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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영 Feb 17. 2021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 총구 앞의 우리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주인공은 크리스 카일. 크리스 카일은 미국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의 저격수입니다. 공식적으로는 160명, 비공식적으로는 250명 이상을 사살했다고 전해지는 크리스 카일은 총 한 자루를 들고 고립되어 있던 아군 부대를 구해내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크리스 카일을 ‘영웅’이라 불렀고 이라크는 그를 ‘악마’라 부르며 현상금까지 내걸었습니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한 평론가는 “미국의 영웅주의”, “반성없는 이야기”라고 비판했고 누군가는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진짜 영웅의 이야기” 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속 크리스 카일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영화는 크리스 카일이 몸을 숨긴 채 누군가를 조준하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크리스 카일의 총구에 걸린 이는 한 소년과 소년의 손을 붙잡은 엄마. 모자는 미 해병부대와 대치 중입니다. 엄마는 소년에게 수류탄을 건네고 소년은 수류탄을 들고 미 해병부대를 향해 달려갑니다. 크리스 카일은 소년을 정확히 조준하고, 소년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집니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절규하며 수류탄을 들고 미 해군부대를 향해 달려갑니다. 크리스 카일의 손 또한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민간인 모자의 사살, 크리스 카일의 첫 저격이자 영웅, 혹은 악마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세계 1차 대전, 세계 2차 대전 등 굵직한 전쟁을 거치며 세계 각국은 저격수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1차 대전 때 적 1명을 제거하는데 들어간 탄약은 7000발, 2차 대전은 2만5000발이었지만 저격수들은 평균 1.7발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one shot one kill”을 외치는 저격수를 보유하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탄생은 어쩌면 예고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크리스 카일의 파병과 귀국이라는 시간과 사건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며, 사이 사이에 크리스 카일의 과거의 일들이 삽입됩니다.


영화는 첫 장면 이후 크리스 카일의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1974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크리스 카일. 아버지는 어린 카일 형제를 앉혀두고 “세상에는 양을 지키는 양치기 개와 양을 위협하는 늑대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크리스 카일은 ‘늑대’가 아닌 ‘양치기 개’가 되고자 하는 사내로 성장합니다. 거친 성격과 뛰어난 사격 실력, 그리고 국가에 대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크리스 카일은 해병 특수부대인 네이비 실에 입대합니다. “왜 입대했냐.”는 물음에 “적을 무찌르러 왔다.”고 크리스 카일의 대사는 ‘저격수 크리스 카일’이 어떤 이인가를 알게 합니다.


결혼식 당일 이라크 파병이 결정된 크리스 카일은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이라크로 떠납니다. 크리스 카일의 첫 임무는 팔루자 전투. 팔루자 전투에 투입된 크리스 카일은 건물의 옥상에 엎드려 누군가를 조준합니다. 크리스 카일의 총구에 걸린 이는 수류탄을 받아든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 영화의 첫 장면이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크리스 카일의 첫 저격은 성공적으로 끝이 나지만 크리스 카일은 잠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동료들은 크리스 카일을 칭송합니다. 크리스 카일 또한 ‘조국을 위한 일’로 생각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아내가 임신을 하고 동생이 이라크로 파병을 가는 동안에도 전쟁터를 종횡무진 합니다.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크리스 카일은 부대 내의 ‘전설’이 되어있습니다. 상부에서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의 심복 도살자를 제거하라고 명령합니다. 크리스 카일과 동료들은 순찰을 돌던 중 도살자에게 팔을 잃은 이라크 부족장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그들의 협조를 받아 도살자를 체포하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도살자가 “미군과 말을 섞으면 죽는다.”며 아이와 가장을 살해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교전에 휘말리게 되지만 도살자를 체포하지 못하고, 아이와 남편을 잃은 부인은 두 사람의 시신을 끌어안고 절규합니다. 그래도 ‘조국을 위한 일’은 계속 됩니다.


크리스 카일이 전쟁터를 누비는 동안 아내는 아이를 출산합니다. 아내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때때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고, 건강도 좋지 않은 크리스 카일을 걱정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가족의 곁에 있으면서도 전투 상황을 전해 듣고 전쟁 영상을 확인합니다. 아내는 크리스 카일에게 “당신은 여기 있어도 여기 없는 사람 같다.”며 파병에 가지 않길 권유하지만 크리스 카일은 “동료들을 구해야 한다. 할 일이 있다.”며 아내의 만류를 뿌리칩니다.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파병에서도 크리스 카일은 도살자를 체포하는데 실패합니다. 대신 ‘형제’ 같던 동료를 잃습니다.


마지막 파병, 복수심에 불탄 크리스는 저격을 위한 매복 중입니다. 옥상에 매복한 크리스 카일과 크리스 카일의 총구 끝에 걸린 한 소년. 첫 파병 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소년은 땅에 떨어진 대전차 로켓을 집어듭니다. ‘조국을 위한 일’이기에 망설임 없이 소년을 쐈던 크리스 카일. 크리스 카일은 이번에는 방아쇠를 바로 당기지 못합니다. 대신 속으로 하염없이 빕니다. 소년이 로켓을 내려놓길, 버리길, 그래서 자신이 소년을 쏘지 않아도 되길 말입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라크 전쟁과 미국의 영웅,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생애를 따라가고 있지만 크리스 카일의 ‘영웅’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라크와 미국, 어느 하나를 ‘악역’으로 설정하지도 않습니다. 영화 속에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과, 사람을 도구처럼 이용하고 살해하는 인간들과 그들 때문에 공포에 떠는 무고한 이들, 그리고 지구 건너편에서 어떤 총성도 듣지 못한 채 평화롭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삶이 교차적으로 등장합니다. 크리스 카일의 아이는 안전한 미국에서 태어나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지만 이라크의 아이는 총에 맞아 길에서 죽어갑니다. 크리스 카일은 아들에게 사냥을 가르치지만 이라크의 아이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미군 부대에게 총을 겨눕니다. 크리스 카일이 사살하기 위해 뒤를 좇던 ‘도살자’ 또한 어린 아이와 아내가 있습니다. 영화는 그들의 얼굴과 생을 번갈아 카메라에 노출 시키며 “누가 영웅인가?” 묻습니다.


‘국제 인도법’은 국제적 또는 비국제적 무력충돌시 전투능력을 상실하였거나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아니하는 사람(부상자, 병자, 포로, 민간인, 의무 또는 종교요원, 적십자 구호요원 등)들에 대하여 국적, 인종, 종교, 계급, 정치적 견해 등에 어떠한 차별없이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전쟁의 수단과 방법을 금지하거나 제한함으로써 무력충돌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제법의 한 분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 인도법’의 조약 내용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도주의 정신입니다.


승패가 정해지면 전쟁은 끝이 납니다. 누군가는 승전보를 울리겠지만, 누군가는 평생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누군가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카일처럼 꺼진 TV 속에서 전쟁 상황을 반복하여 보게 됩니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카일의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파괴 되어도 삶은 지속됩니다.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저격수가 한 아이에게 “제발 총을 내려놔.”라고 빌게 되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생과 사를 담고 있는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양과 양을 지키는 개, 그리고 늑대. 우리는 그것들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바라는 '진짜 영웅'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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