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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Nov 13. 2023

우리의 이혼은 여태 비밀이군요

쿨내를 풀풀 풍기고 싶지만 못하겠다 꾀꼬리

아이들을 만나는 주말도 아닌데 애들 아빠에게서 카톡이 왔다. 순식간에 심장이 벌렁벌렁.

친척(사촌 도련님)이 선물 준다고 해서 집 주소를 알려 줬어요. 아직 부모님이 이혼 사실 말씀 안 하셔서 잘 몰라서요. 나중에 확인하면 말해줘요. 뭔지 모르지만 그냥 애들하고 써요.  


집 주소를 알려 준 것은 본인일 텐데. 부모님 체면이 소중해서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은 걸까, 말이 길어지는 게 싫어서 피해버린 걸까.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던 사촌 도련님인데 그런 도련님에게도 우리의 이혼은 비밀이다.


하긴, 시부모님 역시 당신의 딸에게조차도 오빠의 소식을 비밀로 했었다. 공주랑 왕자가 고모네 아이들과 놀다가 티를 내지 않았더라면, 소식을 들은 고모가 어머님께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고모가 오빠의 상황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을 거다.


어머님은 이 이혼에 아들의 잘못이 없기를 원하셨다. 법원에 판결받으러 가던 날에도 어머님은 이혼이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더 참지 못한 내 탓이라고 하셨다. 다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당신의 아들은 끝까지 아내를 감싸려 노력하는 훌륭한 남편이더라 하셨고.


하지만 나는 그런 (구)시댁을 흉볼 수 없다. 친척에게 이혼이 비밀인 건 친정도 마찬가지. 언젠가 이모랑 통화하던 엄마가 김 서방이 "바빠서" 도비 혼자 애들 데리고 내려왔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아빠 없이 놀러 다니는 우리 딸이 하던 거랑 똑같은 변명이었다. 엄마랑 매일같이 통화하는 이모들에게도 내 이혼은 비밀이다.

칠순 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가족사진만 하나 사진관 가서 찍자던 엄마는 내가 이혼을 하고 나니 가족사진을 안 찍겠다고 했다. 사위 하나가 없는 사진, 걸어놓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엄마랑 아빠가 교회 피플들인 거랑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체면과 교양이 중요한 엄마에게 이혼한 딸은 챙피한 모양.


그렇지만 어쩌면 나의 이혼을 가장 밝히기 꺼리는 건 애들 아빠도, (구)시댁도, 친정 부모님도 아닌 바로 나 자신. 외국 살 때 가족처럼 왕래하며 지낸 육아 동지 엄마들이 하나 둘 귀국하면서 가을에 같이 푸바오 보러 가자 약속한 것이 벌써 반년도 더 전인데 연락이 올 때마다 확답을 피하려니 현타도 이런 현타가 없다.


나는 이혼까지 한 마당에 이제 와서 교회밥 먹던 애들 아빠의 체면을 지켜주고 싶기라도 한 걸까. 나를 잃으면서 놓아 버린 게 참 많은 그 사람. 주특기였던 잠수 타기를 시전 중일 그 사람의 이혼 소식이 현지 한인 사회에 퍼지는 건 삽시간일 테니 말이다. 일어난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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