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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뚜로 빼뚜로 Jan 09. 2023

슬램덩크로 농구를 배운 게 뭐 어때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23> 리뷰


  슬램덩크는 주간 만화지 <소년 챔프>에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연재되었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만화다. 한국은 199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본 문화콘텐츠들이 정식으로 수입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그전까지 사회적으로 일본풍의 느낌이 나는 것들을 부러 멀리하고자 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슬램덩크를 한국에 들여오면서 현지화 전략에 많은 공을 들였고, 최대한 왜색을 배제하려 노력하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다.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권준호....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 이웃나라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3040 팬들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2023> 포스터, 안경 선배 권준호는 벤치에 있다.

 

<이젠 내게 림밖에 보이지 않아>

  이는 불꽃남자 정대만의 대사로 처음에는 링을 림으로 잘못 쓴 줄 알았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은 3년 연속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산왕공업고등학교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골대를 향한 집념을 보여준다. 농구골대가 동그랗게 생겨서 링(ring)인 것 같지만, 림(rim)이 맞다. 림은 둥근 것의 가장자리를 뜻하며, 농구골대에서 둥근 쇠 부분을 칭한다. 여기에 매달리면서 공을 꽂아 넣으면 덩크슛(Dunk shoot)이 되고, 이때 조금 더 강하고 시원하게 성공한다면 슬램덩크(Slam dunk)가 된다.

북산고에서 만나기 전, 정대만은 송태섭에게 농구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아무리 강백호가 체격 조건이 좋고, 농구에도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안한수 감독에게 하는 행동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 자신을 언제 경기에 투입시켜줄 것이냐고 따지는 것은 선수의 투지로 차치할 수 있다. 그러나 안감독의 양쪽 볼과 턱, 뱃살 등을 슬라임 마냥 조물딱 거리는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수준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리바운드의 왕, 강백호'라는 수식어 때문에 골대를 맞고 나온 공을 다시 잡아 기회를 만드는 것을 리바운드라고 한다는 것을 배웠고, 강백호는 진지한 농구 서사에서 적재적소 웃음을 주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26년이 지난 지금,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니 강백호는 최상위 난도를 자랑하는 금쪽이였다.

강백호만 감독님이나 선생님이 아닌 영감님이라고 한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원작자이자 감독, 각본을 맡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중학교 시절 농구부였고, 키가 작아 가드로 활동했다. 원작에서 다루지 않은 송태섭의 과거 이야기가 북산고등학교와 산왕공업고등학교의 경기 사이마다 들어있는데, 아마도 작가와 가장 많이 닮은 인물이라 첫 영화화하는 이야기로 삼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원작 슬램덩크의 가장 마지막 경기가 애니메이션 영화 슬램덩크의 처음이 되었다. 송태섭의 포지션인 포인트 가드는 주로 공을 적재적소로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데, 농구에서 5명의 선수 중 보통 1번으로 부른다. 그렇다면 정대만이 주인공일 수도 있는 <더 세컨드 슬램덩크>도 기대해볼 수 있겠다. 다음 편을 포기하는 그 순간이 바로 슬램덩크가 종료되는 날이니까.


슬램덩크로 농구를 배운 게 뭐 어때서.

  

  학원 교재를 넣은 아디다스 보조 가방에 팬시점에서 산 강백호 배지를 달고 다녔다.

  "너도 슬램덩크 좋아해?"

  "아니, 만화 안 봤어."

  "그런데 왜 강백호 배지를 달고 다녀?"

  "그냥 귀여워서 샀어"

  "농구 좋아해?"

  "아니, 규칙 하나도 몰라."

  강백호 배지를 본 친구들은 저마다 자신의 농구 지식을 뽐냈고, 나의 리액션이 미지근해서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농구공을 가져와 드리블이나 자유투 같은 것을 직접 알려주기도 하였다. 나는 평소에 즐기지 않는 농구를 하다가 손가락이 삐어 난생처음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더빙이나 자막판 중 추억 소환에 더 적합한 것은 무엇일까. 참고로 나는 자막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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