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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용 Apr 15. 2024

천 원짜리 보약

아주 예전에 이건 천 원도 안 했던 식품이다.

언제 이천 원이 됐을까.


가격이 올랐다 한들 이건 아직도 내겐 보약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무렵, 미칠 듯이 앓았던 며칠에

이걸 먹었다. 아주 대단히 아팠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한데, 누가 이걸 끓여줬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가족인지 친척인지, 누군가 끓여준 이걸 먹으니 땀이

쫙 빠지고 이내 정신을 차렸다.

오뚜기 스프다.

반드시 소고기여야 한다.

집에서 가장 오래된 냄비 top3에 들어가는 냄비가

타들어갈 때까지 끓인다.

아주 뜨거워야 하고, 질척거려야 한다.

덜 풀어진 가루가 몽글거리는 덩어리로 씹히는 것은

오히려 좋다.


밤새 요란한 일들을 마치고, 무거운 마음에 땅으로

꺼지는 듯한 몸을 질질 끓어 간신히 스프를 떠마셨다.

역시나 땀이 쭉 나고 몸이 기력을 찾는다.

끝내야 할 것을 끝내고 감춰야 할 이야기를 이제는

꼭 감추겠다는 의지도 생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나의 보약이 이렇게 저렴하다는 것.

항상 어떤 끝에 서서 먹고 있다는 것.


싸구려 스프에 인생 최대치의 고민을 얹어 마시고

나는 내일을 기다린다.


이제는 편해질 거란 확신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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