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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어릿 Oct 14. 2023

가을이 왔으니 예쁜 하늘을      선물로 줄게

A의 연서

처서라는 절기를 아는지 모르겠네. 입추는 8월 초라 가을 초입이라고 하기에는 한창 더울 때인데 처서는 진짜 이제 여름의 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의 선선함이 찾아오는 그런 시기래. 올해 처서가 8월 23일이었으니까 얼추 시기도 적당하지? 아침 공기가 서늘해지고, 저녁에 창문만 열어놔도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라.


이 시기가 좋은 이유는 내가 더운 걸 싫어해서 얼른 여름이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특히 이때가 하늘이 제일 예쁜 시기일 때라서 그래. 여름에는 비도 많이 오고 날씨도 습하다 보니 너무 구름 한 점 없이 맑거나, 잔구름이 잔뜩 껴서 예쁘다는 느낌이 안 나는데 이때가 되면 구름도 뭉게뭉게 떠다니기 시작해서 노을이 질 때쯤이면 구름에 걸린 노을빛이 특히 예쁘거든. 꼭 저녁 때가 아니더라도 대낮에 유유히 흐르는 구름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평화롭고 나른해질 수가 없어.


얼마 전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저녁 찬거리를 사고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데 그날 하늘이 딱 그랬어. 해가 구름 밑으로, 산 뒤로 넘어가면서 구름에게 후광을 만들어주고, 점점 붉어지면서 내 시선을 붙잡아 두는 그런 하늘이었지.


그 하늘을 보고 있는데 이걸 너한테도 자랑하고 싶었어. 최대한 그 예쁜 하늘이 담기는 곳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로 찍었어. 결과물을 확인해 봤는데 약간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자리에서 몇장을 더 찍었는지 몰라. 실제 하늘을 네모 모양으로 잘라서 내 휴대폰에 넣고 싶을 만큼 너무 아름다웠지만 그러지를 못해서 아쉬운대로 가장 만족스러운 사진을 너에게 보냈어. 하늘이 너무 예쁘다면서.


이런 날은 너랑 한강을 걷거나 공원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을 해. 그냥 과자 한 봉지에 시원한 맥주를 사들고 벤치에 앉아서 얼마 전에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지. ‘어제 내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옆팀 과장님이…‘ 라며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고 투정부리는 너를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귀여워 난 그냥 말 없이 미소짓고 있겠지. 그런 나에게 왜 웃냐고 하는 너를 보며 나는 하늘을 한번 보라고, 너무 예쁘지 않나고 하면 너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겠지.


가을 장마가 찾아와 비가 심하게 내리던 날이 있었어. 여름의 어느 날처럼 하늘은 어둡고 우산에 가려 하늘을 올려다 볼 수도 없었지. 바람은 또 어찌나 불던지 우산을 써도 소용이 없을 만큼 신발도 바지도 다 젖어서 찝찝한 기분이 들었어.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너는 그날 마침 아무 일도 없어서 집에서 쉬고 있었다는 거야. 아마 날 만나러 왔다면 비가 왜 이렇게 많이 오냐며 투덜댔겠지. 그런 날은 너에게 하늘을 보여주고 싶지 않더라.


그런데 있잖아, 그렇게 비가 그친 다음 마주한 하늘은 평소 보다 훨씬 더 예쁠 거야. 어둡고 흐렸던 만큼, 우리가 올려다 보지 못했던 만큼 하늘은 우리에게 찬란한 위로를 건넬 거야. 비오는 날을 견디느라 고생했다고. 무더운 여름을 잘 견뎌냈다고.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하라고.


그러니 나는 너에게 그런 예쁜 하늘을 선물로 줄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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