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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덕 Mar 18. 2021

이것이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Ms. Magazine 2021 겨울 커버사진.


이 사진은 얼핏 보면 페미니즘 단체의 포스터 같아 보인다. 전원 여성일 뿐만 아니라 무지개 깃발 위로 올려진 주먹 쥔 손이 페미니즘의 상징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사진 인물 중 몇 명이 페미니스트인 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은 2021년 선출된 미국 대통령 바이든 내각의 당직자들이다. 

2021년 선출된 미국의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은 12명의 여성과 12명의 남성, 1명의 성 소수자로 내각을 구성했다. 인구 비율로 보면 동일한 성비가 당연한 결과지만, 이 당연함이 당연하게 되기까지 232년이 걸렸다. 내각 내 성비 균형이 맞춰진 건 1789년 미 연방정부 수립 이후 최초라는 얘기다.

역사는 끊임없이 여성들을 지우고 남성들의 숭고한 어머니와 아내로서 존재할 것을 부추겨왔다. 그 가운데 자기 자신을 찢고 해체해 아내와 어머니로 새롭게 탄생시켜야 하는 의무는 여성 스스로가 져야 했다. 남성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직장인이 되지만 여성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며 어머니가 된다. 스스로에게 부정당한 존재는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 서서히 침잠한다. 어머니가 있을 자리가 애초에 거기였다는 듯이... 

용기 내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건 당신 자신이란 말을 듣는 건 조금 억울하다. 낮은 임금, 육아와 직장 일 사이의 이중고, 거기에 더해지는 차가운 시선은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겹겹의 창살이다. 창살 안 임금 없는 노동의 대가는 아무 시선을 받지 않음으로써 아무런 지탄도 받지 않는 것이다. 

시선 밖에서 232년의 세월을 견디는 동안 여성들은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깨우쳤다. 1920년 투쟁 속에 참정권을 쟁취한 이래 여성들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 시작했고, 1960년 경구 피임약의 사용을 승인 받음으로써 성 해방의 길을 열어갔다. 2017년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을 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성희롱, 성폭행 고발 운동이 일어났다. # Me Too 연대로 여성 개인의 목소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목소리로서의 힘을 갖는 경험이 시작된다. 그리고 2021년, 마침내 미국은 여성의 얼굴과 남성의 얼굴을 동등하게 드러내고 비췄다. 

여성과 남성 동수의 내각. 이 사실만으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원래 그곳에 존재했으나 남성들 뒤켠에 서서 가려졌던 여성의 얼굴이 이제 드러나기 시작했음에 불과하다. 이 내각이 얼마나 오래갈지, 앞으로 어떤 험난한 길과 매운맛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사진 한 장이 소중한 까닭은 부통령 카말라 해리스의 말처럼 오늘 이 사진을 지켜보는 소녀들에겐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각인이 새겨질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재무부 장관 자넷 옐른의 저지하는 손과, 관리예산국장 니라 텐든의 불끈 쥔 주먹을 소녀들은 기억할 것이다. 232년의 기나긴 기다림과 투쟁을 지나 이제부터가 본 게임임을 알리는 팡파르로 이 사진은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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