다 /

눈물로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부채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졌다. 모양과 재료, 제작방식에 따른 이름 외에도 여덟가지 덕을 가졌다 하여 ‘팔덕선’, 또는 여덟가지 용도를 지니고 있다 해서 ‘팔용선’이라 불렸다.

그러나 이름이야 뭐라 부르든 그것이 중하겠는가. 그대와 나 사이에 부채가 있으니, 그 건너다보이는 사이사이로 청랑한 바람 한 줄기 흘러가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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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전라도는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포함하였고 전주는 호남제일성이었다. 부채는 전주의 특산품으로 임금께 진상하던 것 중 하나. 전주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라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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