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가 말을 안 들은 역사
엄마가 집에 왔다.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거실 의자에 벗어 둔 엄마는 거실장 위에 있던 잡동사니를 이리로 모으고 저리로 치웠다. 뭐 안 해도 된다고, 정리 안 해도 된다고 얘기했더니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앉은 그 자리에서 또다시 거수납공간 속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겼다.
"엄마, 뭐 더 하지 마요. 안 하면 좋겠어."
노모는 다시 알겠다고 했다. 그랬는데 내가 건조기에 이불 털기로 돌린 담요를 둘째 방에 두고 나오자 이번에는 엄마가 에어컨 옆 구석 바닥을 물티슈로 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기가 이미 두 번을 지나갔는데 말이다.
애들이 말을 안 들은 오후를 보내고 이미 멘탈이 거덜난 상태였다. 할머니 오니까 같이 정리 좀 하자고 했더니 첫째는 컴퓨터 좀 하고 청소를 하겠다고 했다. 게임은 할머니가 온 뒤에도 할 수 있고, 청소는 할머니가 오기 전에 마치는 게 좋으니까 청소부터 하자고 여러 번 말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이것만 하고요, 이번 판만 하고요,“ 라며 이것만무새가 되어 나를 부글부글하게 했다. 그런데 이젠 나의 노모마저.
생각해 보면 엄마가 말을 안 듣는 건 하루이틀된 일이 아니다. 예순이 다 뭐야, 쉰이 되었을 때부터 관절이 안 좋다던 엄마는 진작 일흔이 넘었는데 저번엔 내 차를 발견하고는 눈 내린 지 며칠 안 지난 길 위를 마구 뛰어서 왔다. 발목을 접질려 큰 수술하고 고생한 적도 있는데도 막 달려서 말이다. 뛰지 말랬는데 또 뛰고, 주차장에서 또 뛰고, 벌써 몇 번을 그랬나 모르겠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하랬던가. 기분이 상한 채로 엄마를 맞이한 나는 결국 태도도 썩어 버렸고, 엄마한테 버럭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는 너는 왜 이런 일로 화를 내냐고 했다. 나는 여러 번 얘기했고, 엄마가 또 엄마 마음대로 할 것 같아서 안 하면 좋겠다고 여러 번 강조해서 얘기했는데 엄마가 거길 또 그렇게 하고 있었다고, 좀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는 과연 이번에는 내 말을 들어 줬을까.
땡. 완전 땡이다.
엄마는 개켜진 채로 헝클어져 있던 소파 위 담요를 일일이 다시 개켜서 쌓았다. 밤에 씻으러 들어가서 한참을 안 나오길래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세면대 위를 닦았고, 핸드폼이랑 세면폼도 자리를 옮겨 놓았다. 머리도 안 감았는데 샤워기 쪽도 물건을 정리해 놨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아니, 그러지 말고 엄마집 소파 밑에 먼지 많던데 가서 거기 있는 먼지를 치워요~
엄마집 주방 베란다나 팬트리를 정리해야지 왜 남의 집에 와서~
어쩌구리 저쩌구리 말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며 몇 번을 꿀꺽. 삼켰는데, 남의 일에 눈이 밝고 봉사 정신이 뛰어나 사냥꾼과 무수리 사이 어디쯤에 있는 엄마는 어느새 둘째 방에 들어가서 드릉드릉 정리 시동을 거는 게 아닌가. 바라지 않는 정리를 또 시작하길래 결국 마음의 소리가 다시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해 주지 마요, 엄마. 엄마가 그렇게 치워 놓으면 나중에 애가 물건을 못 찾아. 에혀, 선미네(며느리) 집에 가선 안 그럴 거면서.”
우리 엄마는 왜 그러는 걸까. 엄마도,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도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그게 다 나를 사랑해서 도와 주려 그런다고 말하겠지만 이런 상황이 반갑지 않은 나는 사랑 말고 존중이 받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우리 엄마를 닮았다. 우리집 더럽게 해 놓고 언니네 집에 가면 집안일이 해 주고 싶어지니까. 딸이 받고 싶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엄마 노릇을 하려고 하니까. 내로남불이 딱히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