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나는 상냥핑이 될 수 있었을까.
프로필 사진 촬영할 기회가 생겨서 오랜만에 헤어랑 메이크업 예약을 하고 샵에 갔다. 메이크업 원장님이 열심히 얼굴을 두드려 주다가 선반에서 속눈썹을 꺼내길래 속눈썹 붙이는 거 되게 오랜만이라고, 결혼할 때 붙이고 처음 붙인다고 얘기했더니 원장님이 "언제 결혼하셨어요?"하고 물으셨다.
"201X 년에요."
원장님은 자기랑 1년 차이 난다고 하더니 그럼 이제 12년 13년 차가 되었냐고 물으셨다. 저번에 외삼촌이 남편은 어디 갔냐고, 남편 바쁘냐고 물을 때는 그렇다고 잘도 거짓말을 했는데 원장님한테는 왜 거짓말할 생각을 못 했을까. 나는 눈알을 잠시 굴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유지했더라면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는지, 원장님이 잠시 후 움찔하는데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어처구니도 없어서 그만 원장님을 끌어안고 말았다. 그 상태로 눈을 질끈 감고 얼마나 웃고 또 웃었나 모르겠다. 속눈썹을 들고 같이 웃던 원장님은 죄송하다는 나의 사과를 듣더니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그랬다.
더 웃었다간 속눈썹을 붙일 수 없을 것 같아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별일 없는 여자인 척을 했다. 하지만 원장님도 나도 중간중간 다시 웃음이 나왔고, 또 웃음을 참아야 했다. 묻지 않아도 이유를 알 수 있는 웃음이었다. 그냥 오늘은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린 날이었고, 이상한 손님이다 하고 생각했겠지.
모르는 사람한테는 이혼 고백이 이상할 만큼 쉽다. 우리 친척들은 아직도 내가 이혼한 걸 모르는데, 택배를 가져다주는 사촌도련님은 아직도 마주치면 "형수, 형수" 하고 인사를 하는데 세상 사는 게 너무 신선하다. 내가 만일 이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제 14년 차쯤의 유부녀가 되었겠다. 하지만 현실은 2년 차 이혼녀이자 n 년 차 수발핑.
폭우 같은 가을비를 뚫고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을 다 찍었는데 유쾌하신 사진 작가님이 "다정함"에 대해 써 달라며 갑자기 종이와 볼펜을 내미셨다. 생리할 때가 다 된 호르몬의 노비여서 그런지 "저는 다정함과 어울리는 따뜻한 말은 쓸 수 없을 것 같아요."하고 머뭇거리며 눙물을 한 방울 흘린 후 (아마도) 이렇게 글을 남겼다.
다정함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건 축복이다.
다정함이 되돌아올 수 있는 건 행복이다.
다정함을 이어갈 힘을 잃어버렸었다.
다시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꾸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