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스타일스의 'New Direction'
2016년 1월. 런던의 프림로즈 힐의 언덕에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는 벤치가 있다. 만약에 당신이 한 겨울 밤에 그 곳을 지나갔다면 당신은 그가 그 벤치에 앉아있던 걸 봤을 수도 있다. 울 모자를 쓰고 오버코트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 넣은 멀쑥한 남자. 해리 스타일스는 많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5년간 원디렉션(이하 1D)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멤버로 지냈다. 그리고 지금, 불확실한 미래가 그의 앞에 펼쳐졌다. 밴드는 무기한 활동중단을 발표했다. ‘과찬’이라는 백색소음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도시 안의 고요함이 채웠다.
해리 스타일스가 1D에 있을 때 찾아온 유명세는 특별한 광적이었다. 겸손한 미소, 약간의 어두움 그리고 언제나 “헝클어지게” 표현된 헤어와 함께 그는 수많은 팬들이 그들의 희망과 꿈을 던질 수 있는 캔버스가 되었다. 젠장, 그가 차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토했던 LA의 101 고속도로는 팬들의 성지가 되었다. 그 토사물은 이베이에서 베를린 장벽의 파편처럼 팔렸다는 말도 있다. 폴 메카트니가 그를 인터뷰했고 펑키하고 섹시한 버전의 ‘해리 스타일스’가 나오는 무허가 팬픽들이 나왔다. 10억명의 독자들은 가상의 ‘해리 스타일스’의 업적들을 읽었다. (“읽어본 적 없어요,” 논픽션의 스타일스가 말했다, “하지만 가상의 그가 저보다 많이 하길 바래요.”)
하지만 1D 열광이 한창일 때, 스타일스는 한 걸음 물러섰다. 많은 이들에게 2016년은 음악계의 영웅들을 잃고 유독한 새로운 체제 성립의 해였다. 스타일스에겐 벤치에 앉아 런던을 바라보며 시작된 새로운 자아를 찾는 해였다. 솔로 해리 스타일스는 어떨까? 계획은 뚜렷해졌다. 여자와 관계들에 대한 연가곡 (하나의 주제로 노래를 풀어내는 방식). 10가지 곡. 락 사운드를 조금 더 추가. 핑크라는 가제에 맞는 대담한 한가지 색의 앨범 커버. (그는 클래쉬의 폴 시모논의 “핑크는 유일하고 진정한 락앤롤의 컬러다’ 라는 명언을 인용했다.) 그의 머릿속에 박힌 ’Harry Styles’라는 한 단어로 끝날지도 모르는 앨범 타이틀을 포함해서 많은 세부 사항은 다음해로 갈수록 많이 바뀔지도 모른다.
“솔직함,” 그가 말하길, 1년전 스타일스는 LA의 미드시티를 더스티 블랙 컬러의 레인지로버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몇년간 이 곳을 왔다갔다하며 살았는데 그는 늘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의 차에서는 컨트리 음악과 잘 알려지지 않은 클래식 락들이 섞여 나왔다. “난 ‘이야기’들을 쓰기 싫었어요,” 그가 말했다. “나는 내 이야기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쓰고 싶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해지고 싶었어요. 전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노란불이 들어와 차가 멈춰서고 그는 밴드에게 프로듀서 제프 바스커 (롤링스톤스, 칸예 웨스트, “Uptown Funk”)의 지도 아래 작업하고 있다고 흥분해서 말했다. 그에게는 지난 가을, 자메이카의 외진 구역 Geejam의 포트 안토니오 가까이 있는 산 중턱에 지어진 스튜디오 겸 주거공간에서 12개월간 진행된 녹음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드레이크와 라아나도 그 곳에서 녹음을 했었고 그 곳이 스타일스가 5월 12일에 발매 예정인 그의 새로운 앨범을 만든 곳이다. 우리가 오늘 교통 체증에서 이리저리 빠져 나간 것처럼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그의 앨범이 그의 아이폰을 달구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많은 레스토랑에 도착했고 스타일스는 그의 앨범에서 나온 공예물들과 종이들로 꽉 채워진 검은 공책을 쥐고 공부를 하기 위해 조용한 공간을 찾는 대학생처럼 그 곳을 가로질러갔다. 그는 이 곳에 그의 젊은 커리어에서 많이 해보지 못한 것을 하러왔다. 1:1 인터뷰. 과거에는 자주 질문들을 계산하고 애교있게 동지애로 얼버무려줄 다른 1D 멤버가 있었다. 오늘, 스타일스는 이 긴 1:1 인터뷰라는 게임에 그가 내뱉는 단어들의 신중한 관리인이 되어 가끔은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말없이 테이블보를 보며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스포트라잇을 받기 시작한 일을 말하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들도 사라졌다.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스타일스가 처음으로 1D 휴식을 갖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게 2014년 연말이었다. “전 우리 팬층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가 설명했다. “만약에 당신이 당장 앞만 본다면 ‘그냥 투어를 계속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보다는 그룹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했어요. 지쳤다는 걸 깨닫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당신에 대한 믿음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은거죠.”
많은 논의를 거쳐서 밴드는 2015년 8월에 발표된 활동 중단에 서로 동의하게 된다 (제인 말리크는 활동 중단을 하기 몇달 전에 갑자기 1D를 떠났다). 팬들은 밴드의 결정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10월, 한달간 진행된 투어를 포함한 여러번에 걸친 마지막 인사들로 진정되었다. 스타일스는 여전히 1D를 지지했다. “저는 그 밴드를 사랑해요. 그리고 미래에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거에요. 그 밴드는 제 인생을 바꿔놨고 저에게 모든 걸 안겨줬어요.”
해리 스타일스는 그의 새로운 음악 뒤에 숨겨진 영감들을 밝혔다. 해리 스타일스의 새로운 앨범에서 배운 5가지를 알아보자.
홀로서기 커리어는 계속 상기됐었다. “전 앞으로 전진하고 싶었어요. ‘여기 제가 쓴 데모에요’ 같은 곡들 말고 제가 쓰고, 녹음하고 싶은 곡들이 있었어요. 저는 16살때부터 자주적으로 모든 결단을 내렸어요. 전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야할 때라고 생각했고 …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지 말아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전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23살 중에 1명으로서 스타일스, 그스스로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게 많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무대 위의 페르소나 뒤에는 진실보다 소문이 더 많다. 그는 그대로를 좋아했다. “왕자같은 아티스트,” 그가 말했다. “모두가 원하는 건 조금 더, 조금 더 많이 알기를 바라죠. 그리고 그 미스테리는 왕족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신비로운 이유에요! 시발, 전 왕자가 아침으로 뭘 먹는지 몰라요. 그 미스테리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거에요.”
스타일스는 잠시 멈추고 미지 (Unknown) 라는 개념을 음미하는 듯 했다. 그는 나의 디지털 녹음기를 마치 간신히 초대된 손님처럼 쳐다봤다. “‘미스테리를 계속 유지할건가요?’ 같은 게 아니에요. 전 제 사생활과 일을 분리하고 싶어요. 그건 제가 구분하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제 커리어를 더 오랫동안 하려고 한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저는 이 ‘미스테리한 사람’이 되고 싶은거에요, 왜냐하면 전 미스테리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제가 집으로 돌아가면 전 제가 학교를 다닐 때랑 같은 사람처럼 느껴져요. 만약에 당신이 모든걸 공개한다면 그런 감정들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공과 사가 있고 이 둘 사이를 오고가는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에요. 그건 절 놀랍게 만들죠.”
우리는 곧 제프 바스커의 Beachwood Canyon 스튜디오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스타일스는 스튜디오로 신이 나 달려가서 단조로운 수영장 청소부를 지나갔다. “안녕하세요,” 그가 포장되지 않은 아주 쾌활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청소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스타일스의 존재적 기쁨을 함께 나누지 않았다.
안에서는 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타일스는 그의 공책을 열고 피아노 앞으로 갔다. 그는 이른 오늘 시작한 곡을 끝내고 싶어했다. 밴드는 마치 주드 아패토우가 감독한 Help!에 나오는 비틀즈처럼 남자 대학생 사교 모임의 일원들같은 역동감을 갖고 있는게 분명했다. 스타일스는 그들에게 “H”였다. 석류향이 나는 캔들이 스튜디오에 켜졌다. 구루같이 머리를 기르고 여러 색의 셔츠와 빨간 양말에 샌들을 신은 바스커가 들어왔다. 그는 그의 파트너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리케 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를 키우느라 바빴기 때문에, 그는 스타일스에게 프로듀서-연주자인 protégés와 알렉스 살리비안, 타일러 존슨, 그리고 베이시스트이자 엔지니어인 라이언 나씨를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밴드는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스타일스의 기타리스트이자 세션에 들어오기 2주전까지 피자 조인트(피자 체인점)에서 일하던 미치 로우랜드였다. “이런 뮤지션들과 지내는 건 저에게 큰 영향을 줘요,” 스타일스가 말했다. “앉지 않으면 악기를 건내주지 못하는 거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일스가 뮤조(뮤지션)의 땅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고 그는 그런 환경을 질려하지 않고 분명히 더 원했다.
스타일스는 자유롭게 쓴 가사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건 “I Don’t Want to Be the One You’re Waiting On.” 이라는 새로운 곡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초기의 로드 스튜어트와 달리 따뜻했고 매끄로웠으며 아늑했다. 노래는 빨리 끝났고 밴드는 앨범을 재생하기 위해 모였다.
“더 크게 들어도 될까?” 바스커가 물었다. 그건 수사 의문문이었다. 나씨는 첫번째 싱글인 “Sign of the Times”를 지진이 날 정도로 올렸다. 곡은 스타일스의 핸드폰에 있는 7분짜리 음성 메모로 시작해서 군대를 소집하는 것 같은 소리와 피아노 발라드로 쓸어내리며 끝났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 중에 저를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기본적인 것들이에요,” 스타일스가 말했다. “모든 인종들과 성별들과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한 평등한 권리. … ‘Sign of the Times’는 “이게 우리가 처음 겪는 힘든 일도 아니고 이게 마지막으로 겪는 힘든 일이 되지도 않을거야’라는 것에서 만들어졌어요. 이 곡은 한 어머니가 출산을 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을 때의 관점에서 써졌어요. 그 어머니는 ‘아이는 무사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살 수 없을거에요’ 라는 말을 듣고 5분동안 아이에게 ‘앞으로 나아가서 정복하렴’ 이라는 말을 할 시간이 있어요.” 이 트랙은 아티스트와 밴드에게 있어 돌파구가 되었다. “해리는 그 곡과 더불어 앨범에 있는 다른 곡들을 지휘해 나갔어요.” 바스커가 말했다.
“전 이 앨범이 Sign of the Times 라고 불렸으면 좋겠어요” 스타일스가 선언했다.
“난 모르겠어.” 바스커가 말했다. “내 말은, 그건 이미 썼던 거잖아.”
그들은 한동안 토론을 했고 나씨는 다른 트랙들을 틀었다. 곡들의 폭은 락으로 가득찬 곡 (“Kiwi”)부터 복잡한 사이키델릭 팝 (“Meet Me in the Hallway”) 그리고 노골적인 고해 (“Ever Since New York,” 상실과 열망에 대한 절박한 명상)으로 이루어졌다. 가사들은 디테일과 언급대상들로 가득했고 - 친구사이에 오고 간 비밀들, 실패할 운명을 가진 사랑의 맹세, 텅 빈 수영장 - 팬들이 그 미스테리 뒤에 숨겨진 진실들을 캐낼 것들이 놓여졌다.
“당연히 긴장되죠.” 스타일스는 그의 키들을 짤랑거리며 인정했다. “제 말은, 전 한 번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요. 전 제가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전 이 밴드와 뮤지션들, 당신이 밖으로 내버려질만큼 취약해질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서 행복해요. 전 아직도 배우는 중이에요 … 하지만 이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이죠.”
이 앨범은 전파를 타고 퍼지는 댄스 팝과는 다른 별개의 출발이다. “제가 영감을 받고, 제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은 오래된 것들이에요,” 스타일스가 말했다. 저는 제 첫번째 앨범이 ‘그가 16살, 17살, 18살, 19살때를 다시 재연하려고 하는군’ 같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많은 좋은 곡들은 과거에 써졌고, 하지만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전 저, 해리 스타일스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전 그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요.”
“그건 당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릅니다,” 바스커가 말했다. “그건 1D안의 해리는 거의 캐릭터처럼 가상으로 만들어진 해리라는 걸 깨닫게 했어요. 저는 사람들이 이 앨범에 담겨진 해리의 많은 다른 면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음악을 틀면 사람들은 ‘이게 해리 스타일스라고?’ 할 거에요.”
스타일스는 그의 많은 관객들이 지금까지 젊은 – 대부분 10대의 – 여성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가 그의 관객층보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진실성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으로 가득한 밤들을 보내는지 물었다. 그는 점점 생기를 찾았다.
“팝을 좋아하는 어린 소녀의 음악 취향이 30대 힙스터 남자보다 나쁘다고 누가 말을 할 수가 있죠? 그건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음악은 늘 변합니다. 음악에는 골을 넣을 골대가 없어요. 어린 소녀들은 비틀즈를 좋아해요. 당신은 저에게 그 아이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게 아니라고 저에게 말할 건가요? 어떻게 어린 소녀들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죠? 소녀들은 우리의 미래에요. 우리 미래의 의사, 변호사, 엄마, 대통령, 그들은 이 세계를 계속 움직이게 해요. 10대 소녀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만약에 그들이 당신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당신을 위해 서있어요. 그들은 '심하게 멋져보이려고' 하지도 않죠. 소녀들이 당신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해 줄거에요. 엄청나게 멋진 일이죠.”
스타일스는 한 때 그의 70년대 작곡 영웅들이 살았던 Lookout Mountain Avenue에 위치한 로렐 캐년에 있는 조용한 레스토랑으로 운전했다. 그는 그 코너 주변에 살았었다. 1D의 투어가 더 길어지고 거대해지고 열광적으로 성장하는만큼 그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건 정말 락앤롤이었어요.” 그는 술고래가 아니라고 했다. 그가 말하길 어쩌면 공연이 끝나고 그의 친구들과 얼음을 넣은 테킬라나 와인을 조금 마시기도 하지만 1D의 지난 투어는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예전에 존 레논은 비틀즈의 투어는 펠리니의 사티니콘과 같았다고 롤링스톤스지에 말했었다. 스타일스는 1D의 투어는 조금 더 “웨스 앤더슨의 영화 같았어요. 컷. 컷. 새로운 장소. 빠른 편집. 새로운 장소. 컷. 컷. 공연. 샤워. 단조로운 화면 전환. 잠자기.” 같았다고 대응했다.
테이블을 찾고 스타일스는 의자에 기대고 그의 소셜미디어의 존재와 부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스타일스와 그의 핸드폰은 달콤 쌉쌀하고 성숙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그들은 많은 시간을 떨어져서 지낸다. 그는 그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하지도 않고 트위터도 거의 확인하지 않는다. “제가 트위터에 대해 말해볼게요,” 그는 올해 초에 워싱턴에서 열렸던 여성 행진에 대한 그의 지지에 일제히 퍼붇는 비꼬거나 좋은 내용의 트윗들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트위터는 사람들과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엄청난 방식이지만 직접 만나서 하는 것보다는 못해요.” 몇년 전, 런던에 있는 그의 집 주소가 공개됐을 때 그는 당황했었다. 그의 친구인 제임스 코든은 영국의 수상이었던 벤자민 디즈레일리의 “절대 불평하지 말고 절대 설명하지 마라.” 라는 모토를 그에게 주었다.
나는 최근 제인 말리크가 인터뷰에서 밴드를 향해 던진 언어로 만든 화염병에 대해 몇 개 거론했다. 그 중엔 “(1D의) 음악은 제가 듣고 싶은 음악이 아니에요. 만약에 제가 여자랑 저녁 데이트를 하려고 앉았다면 전 끝내주는 음악을 틀거에요. 무슨 뜻인지 알죠? 전 제가 생각했을 때 끝내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도 있었다.
스타일스는 의자에서 자세를 고쳤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유감이네요,” 그가 외교라는 바늘에 실을 꿰듯이 말했다. “하지만 전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바라는 거 말고는 바라는 게 없어요. 만약에 당신이 뭔가를 즐기지 못하고 다른 걸 해야한다면 당연히 다른 걸 해야죠. 전 그가 스스로 좋아하는 걸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행운이 따르길 바랍니다.”
그의 머리에는 커트 코베인으로 유명해진 선글라스와 같은 스타일의 흰색 선글라스가 올려져 있었지만 공통점은 그걸로 끝이었다. 스타일스는 코베인이 세상을 떠나기 2달 전에 태어났고 특정 장르나 시대에 묶여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는 그의 차에서 쉽게 케이트 휘틀리의 컨트리 음악과 셔기 오티스의 난해한 블루스-소울 음악을 튼다. 그는 심지어 플리트우드 맥 콘서트에서 스티비 닉스에게 선물로 줄 당근 케이크를 샀었다. (“케이크 위에 그녀의 이름으로 장식했어요. 닉스는 완전 좋아했어요. 그녀가 당근 케이크를 좋아해서 다행이에요.”)
그가 ‘고통 받은 아티스트’라는 고전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보지 못한 장소들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죠,” 그가 말했다. “그게 왜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것처럼 사람들이 어두워지는게 흥미로워 보이는 점이에요. 당신은 이런 사람들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가끔은 지나칠 정도 미화해요. 음악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작은 어둠을 원하지만 당신의 [안전한] 삶에서 한걸음 떨어지기도 원해요. 저는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저는 아주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어요. 전 제가 아주 운이 좋다고 느껴요. 전 최고의 가족이 있고 늘 사랑받으며 자랐어요. 가짜로 고통받는 사람보다 최악인 건 없어요. ‘그들은 내 용돈을 다시 뺏어갔고 그래서 난 헤로인을 시작했어.’ 이건 그렇게 되는 일이 아니에요.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도 안나네요.”
스타일스는 옆에 있는 시골 상점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 상점은 그가 잘 아는 곳이었다. 선반을 살피다가 그는 나에게 영국의 쌀 푸딩을 먹어본 적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아주 오래되보이는 캔을 찾았다. 그는 로운트리의 과일 파스틸즈를 담았고 (“1881년부터 나왔어요”) 린트 린도 초콜렛들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워요”) 그리고 브랜스톤 피클을 담았다. “LA에 모든 영국 과자들을 갖고 있는 상점은 단 2군데밖에 없어요. 이 지역은 포트럭같아요.” 그가 카운터에 물건들을 늘어놓으며 말했다. 직원이 과자들을 계산했다. 젊은 직원이 가장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물었다. “저기 … 혹시 … 해리 스타일스?”
“네.”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스타일스는 응했고 카운터로 기댔다. 찰칵. 우리는 로렐 캐년의 밤으로 나섰다.
“저기요,” 가게의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는 반백의 남자가 소리쳤다. “당신이 누굴 닮았는지 알아요?”
스타일스는 뒤돌아 같은 내용을 들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밤 거리의 주민은 다른 궤적에 있었다.
“리버 피닉스요,” 그가 조금 슬프게 알렸다.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소? 그가 죽지만 않았다면 당신이라고 했을거요. 재능 많은 남자였지.”
“네. 맞아요,” 피닉스의 세대와는 많이 동떨어진 스타일스가 말했다. “맞아요, 그는 재능이 많은 남자였죠.”
그들은 스타일스가 그의 차로 걸어가기 전까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스타일스는 나에게 영국 과자들로 가득찬 봉지를 건냈다. “이건 당신을 위한 거에요,” 그가 말했다. “이건 제 유년시절이었어요…”
3살 당시의 스타일스
해리 에드워드 스타일스는 진정한 락의 본고장인 영국의 우스터셔에서 화요일 오후에 태어났다. 가족은 그가 아기였을 때 영국 북쪽에 위치한 조용한 장소인 체셔로 이사를 했다. 그의 누나인 젬마는 학구적이었다. (“누나는 늘 저보다 똑똑했고 전 늘 그런 점을 부러워했어요.”)
그의 아버지인 데스몬드는 금융계에서 일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롤링스톤스, 플리트우드 맥, 핑크 플로이드 의 팬, 그리고 퀸을 아주 좋아했다. 어린 해리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주변을 아장아장 걸었다. “전 잘 몰랐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전 이건 존나 멋지군 했던 것만 기억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늘 샤니아 트웨인, 새비지 가든, 노라 존스를 틀어두셨어요. 전 최고의 유년기를 보냈죠. 그건 인정할게요.”
하지만 사실은 레트로 사운드트랙과 멋지게 골을 넣기처럼 모든 건 완벽하지 않았다. 그가 7살이 되던 해에 그의 부모는 그에게 왜 아버지가 집을 나가는지 설명했다. 그 날에 대해 묻자, 스타일스는 똑바로 정면을 응시했다. “전 기억이 안나요,” 그가 말했다. “ 솔직히 당신이 그렇게 어리다면, 당신은 그런 걸 차단해버릴 수 있어요. … 전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한다고 말 할 수 없어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전 7살이었어요. 그런 일들 중에 하나인거에요. 제 부모님에게 지지를 받고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그의 눈은 조금 촉촉해졌지만 1D 초기의 다큐멘터리인 A Year in the Making에서 인터넷 비판에 눈물을 닦던 강렬한 장면의 젊은이와는 다르게 오늘 스타일스는 그 감정을 이겨냈다. 스타일스는 여전히 그의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고 있고 그의 어머니가 몇년 전 재혼을 했을 땐 스타일스는 신부쪽 들러리로 섰다. “제가 10살때부터요,” 그가 회상했다, “어머니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겠다고 느꼈어요. … 저희 어머니는 매우 강하신 분이세요. 어머니는 가장 위대한 마음을 갖고 계세요. [체셔에 있는 그녀의 집]은 제가 가고 싶고 제가 가끔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에요.”
10대 초반에 스타일스는 학교 친구들과 보컬로서 갖출건 다 갖춘 White Eskimo를 결성했다. “우린 몇가지 곡을 썼어요,” 그가 기억을 떠올렸다. “한 곡명은 ‘Gone in a Week‘였는데 그건 여행가방에 대한 곡이었어요. ‘나는 1주나 2주동안 떠날거야/ 스스로 새로운 장소를 찾기 위해서/ 나는 어떤 자켓이나 신발도 필요하지 않아/ 여행가방만이 내가 필요한 전부야’” 그가 웃었다. “저는 당시에 ‘멋진데?’ 이렇게 생각했어요.”
영국의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인 The X Factor에 솔로 ’소년’ 부분으로 나가보라고 추천한 건 그의 어머니였다. 스타일스는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를 불렀고 심사원들중 한 명인 루이스 월시의 거친 반응은 이미 악명이 높다. 그 영상을 지금도 보는 이유는 어린 해리의 쾌활한 성격으로 그 거친 총알을 받아내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요,” 그가 말했다, “당신은 혼란 속에 있어요. 당신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해요. 당신은 그저 그 쇼의 어린 아이일뿐이에요. 당신은 당신이 뭘 잘하는지도 몰라요. 전 저희 어머니가 제가 차에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말을 듣고 나갔어요 … 하지만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이 기분 좋게 하는 말들을 해주니까 기회를 잡는거죠. 전 제가 뭘 바라고 거기에 나갔는지 모르겠어요.”
스타일스는 경쟁에서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 쇼를 만든 장본인인 사이먼 코웰은 대중의 취향을 눈치챘다. 그는 스타일스를 같은 유형에서 떨어진 4명의 다른이들과 음악적으로 마지못해 하는 결혼을 시켜 1D를 구성했다. 그 결혼은 효과가 있었다. 충분히 효과가 있고말고.
당신은 어떻게 이 어린 뮤지션이 정상에 올라서고도 멀쩡할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섹스 테잎도 없고, TMZ 멘붕도 없었고, 재활을 도운 보모가 폭로하려고 쓴 책같은 것도 없다? 한 번의 큰 스캔들로 대박을 친 리얼리티 쇼가 다섯 시즌까지 나오는 세상에서 어떻게 해리 스타일스는 이 통제할 수 없이 강력한 영향력을 피할 수 있었을까?
“가족입니다,” 벤 윈스턴이 말했다. “그건 그의 엄마인 앤에게서 물려받은 거에요. 그녀는 그와 그의 누나를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해리는 따분함과 흥분 사이에서 따분함을 고를 거에요 … 제가 다음주에 화성으로 떠나는 게 해리가 어떤 중독에 걸리는 것보다 확률이 높을겁니다.”
우리는 할리우드 Television City에 있다. 제임스 코든의 The Late Late Show 책임 프로듀서로 에미상을 수상한 35세의 윈스턴은 그의 친한 친구와 상의하기 위해 책상에서 일어나 쇼파 주변으로 갔다. 그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집에서 묵는 손님이 되고 나서 친한 친구를 넘어서 스타일스는 예상밖의 가족원이 되었다.
그들의 우정은 The X Factor에서 데뷔를 한 1D의 성공 초기로부터 시작됐다. 영화제작자이자 코든과 제작 파트너였던 윈스턴은 미팅을 요청했고 곧 그 그룹과 죽이 잘 맞았다. 그는 스타일스에게 친절한 멘토가 되었지만 그들의 우정은 곧 시험대에 올랐다. 스타일스는 북쪽 런던에서 불편할정도로 3시간이나 걸리는 첼셔에 위치한 가족들이 있는 집에서 독립했다. 그는 윈스턴이 있는 햄스테드 히스에서 가까운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그 새로운 집은 2주의 (수리) 기간이 필요했다. 스타일스는 잠깐 신세를 질 수 있는지 윈스턴과 그의 아내인 메레디스에게 물었다. “아내가 괜찮데,” 윈스턴이 말했다, “하지만 딱 2주뿐이야.”
스타일스는 그의 매트리스를 윈스턴의 다락방에 놓았다. “2주가 지나고도 그는 그의 집을 사지 않았었어요,” 윈스턴이 말을 이었다. “잘 되지 않았어요. 그리곤 그가 말하길, ‘괜찮으시다면 크리스마때까지만 지낼게요.’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오고, 또…”
20개월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원하는 스타들 중에 한 명은 다락방에 있는 작은 매트리스에서 지냈다. 유일한 인테리어 소품은 윈스턴의 침실을 덜그럭거리게 만드는 어쿠스틱 기타가 전부였다. 그가 살고 있지 않은 집 주변에서 팬들이 모이는 동안 스타일스는 그보다 12살이 많은 커플과 신분을 숨긴 체 살았다. 윈스턴의 가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유대인 생활방식은 그가 제정신으로 지낼 수 있게 도와줬다.
“그 20개월은 그들이 X Factor에 시작해서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아티스트들이 된 기간이었어요,” 윈스턴이 회상했다. “그 기간동안 그는 대부분 우리와 함께 교외의 따분한 생활들을 함께 했어요. 그 누구도 찾지 못했습니다, 정말로요. 우리가 밥을 먹으러 나갔을 때도 다정한 가족인 이웃이네, 했지 그 누구도 그게 정말로 해리 스타일스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는 우리 집을 따뜻한 집으로 만들어줬어요. 그리고 그가 집을 나갔을 때 우리는 처참했습니다.”
스타일스는 명랑하게 the Late Late 사무실로 나타났다. 그는 명확히 정기적으로 오는 손님이었고 그와 윈스턴은 형제 같이 짧고 간단한 대화들을 나눴다.
“토요일에 떠날거야?” 윈스턴이 물었다.
“네. 친구 생일선물로 선인장을 사야해요,” 스타일스가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너랑 같은 비행기에 탈지도 모르겠다,” 윈스턴이 말했다.
“8시 50분 비행기요? 그거 죽이겠네요.”
윈스턴은 다락방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우린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메리와 제가 그가 집으로 어떤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는지 보고 싶다고요. 우리가 즐겨하던 농담이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오래된 부부처럼 침대에 있기때문이죠. 얼굴에 스팟 크림을 바르고 잠옷을 입고 문이 열려요.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우리 방에서 바로 앞에 있어서 우리는 해리가 집에 혼자 들어올지 다른 사람들과 들어올지 기다리는 거에요.”
“전 혼자였어요,” 해리가 말했다. “제가 메리를 놀라게 했어요.”
“그가 늘 혼자 였던건 아니었어요,” 윈스턴이 정정했다. “하지만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잘지도 모르는 A리스트 명단의 사람들을 보는 건 즐거웠어요. 아니면 그는 와서 우리와 함께 느긋하게 쉬었어요. 우리는 한번도 비지니스에 대해 상의한 적 없어요. 그는 3일 내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80,000명과 놀고도 돌아오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을 거에요.”
“해변가로 가죠,” 안개가 자욱한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로 레인지 로버를 몰며 스타일스가 말했다. 어제는 친구들과 테킬라, 가라오케, 그리고 아델의 깜짝 방문이 있던 그의 생일파티였다. 그는 이제 공식적으로 23살이다. “그리고 별로 숙취도 없네요,” 그가 덧붙였다.
스타일스는 해변가에 위치한 스시 가게를 발견했다. 그가 바쁜 식당을 지나는 동안, 한 회사원이 몸을 돌리고 그의 얼굴을 알아보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애들이 저 사람을 완전 좋아해! 나는 스타일스에게 그가 어린 팬들의 부모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물었다. “그들은 ‘전 당신 얼굴이 있는 판지를 존나 매일 본답니다’라고 말해요.” 그가 웃었다. “제 생각엔 그들은 제가 사과를 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오늘의 주제는 ‘연애’이다. 스타일스는 그가 아직 이런 거엔 초보처럼 느껴진다고 했지만 몇 안되는 연애는 그에게 아주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약속들은 마치 바늘 한 땀처럼 깨졌고 … 바닥을 기어가는 동안 내 손가락 마디에는 유리 파편들로 가득했고/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서는 집으로 데려가 어머니를 보여줄 수 없어/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점이야 … 나는 네가 그에게 내 오래된 티셔츠를 주고, 한 때는 내 것이었던 것들을 그보다 더 주는 걸 보고있어 … 그의 새로운 곡들을 사이로 엄청나게 난무하는 인상들과 잃어버린 순간들. 그 검은색 노트는 당신도 눈치 챘겠지만 그런 내용들로 채워졌다.
“제 제대로 된 첫번째 여자친구는요,” 그가 기억을 떠올렸다. “(매력적인) 그런 웃음을 갖고 있었어요. 그녀는 조금 미스테리가 있었는데 왜냐하면 우리 학교를 다니지 않았거든요. 저는 그녀가 지나간 땅까지 숭배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아마 조금 지나칠 정도로요. 그건 정말 힘든 연애였어요. 전 15살이었어요.”
“그녀는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야하는 곳에 살았고 저는 베이커리에서 3년간 일했어요. 토요일엔 4시 30분에 끝났는데 기차는 4시 42분이었어요. 만약에 그 기차를 놓치면 다시 1시간이나 2시간을 다시 기다려야 했어요. 그래서 일이 끝나면 기차역으로 전력 질주했어요. 제 월급의 70%를 기차표에 섰어요. 시간이 지나면 전 그녀의 향수를 기억할 거에요. 작은 것들이요. 전 그 향수를 매일 맡아요. 제가 엘리베이터나 접수처에서 다른 사람에게 “Alien, 맞죠?” 말하고 가끔 누군가는 인상깊게 보거나 가끔은 조금 무서워하며 ‘그만 냄새 맡으세요.’하겠죠.”
스타일스가 국제적인 소셜 미디어의 관심에 익숙해지지 않았었다면 그는 2012년 테일러 스위프트를 시상식에서 만났을 때 시험 받았다. 센트럴파크를 걷는 그들의 두번째 데이트는 파파라치에 포착되었고 순식간에 커플은 국제적인 뉴스가 되었다. 그들은 다음 달에 헤어졌는데 불안했던 캐리비안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나서라고 전해졌다. 그 로맨스는 적어도 한 상처입은 마음으로 끝났다고 알려졌다.
그 관계는 화제이고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걸 거부하는 걸로 유명하다. “저 지금 먼저 오줌 좀 누고 와야 겠는데요. 오래 걸릴지도 모르고요,” 그가 말했다. 그가 화장실로 향하며 말을 덧붙였다. “사실 ‘그는 오줌을 누러 가서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고 써도 돼요.”
그는 몇분이 지나고 돌아왔다. “제가 당신 마음을 졸이게 했던 것 같은데요,” 그가 웃으며 말하곤 그린 주스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가 말하길, 센트럴파크에서 찍힌 사진이 전세계에 빠르게 퍼져서 놀랐다고 했다. “그 때 사진을 보면요,” 그가 말했다. “제 생각엔 연애는 어느 나이에나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더불어 당신이 18살이면 (연애가)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모든 것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제 말은, 관계를 시작할 때 조금 어색하잖아요.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나갑니다. 이렇게 쉬워야 하잖아요? 그걸로 배우게 된 기회가 된 건 확실해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전 그저 평범한 데이트를 원했어요.”
그는 그들의 로맨스로 사려되는 스위프트의 “Out of the Woods”와 “Style”, 이 2곡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너는 긴 머리를 매끈히 넘기고, 흰 티셔츠,” 그녀가 부른 “Style”이다) “전 그게 노래들이 저를 말하는지 아닌지 몰라요 …” 그가 용감한 신중함을 시도하며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는 잘하잖아요. 그 노래들은 빌어먹게 어디에서나 들려요.” 그가 미소지었다. “저는 제 경험을 토대로 곡을 써요. 모두가 그래요. 만약에 [우리가 겪은 일들이] 그 곡들을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면 제 운이 좋네요. 그게 당신의 마음을 떠오른 거잖아요. 그런 문제는 말을 하기도 가장 어려운 문제고 제가 가장 적게 말을 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그건 그 두 사람에 대한 부분이잖아요. 저는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을거에요.”
(팬들은 1D의 곡중에 스타일스가 공동 작곡한 “Perfect”가 스위프트에 대한건지 아닌지 궁금해했다. “만약에 네가 카메라 플래시를 매번 받고 싶다면 같이 나가자/ 그리고 만약에 네가 헤어지고 나서 이별곡을 쓸 상대를 찾고 있다면/ 자기야, 난 완벽해.”)
그가 이 곡들에 감탄했다고 그녀에게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네 그리고 아니요,” 그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녀는 그 곡들이 좋다는 걸 듣기 위해 제가 필요하지 않아요. 그 곡들은 훌륭한 곡들이에요 … 그건 가장 놀라운 무언의 대화였어요.”
그는 스위프트에게 오늘 하고 싶은 어떤 말이 있을까? “지금이 제가 떠났다고 당신이 적어야할 타이밍이겠는데요!” 그가 웃고는 눈을 뗐다. “잘 모르겠어요,” 그가 결국 말했다. “어떤 것들은 해결되지 않아요. 정정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여전히 옳지 않아요. 전 이런 것들에 대해 곡을 쓰고 있어요. 전 time together에 존경을 보내요. ‘이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저건 나빴어’하는 것보다는 함께 했던 순간이 강렬했고 뭔가를 느끼게 해줬다는 사실을 기념하는거죠. 그리고 만약에 당사자를 만나게 되면 어색할지도 모르고 술에 취해야할지도 모르죠 … 하지만 뭔가를 공유했잖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고, 그건 최고로 죽이는 일이죠. 그러니까 고마워요.”
그는 지금은 끝났을지도 모르는 더 최근의 연애에 주목 했지만 특히 과거 몇 년 전에 주목했다. (스타일스는 켄달 제너와 자주 목격되곤 했는데 그가 누구를 이야기 하는지 확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제 앨범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스타일스가 말했다. “가끔은 인정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tip the hat) 가끔은 그들에게 모자를 주고 싶기도 한거에요 … 그리고 이게 그들을 위한 걸 알기를 바라죠.”
2016년 2월 말, 스타일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계 2차대전 사건, 덩케르크에 근사한 역할을 맞게 됐다. 스타일스는 놀란이 미스테리에 똑같이 관심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 영화는 정말 야심차요,” 그가 말했다. “영화속에서 하는 것들중엔 말도 안되는 것들도 있어요. 그건 힘들었어요. 오,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전 연기하는 걸 사랑해요. 저는 다른 누군가를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전 밤에 정말로 잠을 푹 잤고 다음 날 일어나서 계속 물에 빠졌어요.”
스타일스가 LA로 돌아갔을 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자취를 감추자. 스타일스는 그의 매니저인 제프리 아조프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런던이나 LA가 아닌, 밴드가 집중하고 합쳐질 수 있는 곳에서 앨범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영화 촬영 4일 뒤, 그들은 자메이카의 외진 북쪽 해안에 있는 포트 안토니오로 향했다. Geejam에서 스타일스와 그의 모든 밴드 멤버들은 함께 살면서 스튜디오 구조를 캐리비안 버전의 빅 핑크처럼 바꿀 수 있었다. 그들은 악기들로 가득찬 두 스토리 빌라에 지내고 나무로 만든 집 같은 Bush Bar으로 놀러 나가고 현지의 아주 아름다운 스튜디오에 출입할 수 있었다. 많은 아침은 언덕 밑, 사람이 없는 작은 만에서 수영으로 시작됐다.
자메이카에서의 삶은 10%의 해변가 파티와 90%의 음악적 탐험이었다. 그건 뮤지션이 과거를 들여다보고 미래로 나아가는 완벽한 통과 의례였다. ‘다음엔 뭐하지’라는 불안감은 사라졌다. 과거 1D에서 팝 제작자들이 곡들을 잘 다듬어서 스타일스에게 건내주던 작곡 시간에는 드러나지 못했던 감정의 단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는 1D에서 가로막힌 만큼 갑갑하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늘 투어를 하고 있었어요,” 그가 떠올렸다. “저는 우리가 원하는만큼, 특히 마지막 두 앨범에서 곡을 썼어요.” 그가 좋아했던 곡들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Olivia”, “Stockholm Syndrome” 그리고 초기의 곡인 “Happily”. “하지만 제 생각엔 매번 발만 담그고 나오는 것처럼 작업하니까 더 깊게 캐내고 당신이 작곡가로서 누구인지 알아내기가 힘들었어요. 우리는 6개월동안 당신이 어떤 것으로 작업할 수 있는지 지켜보기를 원치 않았어요. 곡들과 함께 지내고, 당신이 팬으로서 뭘 좋아하는지 보고, 그것에 도전하고, 연마하고 그것을 만들고… 이건 천국이에요.”
그는 더 연약한 곡일수록 낫다는 걸 배웠다. “가장 많이 떠오른 주제는 사랑이에요,” 그가 말했다. “그게 플라토닉이든, 로맨틱하든, 사랑을 하든, 쟁취하든, 실연을 하든… 그건 언제나 당신을 가장 많이 타격을 줘요. 전 사람들이 제가 바에 가고 얼마나 모든게 멋진지에 대해 말하는 걸 듣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샴페인이 터지고 … 누가 그걸 듣고 싶어해요? 전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그들이 해야하는 멋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싶지 않아요. 전 ‘그 호텔 방에 혼자 있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고, 왜 혼자 있기를 선택했어?’를 듣고 싶어요.”
자메이카에서 긴장을 풀기 위해 스타일스, 로우랜드, 기타리스트는 매일 넷플릭스에 빠져서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넷플릭스 집착을 시작했다. 가사도우미들은 가끔 저녁에 떠나서 다음날 아침에 돌아와 스타일스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긴 일련의 로코에서 벗어나는 걸 보곤했다. 그는 스스로 그가 지금은 “니키 스피”라고 부르는 니콜라스 스파크스에 대한 전문가라고 선언했다. 2달이 거의 다 지나고 밴드는 풍요로운 곡들과 스타일스가 취해서 바다에 빠져 젖고 모두에게 건배를 하고 누군가의 여자친구와 바꿔 입은 드레스를 입은 이야기같은 것들과 함께 섬을 떠났다. “건배는 기억이 안나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느낌은 기억이 나요.”
2016년 크리스마스. 해리 스타일스는 그의 어린시절을 보낸 집 앞에 주차를 하고 그의 아버지 곁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그의 앨범을 듣고 있었다. 펍에서 점심을 먹고 그들은 그들이 살던 거리로 운전해갔고 가족의 집 앞에 섰다.
스타일스가 그의 아버지가 갖고 있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들으며 자란 집을 응시하며 고민해야할 게 너무 많았다. “Isn’t She Lovely”부터 지난 몇년간 그가 걸어온 긴 길이었다. 그는 그 전에 거실에 있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싸구려 스피커를 통해서 그의 앨범을 어머니에게 들려줬었다. 그녀는 “Sign of the Times”를 들으며 울었다. 지금 그는 “Carolina”를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그의 아버지 옆에 앉아있다. 두 분 다 제 자리로 되돌아왔다.
스타일스는 그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설명한대로 움직였다. 우리는 코든의 빈 사무실에 앉아서 그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남은 몇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제 생각엔 부모로서, 특히 (보이)밴드같은 문제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저는 부모님이 언제나 ‘그래, 이 운행은 어느 순간에라도 멈출 수 있고 우리는 그게 멈췄을때 그 자리에 있을거야’라고 생각했다고 느껴요. 제가 앨범을 재생하고 제가 부모님께 ‘제가 가진 모든게 이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면 전 만족해요. 제가 그렇게 큰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게 되더라도 전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할 때의 행복함은 특별했어요.”
“저는 제가 늘 말하는 것처럼, 맨 처음에 제가 원한건 최고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어요 … 그리고 작품들과 장신구들로 이루어진 최고의 선반을 갖고 있는 할아버지도요.”
내일 밤이면 그는 영국으로 떠난다. 리허설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앨범 커버도 선택해야했다. 그는 그의 검은 공책을 쥐고 미래로 향하는 복도를 나서기 전에 잠시 뒤를 돌아봤다.
“제가 어떻게 하면 미스테리 해질 수 있죠?” 그가 반 농담으로 말했다. “제가 이렇게 당신에게 솔직했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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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번역은 2017년 8월경 다른 커뮤니티에 올린 적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