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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n 27. 2024

유턴 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샀다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유턴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수영 마친 아이들을 밖에서 만났다. 퇴근 전인데 떡볶이가 먹고 싶다길래 사라고 했고, 용돈 카드 가진 누나가 오뎅을 안 사 줘서 뿔난 둘째를 데리고 떡볶이 집으로 가 오뎅도 사 먹였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엄마, 오늘 나 급식 빼고 최고로 행복해요, 노래 부르는 아이들과 집에 가며 나도 아이들처럼이나 기분이 좋았다.


원래는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갑자기 떡볶이를 먹게 되었으니 아이스크림은 다음에 먹는 게 어떨까 얘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하는데 아뿔싸, 공동현관 앞에 택배차가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낮에 도련님한테서 배송 출발 문자가 왔었는데 배송 완료 문자를 받은 기억이 없었다.


'이러다 애들이랑 마주칠 수도 있겠는 걸.' 싶던 순간, 공동현관이 열리더니 남자가 택배용 카트를 밀며 나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느라 얼굴은 못 봤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아이들은 아주 큰 목소리로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첫째가 당장이라도 둘째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형님의 안부를 이번에는 내가 아닌 아이들에게 물을 수도 있다.


우리 아이스크림 지금 사자!

오잉? 하고 서로 마주 보며 좋아하던 아이들은 나와는 다른 공간에 있는 듯했다. 나는 지난번처럼 종종걸음을 걸었고, 가려던 아이스크림 집은 단지를 빙 둘러가야 해서 가까운 무인 판매점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동안 도련님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상품 배송이 완료되었단다. 이제 집에 가도 되었다.


먹어 본 적 없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에 가며 아이들은 아까보다 기분이 더 좋아 보였다. 이 아이들에게 택배 아저씨가 아빠 잘 지내는지 물어보면 그냥 "네" 하고만 대답하라고 가르쳐야 할까, 그러면 앞으로는 유턴을 안 해도 될까. 엄마가 왜 갑자기 유턴을 했는지 아이들이 아직은 몰랐으면 싶었다.


택배차가 사라진 공동현관을 지나 집에 도착했다. 맵부심이 있지만 매운 음식을 못 먹는 꼬마를 위해 떡볶이에 오트밀크를 넣었다. 후식으로는 유턴하느라 사 버린 아이스크림에 선물 받은 미니애플망고를 올려 먹였다. 숙제 다 하면 (도련님이 가져다 준) 슈뻘맨 신간을 보고 있으라고 한 뒤 나는 도서관에 반납하러 다녀왔다.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택배 시리즈는 끝이라고 했었지만, 사실 도련님과 처음 마주친 후에도 통화를 몇 번 했다. 별 일 아니었다. 유턴을 해 버린 일도 지나가면 그뿐. 다만 그 옛날 내가 슬퍼서 쓴 태교 일기를 공주가 너무 재밌게 읽었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나중에 커서 보면 이것도 웃긴 일이려니 하고 이렇게 남겨 본다.


튀김, 떡볶이를 콤보로 먹어 놓고는 후식으로 당 범벅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던 그날, 사실 엄마는 유턴을 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더랬다. 아이들은 엄마 변덕이 또 죽 끓었다고 생각하겠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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