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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치기 가족여행

대체 가족이란 무엇인가

by 김도비


아빠를 만나는 주말, 공주가 갑자기 아빠한테 전화로 바다에 가자고 했다. 1박 짐을 챙긴 뒤 글 올리고 집을 치우는 나에게 공주가 엄마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말하길 수 차례. 나한테 왜들 그러는 건지, 아이들을 데리러 온 애들 아빠도 바다에 같이 갈래요? 하고 물어왔고, 옆에서 계속 같이 가자고 하는 아이들의 성화를 물리치기 곤란해하다 보니 어느새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와~ 오랜만에 가족여행이다~ 신난다~

출발도 하기 전에 내 뒤통수에다 대고 가족여행 오랜만이라고 외친 우리 공주. 가는 도중에도 신난다고, 가족여행 오랜만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나랑 다닌 건 결손 가족여행이기라도 했던 걸까. 아빠까지 있어야 비로소 신나는 가족여행이 되는 걸까. 어쩌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세 식구로 놀러 다니면서 아이들은 우리가 넷이기를 바랐나 보다.


아무튼 출발하고 만 을왕리 가는 길, 아이들이 차례대로 기절한 걸 보고 나는 면접교섭일 조정 얘기를 꺼냈다.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던 날, 그러니까 도란도란 아이들 얘기를 나눌 때 확인했듯 그와 내가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바람은 바로 아이들의 안녕이니까.


차 댈 곳 하나 없는 해수욕장에서 애들 아빠는 우선 아이들과 나부터 내려 조금이라도 더 놀기를 바랐고, 내가 아이들과 자리를 잡고 노는 동안 그는 주차를 하고 왔다. 종종 그랬듯 트렁크에서 애들 옷가방을 하나 빼놓고 오긴 했지만 그래도 내내 아이들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잘 놀아 줬다. 덕분에 나는 맘 편히 편의점에 가 감자깡도 사 왔다.


미안해요 갈매기들. 이번 한 번만 봐 줘요. 우리가 분리수거도 잘하고 일회용품도 적게 쓰고 에어컨도 살살 틀고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데이로 잘 챙길게요.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도 안 춥다고 더 놀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아이들을 애들 아빠와 함께 달랬다. 다음에 더 일찍 출발해서 많이 놀다 오자, 캠핑의자랑 테이블도 가지고 오자. 발에 흙이 잔뜩 묻은 아이들을 같이 챙긴 뒤 근처 식당에 가서 공주가 요청한 해물칼국수와 낙지탕탕이를 먹었다. 유튜브에서 봤다며 처음 도전한 산낙지를 아주 신나게 잘 먹는 아이들 모습에 그도 나도 참 흐뭇했다. (비록 네이버 평점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으나.)


마주 앉아 식사는 못 하겠지만, 공주가 스튜디오를 볼 때마다 찍고 싶어 하는 그런 인생네컷 사진 같은 것도 아직 찍을 수 없지만 그래도 이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엄마랑 같이 바다에 가고 싶어 한 공주가 행복했고, 엄마랑 아빠가 같이 있는 걸 보고 싶어 하는 왕자도 즐거워했다. 잠이 들 법도 한데 돌아오는 길 내내 예쁘게 깔깔대며 웃고 떠들던 소리는 애들 아빠의 귀에도 무척이나 듣기 좋았을 테고.


누구를, 무엇을 향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얄밉고 얄궂다는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도 같았으나 그걸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서야 가족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워가는 듯하여. 어쨌거나 부부는 아니어도 여전히 부모라서 이런 일이 한 번씩 생긴다. 헤어지며 막말을 아낀 건 이런 부모됨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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