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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어릿 Dec 12. 2023

긴 팔을 꺼내 입고  핫팩을 챙기기 시작했어

A의 연서

아무리 생각해도 가을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참 애매한 계절이야. 예쁜 하늘도 좋고 선선한 날씨도 좋지만 조금 따뜻하게 입었다 싶으면 덥고, 조금 얇게 입었다 싶으면 여지 없이 저녁에 찬바람이 불어와. 그래서 다들 그렇게 감기에 걸리나 봐. 나도 이번 가을에는 감기 때문에 제법 고생을 했어. 목감기가 낫나 싶더니 곧바로 코감기가 걸렸지. 너는 그런 나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는지 이것저것 많이 챙겨줬어. 덕분에 아프지 만은 않았던 그런 가을을 보냈지.


감기에 걸렸던 것과는 별개로 나는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꽤 오랫동안 반팔에 셔츠만 입고 다녔어. 날씨가 조금씩 추워질 때마다 사람들 옷이 점점 두꺼워지는데 내 옷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 기껏 해야 얇은 셔츠에서 조금 두께감 있는 셔츠로 바뀌었을 뿐이었지. 몸에 열이 많으니까 그렇게 입어도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고 조금만 있으면 금세 땀이 나더라구.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입고 다닐 수 없는 계절이 왔어.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기 시작했고,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까. 그래서 나도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입고 다녔던 반팔을 곱게 접어 넣어두고 긴팔 니트와 반폴라를 꺼냈어. 아침에 출근할 때 너무 추워지니까 이렇게 입으면 이제 딱 맞더라.


그렇게 긴팔을 꺼내 입고 다니니 문득 추위를 많이 타는 네가 생각이 났어. 넌 항상 손발이 차다고 내 후드 뒤에 손을 넣고 다니거나 내 옷을 가져가서는 어깨와 팔을 감싸며 따뜻해 하곤 했었어. 다행히 나는 손이 사계절 내내 따뜻한 편이라 너에게 그렇게 옷을 뺏겨도 괜찮았어. 오히려 내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향이 좋다며 웃는 너를 볼 수 있어서 더 좋았어.


그래도 이번엔 그런 너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평소에 나는 쓰지도 않지만 너를 만날 일이 있으면 주려고 핫팩을 주문했어. 핫팩을 받고 나서는 언제 갑자기 너를 만날지 몰라 가방에 꼭 하나씩 넣어다니며 출근을 했어. 가끔 너한테 주고 나서 까먹고 가방에 넣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어느샌가 습관적으로 가방에 핫팩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어.


이 겨울의 추위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네 손의 온기 만큼은 내가 지켜주고 싶었어. 손이 시리다며 두 손을 모아 호호 불던 너도 귀여웠지만 핫팩을 꼭 움켜쥐고 해맑게 웃는 너를 보고 싶었어. 그러다 어느 날에는 나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양손을 가지런히 내밀며 핫팩 있냐는 눈빛을 보내는 네가 귀여웠어. 적어도 이번 겨울에 만큼은 그런 모습들을 계속 보고 싶었어.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는 너에게 줄 핫팩을 챙겨 나오는 걸 깜빡했어. 요즘 내가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나 봐. 앞에서 실컷 잘 챙긴다고 으름장을 놓고 이제 와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내 스스로도 좀 웃기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혹시나 오늘 내가 너를 만나게 된다면 편의점이라도 들러서 핫팩을 하나 사야겠어.


이런 식으로라도 너와 자주 함께 하고 싶어. 오래 있는 것보다 자주 함께 하는 게 더 좋으니까.

지난 가을에 나는 너에게 예쁜 하늘을 선물로 줬었지.

이번엔 너에게 온기를 선물해 줄게. 겨울이 왔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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