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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완 Sep 14. 2023

교구대회 파견미사

오늘이 벌써 7월 30일 일요일이다. 아침에 눈뜨기가 점점 더 힘들다. 머리만 대면 기절했다가 순식간에 아침이 돼서 일어나는 느낌. 포르투갈에 오자마자 하루종일 시간을 야무지게 쓴 대신 피로감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낮에는 시에스타 문화가 있어서 무더위를 피해 쉬게 해 주고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공식 행사를 진행했는데 단짝과 나는 낮에도 1분 1초가 아까워 쉼 없이 돌아다닌 결과이다. 그래도 기분 좋은 피로감이랄까.

다만, 어제부터 입술이 터지기 시작하더니 포진이 생겨버렸다. 체육관 바닥에 다들 모여 침낭만 깔고 자고 있으니…!! 물론 생각보다 맨바닥에서 잘 자고…(기절했다가) 일어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입술에 수포가 잔뜩 올라온 적은 처음이다. 이뮨 비타민에 비타민 C까지 챙겨 먹었는데도 몸이 힘들긴 한가보다. 매일매일 즐겁기만 해서 힘든 줄도 몰랐는데 몸에서 신호를 보내오는구나. 그래도 다른 데 아픈 곳 없이 입술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꼼꼼하게 비상약을 챙겨 온 자매가 내 입술을 보더니 연고를 내주었다.


오늘은 오후에 교구대회의 마지막 행사이자 꽃인 파견미사가 있는 날이다. 우리 교구는 전세 버스가 있어서 오후 3시경에 출발하기로 했고 자유롭게 시간 보낸 후에 오후 2시까지 숙소로 오면 된다. 단짝과 나는 잽싸게 어제 구매한 비키니를 입고 위에 옷을 걸쳐 입었다. 마지막으로 타비라 섬의 해변에 다녀오기로 했고 시간이 빠듯했기에 급히 나왔다. 선착장에서 왕복 티켓을 구매하고 다시 섬으로 들어갔다. 이동 시간도 아까워서 섬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해변으로 걸어갔다.

점심식사를 포기하고라도 이 해변을 다시 누리고 가겠다는 의지의 두 여인네! 비치타월을 깔고 서로 선크림을 발라준 뒤 누웠는데 천국이었다.

오늘도 얼음장 같은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도 하고 얕은 데서 앉아있기도 하면서 현지인 바이브를 맘껏 누비고 있었다. 그런데 슬슬 배가 고팠다. 마트에서 장 봐온 바나나도 남아있었는데 급히 나오는 바람에 못 챙겨 왔다. 단짝이 그나마 아침식사로 챙겨 온 빵이 있어서 반씩 나눠 먹고 앉아있는데 바로 옆에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대가족이 놀러 왔는데 맥주가 한 박스 보였다. 미니 사이즈의 Sagres 맥주였는데 얼마나 마시고 싶던지... 옆 가족한테 맥주를 사 마실까 싶어 용기를 냈다. 머뭇머뭇 다가가 우리한테 팔면 안 되겠니 하고 물어봤는데 이게 웬일. 그냥 선뜻 2병을 내주는 것이다. 병따개로 병뚜껑도 따서 주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연실 오브리가다(Obrigada;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자리로 돌아와서 맥주를 마시는데 미지근한 맥주였는데도 왜 그렇게 맛있던지!!! 정말 꿀맛이었다.

그렇게 또 해변을 보며 좋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앉아있는데 옆에서 꼬마 숙녀 둘이 병뚜껑이 오픈된 맥주를 한 병씩 들고 오더니 우리한테 주는 게 아닌가?! 얼마나 귀엽던지!! 완전 감동이었다! 옆 가족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다시 한번 가서 인사를 했다. 단짝하고 둘이 우리는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자주 이야기하는데 정말 그렇다. 그리고 맥주 2병도 감사한데 4병씩이나... 타비라의 친절함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지금 생각해도 단짝과 나는 이때의 기억을 베스트 중의 하나로 꼽는다.

아쉬움을 남기고 1시에 다시 보트를 타고 광장 쪽 선착장에서 내려 우리의 특기인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빨리 씻은 뒤 사발면을 꺼내서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붓고 먹는데 하... 물놀이 후에 먹는 라면이란!!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할 건 다 했구나 싶은 뿌듯함!  


오후 3시에 다들 모여서 버스를 타고 파견미사가 있을 Estadio Faro/Loule Stadium (Estadio Algarve)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다른 지역에 흩어져있던 여러 다양한 국가의 순례자들이 국기를 들고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북유럽에서 온 애들은 어쩜 하나같이 그리 핸섬한 지 눈에 확 띄었다.

우리 교구는 무대를 바라보도 중간 지점에 앉았는데 다행히도 그늘이 있어서 그렇게 덥지는 않았다. 나는 끝쪽 줄에 앉아 있었고 우리 뒤로 걸어 다닐 통로만큼 비워두고 다시 다른 나라 순례자들이 앉아 있었다. 끝줄에 앉아있어서 그런지 기념품 교환하려고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하필 이 날 캐리어에 기념품을 두고 안 챙겨 온 나... 다들 교환하는 기념품들을 보니 각자 국기 모양의 배지나 각국 문양의 열쇠고리, 실로 만든 팔찌 등이 유용해 보였다. 모자나 가방에 여러 나라에서 받은 기념품을 달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미니 바나나 우유와 허니버터 아몬드를 사서 포장해 왔다... 한국 느낌 나는 기념품은 그나마 한국 전통 모양의 와인오프너 겸 손톱깎이였는데 10개 챙겨 옴... 그래도 교구에서 준비해 준 기념품 중에 네임택과 묵주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미사가 시작되면서 각국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이 흰 제의를 입고 걸어 나가시는데 행렬이 엄청 길었고 경건함이 뿜어져 나왔다.

미사는 현지어인 포르투갈어로 진행돼서 이해를 못 했지만 미사 형식은 같기에 한국말로 중간중간 응답기도를 하면서 참여했다. *영성체 때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배려해 주셨는지 외국 신부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해주셨다. 은총의 미사가 끝나고 눈이 마주치는 해외 순례자들과 사진도 찍고 인사도 하면서 신속히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타비라에서의 마지막 밤이기에 우리 교구 인원 전체가 회식을 하기로 했고 Riberia 거리에 있는 인도 식당으로 갔다. 이제 8월 1일부터 본격적인 본 대회가 시작되면 교구대회는 비교도 안될 어마어마한 인파로 전체가 다 같이 움직이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신부님 1명 + 청년들 6~7명씩 본 대회에 같이 다닐 조를 정해주었다. 나는 5조였는데 우리 조 신부님은 이틀 전에 시내에서 만나서 젤라또를 사주시고 그다음 날 카페에서 우연히 또 만나 커피값을 내주신 그 신부님이셨다. 우리 조 청년들은 5명이 20대였고 한 명이 30대 초반, 그리고 40대인 나 이렇게 7명이었다. 인원이 너무 많아 조별로 앉아서 식사를 했다. 신부님이 엄청 유쾌하셔서 애들이 재미있어하며 마음을 활짝 열었다. 나는 여전히 젊은 친구들 사이에 있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자리도 즐겁고 애들도 밝으니 참 보기 좋았다. 우리 조는 먼저 맥주로 목을 축이고 피자, 커리하고 난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난이 한국처럼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아닌 바삭한 과자 같았다.

2차는 조별로 움직이기로 했고 일단 광장으로 나갔다. 신부님께서 광장 옆에 늘 줄 서 있는 Tavira Romana에서 젤라또를 사주셨다. 광장에 있는 무대에서 공연을 하길래 잠깐 보다가 골목에 있는 바에 갔는데 옆 테이블에는 멕시코에서 온 WYD 순례자 커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맥주 medium 사이즈를 시켰고 20대 젊은 청년들이 Grande 사이즈를 시켰다는! 아주 야무져 보이는 자매하고 마주 보고 앉았고 바로 옆으로 멕시코 커플이 있었는데 자매의 주도하에 대화를 했다. 어쩜 영어도 잘하고 이쁘던지.

조금씩 피곤해질 무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와서 공용 샤워실에서 씻고 빨래를 하고 얇디얇은 침낭에 다시 몸을 구겨 넣었다. 오늘도 새벽 1시가 넘어서 자는구나.


너무너무 평화롭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따뜻한 타비라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다. 이런 도시가 있는지도 모르고 왔기에 오히려 기대치도 못했던 순간들을 잘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유시간이 주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그 시간을 더 기쁘게 보낼 수 있었다. 타비라에서의 교구대회는 잊을 수 없는 귀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내일은 본 대회가 열리는 리스본으로 이동한다. 드디어 교황님을 뵈러 가는구나 싶다. 교황님하고 셀카 찍는 게 꿈인데 꼭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을 잠시 갖자마자 기절해서 잠이 들었다.




*영성체 - 미사 중 성찬예식.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 빵과 포도주를 우리 몸에 모셔서(섭취) 하나가 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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