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의 연서
맥주를 마시는 내내 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죽헤죽 웃으며 나를 바라보기만 했어. 내 얘기를 듣고 있긴 한데 뭔가 딴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대체 뭘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이제 보니 알 것 같아. 아마 넌 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어. 나를 앞에 두고 내 생각을 한다는 것도 웃기긴 한데 나는 그런 네가 좋아. 내가 있든 없든 눈도 마음도 생각도 항상 나를 향하고 있는 네가 좋아.
맥주를 다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점점 네가 나에게 가까이 오는 게 느껴졌어. 충분히 우리 사이가 가까워졌을 때 네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은 이유도 알 것 같아. 난 항상 따뜻한 네 손을 잡는 걸 좋아했으니까. 특히나 이런 계절에는 난 항상 네 손을 잡고 싶어 했었으니까. 이제 네 손이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왠지 그런 마음을 너도 아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그렇게 내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항상 내 손을 먼저 잡아 주는 네가 좋아.
집에 들어가기 전에 너는 나에게 이번 가을도 나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어. 항상 나에게 예쁜 말을 해주는 걸 좋아하는 너이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놀랄 때가 많아. 어떻게 항상 저런 예쁜 말을 생각해낼까. 저 예쁜 한마디를 하기 위해 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할까.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너도, 내가 좋아하는 만큼 기분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해. 그래서 나도 너에게 그런 예쁜 말들을 해주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진 않았어. 너한테 받은 예쁜 마음을 나도 전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해야 네가 설레할 지 쉽게 감이 안오더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찾아서 마음 속에 품었어. 조만간 너를 또 만나면 이 말을 가장 잔잔한 분위기에, 가장 적당한 날씨에, 가장 뜬금 없는 타이밍에 너에게 해주려구. 네가 나한테 어떻게 해줬었는지, 내가 언제 가장 기분이 좋았는지를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네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려구.
‘다음 계절도 우리 함께 하자.’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계절을 함께 했어. 당연하겠지만 앞으로도 많은 계절들을 함께하겠지. 그런데 지금 이렇게 지나가는 이 계절들이 꼭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겼으면 좋겠어. 이번 가을은 네가 나에게 예쁜 하늘을 선물로 준 계절로 남을 거야. 그러면 나는 또 다음 가을을 맞이했을 때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보면 예쁜 말을 하는 네가 보고 싶겠지. 앞으로도 그렇게 너와 많은 계절을 함께하고 싶어.
방금 너에게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어. 가는 동안 무슨 일 없었냐고, 잘 들어갔냐고 너에게 물었어. 너는 아직 안잤냐고, 별일 없이 잘 들어왔으니까 걱정말고 얼른 자라며 나의 내일을 챙겨주었어. 내일도 출근을 해야 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과 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만 오늘은 어제만큼 내일의 출근이 짜증나지 않아. 나에게는 내 일상을 항상 궁금해 해주고 예쁜 순간에 날 먼저 떠올려 주는 네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내일 또 보자. 꼭 만나지는 않더라도 각자의 일상을 서로에게 들려주자.
언제나 그랬듯 우리가 함께 있다는 그 느낌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오늘도 고마웠어. 잘자고 좋은 꿈 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