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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윤 Jun 16. 2021

찬미 주택

양념 무상 Ep 01


어제 친한 언니랑 점심을 먹으면서 나눴던 주거생활의 의미. 아파트 분양권에서 시작한 현실적이고 속세적인 대화가 어느새 꽤 낭만적이고 철학적으로 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결혼하면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 처음 살게 되었다. 살면서 단독주택, 상가 주택, 다세대 주택, 오피스텔을 경험했을 뿐이었다. 작년부터 부모님이 주택 생활을 접고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긴 하지만, 진작 독립한 내가 그 집에서 생활하진 않았으니 정말로 ‘Apartment life’는 신혼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어릴 적, 주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정하게 정돈되고 안전해 보이며 높고 길쭉한 아파트를 동경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 누가 믿어줄까? 때로 늦은 시간에 어두운 골목길의 귀갓길에서 또래 남자로부터 성추행 비스무리한 것을 당했던 걸 제외하고는 내게 주택 생활은 좋은 추억이 훨씬, 넘치도록 많다. (아파트에 살던 아이들도 당했던 걸 생각하면 참 공포스러운 시절이었다. 한숨...)


언니는 내게 “주택에서 오래 자라온 경험들이 네 지금의 성향이나 감성에 분명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랬을까? 그랬겠지. 살아온 흔적들은 당연히 여기저기 묻어있기 마련이니까.



기억이 아닌 사진으로 마주했던 태평동의 작은 마당이 있는 집, 임실에서 살았던 상가 2층 집과 널따란 시멘트 마당, 낮에는 아이들의 자전거 행렬이 이어지고 밤에는 어른들의 고주망태가 이어지던 삼천동 먹자골목 주택,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옆집 앞집마다 동창들이 살던 ‘찐’ 주택가...


옥상에 가만히 서있으면 절반은 하늘이고 반의 반은 묘하게 근사해 보이는 전깃줄, 반의 반은 교회 십자가였다. 발정 난 고양이가 미친 듯이 울어도 다투지 않았고, 부부가 고성으로 싸우고 아이가 울어도 때로 무관심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은 듣도 보도 못했다. 집집마다 열쇠를 두는 제2의 장소가 있었고 매번 다른 곳으로 바꿔도 어차피 뻔했겠지.


실제로 우리 가족이 가장 오래 살았던 주택에서 찍은 어느날의 노을.


대학생이 되어 새벽까지 놀다가 몰래 집에 들어갈 때는 주차자리 찜콩용 타이어와 고깔을 쌓아 담을 넘기도 했다. (어리석게도 그런 날 꼭 대문 열쇠를 두고 온다.) 그 모습을 옆집 친구가 창문으로 보며 비웃기도 했고, 때로는 같이 넘기도 했다. (둘이 같이 논 날)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반겨주는 이가 없던 늦둥이 막냇동생은 옆집 할머니 댁에 가있기도 했다. 막내도, 할머니도 스스럼없었다. 그런 막내가 할머니 댁에 갔다는 생각을 못한 채 느지막이 집에 돌아온 나와 둘째는 동생이 없어진 줄 알고 울면서 골목을 쏘다녔다. ‘동생만 돌려주면 저는 학교 따위 안 다녀도 좋아요.’라고 기도하면서...


한 번도 내가 살던 주택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각종 전단지와 테이프 자국이 뒤덮인 지저분한 전봇대도, 목줄 없이 돌아다니던 동네 개들도, 음식물 쓰레기통을 엎고 도망가는 고양이들을 사랑했다. 여름이면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거실에서 다 같이 자던 가족들을 사랑했다. 등교시간에 자꾸 늦는 나를 욕하면서도 기다려주는 친구를 사랑했다.


“주택에서 오래 자라온 경험들이 네 지금의 성향이나 감성에 분명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

“언니, 저는요. 언젠가는 꼭 주택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사실 그러기로 했어요. 남편이랑 닭이랑 개도 키우기로 했어요. 주택이 불편하고 귀찮아도 돌아가고 싶어질 것 같아요.”


불 켜진 내 방 풍경에, 담벼락 아래 들꽃에, 대문 사이로 비치는 우리 집 강아지에 누군가가 스치듯 미소를 보내주고 찰나의 시선을 남겨줄 그런 ‘주택’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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