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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어릿 Mar 11. 2024

보편이라고 해서 다 같은 보편이 아니다

이기주 산문집, 「보편의 단어」

보편이라는 단어의 정의에는 ‘모든 것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보편은 어느 누군가, 또는 어느 무엇이 아닌 세상 만물을 그 범위에 두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엔 엄청난 함정이 존재합니다. 보편의 정의가 마치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이기주 작가의 신작 「보편의 단어」는 이러한 보편의 함정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책의 챕터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모두 우리 주변에도 있는 것들이지만 그 단어들이 작가에게 닿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편’과 ‘일반’은 확실한 차이가 존재하죠. ‘일반’은 우리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느낌이 든다면 ‘보편’은 내가 가지고 와서 나만의 보편을 만들 수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기주 작가의 「보편의 단어」에 등장한 61가지의 보편 중 세 가지 정도만 선정해 짤막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작가는 ‘살아가는 일은 시간과 공간과 사람을 스쳐 지나가는 일의 총합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곁에 머물기 위해선 그 사람과 내가 동일한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존재하는 경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추억을 만드는 데 있어 공간적인 제약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만날 수 없을 때 우리는 전화를 하고, 그마저도 힘든 상황에서는 메신저와 SNS를 이용하죠. 가깝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과는 그저 전화만 했을 뿐인데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분명 떨어져 있지만 옆에 같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물론 그 사람과 시간만 많이 보낸다고 해서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지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에게 느끼고 있는 소중함을 그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쁜 말이나 선물을 건네기 보다 먼저 시간을 나눠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위로


작가는 ‘위로의 언어를 들려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예전만큼 주목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대중과 각성의 분발을 독려하는 전문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추앙받는 분위기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SNS나 유튜브만 보더라도 위로보다는 채찍질에 가까울 정도로 각성을 강조하는 콘텐츠가 많이 올라오고 있죠.


이러한 매운맛 독설은 대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말들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이러한 독설은 마치 그렇게 살지 말라며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죠.


위로는 막상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때로는 말이 위로가 될 때도 있고 그저 옆에 있어주기만 하는 게 위로가 될 때도 있죠. 어느 것이든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위로랍시고 독설처럼 냅다 던지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나의 위로가 그 사람의 기분을 십 원어치 만큼이라도 나아지게 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겠죠.



행운


뜻밖에 찾아온 행운은 언제나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원하던 것을 얻게 되면 그날 하루는 괜히 행복한 기분이 들죠. 이렇게 생각하면 행운과 행복이 이어져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행운이 우리 행복의 일부분일 수는 있겠지만 그 전체는 될 수 없죠. 대부분의 우리 일상에서 행운이 찾아오지 않음에도 대체로 행복한 걸 보면 알 수 있죠. 즉, 행운이란 건 결국 찰나의 행복을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운이라는 건 어디 한 군데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찰나의 행운도, 찰나의 불행도 언젠가 모두 우리를 스쳐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오늘 운이 좋았다고 해서 그것만 좇을 필요도 없고, 오늘 불운했다고 해서 내일도 그렇다는 법은 없죠. 그러니 지천에 널려있는 세잎클로버를 두고도 네잎클로버만 찾아 헤메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이기주 작가의 『보편의 단어』에는 이렇듯 보편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들에 작가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여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또 이 글을 쓰면서도 같은 단어이지만 작가가 느끼는 그 단어에 대한 의미와 제가 느끼는 의미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단어를 대하는 기분이나 감정이 조금씩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왜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 하며 싸울 필요는 없겠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보편이 있고 저 또한 제 보편에 따라 이 글을 썼으니까요. 어쩌면 작가는 사람들의 보편이 서로 부딪혀 충돌하기 보다는 여러 보편들이 어우러져 또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생각을 이 책에 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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