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완 Dec 11. 2023

보스니아 메주고리예로 이동

8월 12일 토요일

새벽 6시쯤 눈을 떴다. 짐을 들고 거실에 내려오니 조식으로 시리얼과 과일이 준비되어 있었다. 부실해 보여도 아침식사로 꽤 든든하다. 같이 온 동생은 근처에서 하루 더 숙박하고 산세바스티안(San Sebastián)으로 이동할 생각이란다. 미슐랭의 성지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다. 얼마나 맛있는지 먼저 경험해 보고 정보를 공유해 주기로 했다. 각자의 여정을 응원해 주고 한국에서 보자는 말을 끝으로 동생과도 헤어졌다. 


이제 엄마를 만나러 이동할 시간이다. 아침 9시 55분 비행기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lgrade)를 경유해 오후 3시 반경에 보스니아 사라예보(Sarajevo) 공항에 도착하면, 버스를 타고 메주고리예(Medjugorje)로 가야 한다. 바르셀로나 공항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호스텔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나와 약 5분 정도 걸어가니 Rodalies 역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일 줄은 정말 몰랐다. 왼편 건물 앞에 El Prat de Llobregat 공항이 표기되어 있어서 창구 직원에게 티켓을 구입해 기차를 탔는데 10분이 지나도 공항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음 도착역을 확인해 보니 이미 공항과는 먼 곳이었다. 분명히 바르셀로나 공항행 티켓이라고 생각하고 시간도 확인하고 탔는데 다른 기차를 잘못 탄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려서 반대 홈으로 넘어갔다. 다시 Rodalies 역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15분 정도 지났을 무렵에 도착했다. 그 기차에서 두 외국인 남자를 만났는데 캐리어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혹시 공항에 가는 길이냐고 물어봤고 그렇다고 해서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다시 원점인 Rodalies 역으로 돌아왔다. 설상가상 편도 티켓인데 왕복으로 다시 돌아와서 그런지 개찰구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친절한 두 외국인이 창구에 이야기를 해줘서 비상문을 열고 나왔다. 


지하철은 오른쪽에 있는 곳이 입구였다. 멀리서 봤을 때 주차장 아니면 지하통로인가 보다 했는데 지하철 타는 곳일 줄이야. 두 외국인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티켓판매기에서 공항으로 가는 티켓을 구매했다. 이때가 오전 7시 50분쯤이었다. 호스텔에서 6시 40분쯤 나왔으니 한 시간이 소비된 상황이었다. 아침 9시 55분 비행기인데도 아침에 이상하게 일찍 나오고 싶더라니 제시간에 나왔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 

바르셀로나 공항은 Terminal (T1)과 Terminal (T2)가 있어서 비행기 편이 어느 터미널에서 출발하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나는 세르비아 항공이라 T2에서 내렸다. 공항에 들어가 체크인 카운터에 줄을 섰는데 긴장이 되었다. 유럽 내 비행기는 수화물 규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세르비아 항공에서는 무료로 기내 수화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작은 가방과 기내용 캐리어(8 kg/ 40 cm × 23 cm × 55 cm)만 가능하다. 위탁 수화물은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한다. 기내용 캐리어 사이즈가 규정에 딱 맞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내 캐리어는 넓이와 높이가 +-3cm 정도의 오차가 있었다. 차례가 돼서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까다로워 보이는 여직원이었는데 말을 걸어보니 친절했다. 캐리어도 8kg가 넘을 것 같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컨테이너 벨트에 올려놓았는데 무게를 확인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기내용 수화물(Cabin Baggage) 딱지를 붙여주었다.

보안검색대(Security)를 지나 탑승 게이트에 도착하고 나니 9시였다. 탑승시간(boarding time)이 9시 10분이었으니 딱 맞춰서 도착한 것이다. 배가 고파서 햄버거라도 하나 사 먹고 싶었지만 시간이 애매해서 패스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베오그라드까지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짧은 비행이라 음료만 나올 줄 알았는데 샌드위치도 나왔다. 배가 고팠던 터라 맛있게 먹고 창 밖을 보는데 저공비행을 해서 구름과 지상이 동시에 보였다. 뭉게구름이 피어났다는 말은 이때 쓰는 건가 싶을 정도로 솜사탕처럼 뽀송뽀송해 보이는 구름들. 

오후 12시 반 경에 베오그라드 공항에 도착해 경유 카운터(transfer counter)로 가서 사라예보로 가는 비행기 편 체크인을 했다. 

카운터 뒤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 여기 근무환경이 기가 막히다. 업무에 지칠 때쯤 뒤를 돌아보면 힐링되는 기분일 것 같다. 


공항이 작아서 한 바퀴 휙 돌아보고 탑승 게이트로 왔다. 2시 반에 출발해서 약 1시간 후에 사라예보에 도착한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셔틀버스를 타고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프로펠러가 달린 소형 비행기가 보인다. 이 정도 사이즈는 타 본 적이 있어서 괜찮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으니 바람의 저항을 받는 공포스러운 비행은 아닐 터다.  

기내에서는 간단한 스낵을 제공해 주었다. 사라예보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장 중간에 내렸는데 하늘이 정말 미쳤다. 너무 아름다워서 한 바퀴 돌아가면서 영상을 찍을 정도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걸어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그 정도로 공항이 작고 아담하다. 공항 출구로 나와서 엄마에게 사라예보 공항에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내두었다. 이제부터 와이파이존이 아닌 곳에서는 핸드폰 사용이 안된다. 한국에서 30일 기간으로 유심을 구입했는데 보스니아는 지원국가에서 제외였다.


공항에서 나오면 맞은편에 버스 표지판이 있다. 오후 4시 10분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해서 메주고리예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세고비아에서 온 한 부부도 만나 버스를 기다리며 세고비아 맛집 정보도 얻었다. 

그런데 도착 시간이 지났는데도 버스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럽이라 조금 늦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4시 반이 넘어가자 안 되겠다 싶어서 그 부부하고 같이 택시를 잡아 이동하기로 했다. 나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리고 부부는 시내로 이동한다. 택시 요금은 따로 냈는데 버스 터미널까지는 10유로를 냈고 약 10~15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창구에서 메주고리예 버스행 티켓을 예매하려고 문의했더니 직행버스는 하루에 한 대 오후 3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성수기/ 아니면 코로나 이후라 그런지 시간표도 미리 알아본 것과 달랐음) 오후 6시에 모스타르(Mostar)로 가는 버스 티켓을 끊어줄 테니 모스타르 버스터미널에서 메주고리예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라고 안내해 주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모스타르행 버스 요금 26 마르카(약 18,980원, 1 BAM = 약 730원)를 신용카드로 예매하고 근처에 환전소를 찾아보았다. 유럽이니까 유로만 있으면 될 줄 알고 보스니아 화폐(마르카, BAM)는 환전해오지 않았는데 작은 상점들은 현지 화폐만 사용 가능한 분위기였다. 버스 터미널 바로 옆에 우체국 겸 환전소가 있었으나 주말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ATM에서 인출을 하기로 했다. 체크카드는 트레블월렛과 토스 카드를 챙겨 왔는데 트레블 카드는 유로만 인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토스 카드를 사용했다. 우선 메주고리예까지 이동만 하면 되니 50 마르카만 인출했는데 수수료는 10.75 마르카가 붙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가 없다. 

종일 이동하느라 허기지기 시작했다. 버스 터미널 바로 옆 식당에 손님들도 많고 맛있는 냄새도 나서 들어갔다. 그런데 메뉴판에 영어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햄버거만 알아볼 수 있었다. 식당 직원에게 물어보려고 기다리는데 너무 바빠 보였고 핸드폰 데이터 사용이 안되니 구글렌즈로 번역할 수도 없다. 감사하게도 옆 테이블에 있던 가족들이 도움을 줘서 햄버거와 콜라 (약 5,110원/ 7 마르크)를 포장 주문해 버스 터미널로 왔다. 몇 입 베어 먹고 있는데 6시 정각에 모스타르행 버스가 도착했다. 짐 칸에 캐리어를 싣고 버스에 탑승해서 남은 햄버거를 끝냈다.

슬슬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모스타르로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에메랄드 빛 호수, 마을, 자연이 어우러져 평화로움이 묻어 나온다. 

중간중간 다른 정류장에도 들러서 사람들을 태우고 가느라 시간이 지체된 건지 2시간 반도 넘게 걸려서 모스타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Globtour 간판이 있는 곳에서 메주고리예 버스행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거의 출발시간 임박해서 도착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리가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자리는 있었다. 모스타르에서 메주고리예까지 버스 요금은 5 마르크(약 3,650원)이다. 버스 터미널에서는 유로 사용도 가능하다. 

여기서는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해서 엄마와 성지순례 여행사 담당자에게 이동 상황을 알렸다. 이번에도 버스에 오르기 전에 짐칸에 캐리어를 싣는데 짐 하나당 1유로를 내야 한다고 했다. 1유로 동전이 없으니 거슬러줄 수 있냐고 묻고 있었는데 멀찍이 보고 있던 한 외국인 청년이 대신 내주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어디서 온 누구인지 물어봤더니 헝가리에서 온 데이비드라고 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있는데 참 감사하다. 


버스가 출발하고 5분 정도 달려 호텔에서 또 승객들을 태우고 한 시간 후에 드디어 메주고리예에 도착했다. 아침 9시 55분 비행기로 바르셀로나 공항을 출발해서 밤 10시에 메주고리예에 도착했다. 버스 이동만 따져보니 사라예보 공항에서 버스 터미널로 이동하는 시간, 경유하는 시간 등 다 포함해 6시간이 걸렸고 요금은 약 25유로가 들었다. 사라예보 공항에서 바로 택시를 타면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되고 약 100~130유로의 요금이 나온다. 


버스 터미널에서 도보로 약 3분 정도 들어가니 성야고보 성당(The Saint James Church)가 보인다. 엄마와 성지순례 일행분들은 성당 뒤 야외에서 성시간 미사를 드리고 계셨다. 

미사가 끝나고 드디어 엄마를 만났다. 신부님과 아는 몇몇 분들의 얼굴도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행사 담당자도 톡으로만 연락을 계속 했어서 그런지 처음 뵙는데도 낯설지 않고 반가웠다. 엄마의 성지순례 팀은 내일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가신다. 우리 모녀는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까지 메주고리예에서 더 머물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