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고독 Ep 04
이 글로서 저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 계실 테니 간단히 소개드리겠습니다.
저는 8년 차 외근직 직장인입니다. 외국계 회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고, 거래처가 다소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매일 자차 운전이 필수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운수업 종사자'라 뼈 있는 농담을 나누곤 합니다.
요즘 '부캐'가 유행이다. 김난도 교수가 말한 '멀티 페르소나(개인의 다양한 정체성)'가 사회 곳곳에 실현되고 있는 세상이다. 본캐의 역할에서 오는 책임과 억압에서 벗어나 변화무쌍한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통해 얻는 자유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 역시도 '브런치 작가'라는 부캐에 도전한 것일지도 모르지.
나의 본캐가 고객을 설득하고 매출을 관리하는 영업 담당자라면, 본캐를 보조하는 제1의 부캐는 바로 '드라이버'다. 고객을 만나러 가기 위해 매일 아침 애마에 몸을 싣고, 하루 평균 거래처 2곳을 이동하며 연평균 4만 km를 운행하는 외근직인 것이다.
혹시 영화 [드라이브]를 보셨을까? 한때 나의 이상형 월드컵 2,3위에 머물렀던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다. 영화 속 그는 고독한 드라이버다. 실제 엔딩크레딧에 오르는 역할도 'driver'로 명시되어있을 뿐이다. 살짝 찌푸린 미간과 굳게 다문 얇은 입술, 항상 전갈이 그려진 은백색의 점퍼를 입고 다니는 무명의 드라이버. 아웃사이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외양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정직한 양손 운전과 부드러운 코너링을 러닝타임의 많은 비중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꽤나 취향에 잘 맞아서 여운이 오래 남았다. 감각적인 연출과 사운드트랙도 좋았지만, 운전을 많이 하는 주인공과 나 사이의 어떠한 연대감이나 연민을 느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또 다른 애정 하는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은 극 중 역할도 드라이버(버스 운전기사), 배우 본인의 Last name도 드라이버(아담 드라이버)다.
그렇다. 여기 한 명의 드라이버, 운전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혼밥 역사는 운전 중에도 이루어진다.
이는 세상 모든 드라이버의 숙명일 것이다.
물론 운전 중의 음식물 섭취는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주의가 필요하며, 해외에서는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드라이버의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우리에 주어진 유일한 찰나의 기회, '신호 대기 중'. 붉은 신호등에 정차한 즉시 전방을 주시하며 음식을 크게 한입 문다. (현실은 '처넣다'에 가깝다.) 초록 신호가 점등하기 전에 최대한 빠르고, 많이, 입에서 식도로, 식도에서 위로 전달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이버의 식사 메뉴는 매우 한정적이다.
김밥, 빵, 샌드위치, 주먹밥, 삼각김밥...... 흠, 다시 보니 이 정도면 자비로운 선택지인가?
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발생할 경우, 나의 옵션은 둘 중 하나다.
김밥 혹은 샌드위치.
사실 두 옵션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장점은 간편하게 5대 영양소를 모두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비타민까지!(비타민이 없다면 주스로 보충할 수도 있다.) 그래서 꼭 차 안에서 먹어야 할 경우가 아니더라도 나의 단골 점심 메뉴로 선택되는 친구들이다.
단점은 불안하다. 겉면이 김 혹은 빵으로 잘 감싸진 형태지만 그럼에도 갖가지 내용물이 흘러내릴 수 있는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편한 맨 빵이나 주먹밥을 통해 탄수화물만 대충 먹자니 억울하다. 일단 차 안에서 먹는 것 자체가 억울한 사실인데, 더 보탤 필요까지 있겠나? 고독한 드라이버에게 5대 영양소 섭취에 대한 의지가 충분하다면 리스크쯤은 감수할 수 있다. 방법은 3가지 원칙만 지키면 된다.
1. 미리 포장지나 종이가방, 비닐을 무릎 위에 깔아줄 것.
2. 내용물을 흘리더라도 옷이 아닌 무릎에 낙하할 수 있도록 고개를 약간 앞으로 뺄 것.
3.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려 야무지게 베어 물고, 최대한 입을 오므려 조신하게 씹을 것.
이렇다 보니 차 안에서도 맛있는 고독을 즐기는 드라이버에게 '드라이브 스루'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패스트푸드점 외에도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많이 운영하기 때문에 메뉴의 선택지가 더 다양해져 행복하다. '시간 절약'이라는 장점은 말할 것도 없다. 때로는 주차하고 매장에 들어가 주문과 계산을 하고 음식을 전달받고 다시 차에 탑승하는 시간마저도 촉박한 경우를 마주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의 모든 드라이버가 바퀴 위에 몸을 싣고 잿빛 도로 위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그 고독한 시간을 위로해주는 '드라이브 스루'를 예찬하며, 드라이브 스루를 애용하는 '드라이버'들의 체험 삶의 현장을 응원하며, 무엇보다 우리들의 안전과 안녕을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