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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어릿 Oct 15. 2023

가을이 왔다고
예쁜 하늘을 선물로 받았다

B의 연서

이제는 아침에 긴팔을 챙길지 반팔만 입을지 고민을 해야 하는 계절이 왔어. 습관적으로 오늘 날씨를 확인하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지. 혹시나 몰라 긴팔을 챙겨 나오긴 했는데 잘한 것 같아. 점심 때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약간 살갗에 찬 기운이 스치더라. 가방에 넣어뒀던 얇은 긴팔 셔츠를 꺼내서 얼른 입었어.


이렇게 계절이 바뀌고 옷도 바뀌면 난 먼저 걱정부터 들어. 계절만 바뀌면 나는 항상 감기에 걸리거든. 어느 날에는 목감기, 어느 날에는 코감기, 또 어느 날에는 한꺼번에 다 찾아와 몸살 때문에 하루 종일 끙끙 앓기도 해. 약을 먹어도 소용 없고, 입맛도 없어서 며칠은 죽만 계속 먹지. 이번 가을에도 아마 난 그럴 거야. 그러면 넌 또 날 걱정하겠지.


오늘도 나한테는 그냥 평범한 하루였어. 일은 지루하고, 밥은 늘 먹던 메뉴였어. 특별히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회사 사람들도 별로 나한테 관심이 없는 듯했어. 날 부르는 사람도 없고, 다들 자기 일 하기에 바빴지. 다들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처럼 보였어. 그래서 느긋하게 일을 처리하면서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했지. 경양식 돈까스가 좋을까 수제비가 좋을까 하면서.


칼 같이 퇴근하고 집에 가려는데 마침 너한테 연락이 왔어. 하늘이 예쁘다면서 사진을 보내왔더라. 오렌지빛 노을이 구름을 물들이고, 하늘에 파란 어둠과 붉은 노을이 함께 담겨 있는 그런 사진이었어. 그 사진이 너무 예쁘기도 했지만 그런 예쁜 하늘을 보고 내가 생각났다는 너의 말이 너무 귀여웠어. 맨날 나한테 장난만 칠줄 알았던 네가 이런 하늘도 볼 줄 알고 또 그 하늘을 보면서 내 생각도 할줄 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좋더라.


그 잠깐 시간 동안 네가 보내준 사진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어. 혹시나 나도 예쁜 하늘을 너한테 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런데 이미 해가 거의 다 넘어가서 어둑어둑 하더라. 퇴근 시간이 늦으면 이게 안좋다니까. 그렇게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고 가다가 발걸음을 멈췄어. 사람들이 지하철역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도 나는 그 입구에 서서 잠깐 동안 고민했어. 이대로 집에 가는 게 아쉬웠어. 예쁜 하늘을 보고 내 생각이 났다는 너를 보고 싶었어. 


그래서 너에게 맥주 한잔 하자고 보냈어. 언제쯤 답장이 올까 하고 기다리려던 찰나, 너에게 바로 답장이 왔어. 좋다고, 우리가 자주 가던 맥주집에서 보자고, 지금 바로 출발하겠다고. 얼마나 답장이 빠른지 휴대폰을 가방에 채 넣기도 전에 도착한 너의 그 대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어.


그제서야 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갔어. 역 안은 늘 그렇듯 사람이 많았고 지하철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비좁았지만 신경쓰지 않았어. 너와 맥주집에서 뭘 안주로 먹을지 계속 고민하느라 불편할 틈이 없었거든. 나도 그렇지만 너는 버터구이 오징어를 좋아했으니 네가 오기 전에 미리 주문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맥주집에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어. 널 기다리는 동안 화장도 고치고, 머리도 다듬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시계를 봤는데 아직 네가 오려면 멀었더라. 넌 늘 그랬듯 날 보면 환하게 웃어주겠지. 얼른 네가 왔으면 좋겠다.


얼굴도 보고 싶고 목소리도 듣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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