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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니 최 Jun 22. 2022

여우비가 내리는 날

<천년여우 여우비> 리뷰

여우비가 내리는 날



<천년여우 여우비>          

  만화 영화를 본다고 하면 ‘나이가 몇인데 만화를 보니?’ 라는 소리를 종종 듣고는 한다. 나는 그 말이 조금의 과장을 보태어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장르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은 어린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다’ 라는 사람들의 생각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 애니메이션은 분명 어린이들을 위한 장르로 활용되고 있지만,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겨울왕국’의 누적 관객수가 천만을 넘으며 전 세계적으로 1조 4000억원의 수익을 거두어들이는 둥, 더 이상 애니메이션을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이라 치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피규어나 캐릭터 상품 같은 경우도 소비층에 성인이 월등하게 많지 않은가. 

  왜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도 애니메이션을 보는가. 어린 아이들의 동심과 판타지적 상상력을 자극함은 물론이요, 어른들의 ‘감성’까지 아우르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 한국 애니메이션계가 꿈꾸는, 그리고 만들고 싶은 영화도 그런 애니메이션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천년여우 여우비’는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였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천년을 사는 여우, 즉 ‘구미호’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타겟층이 전 연령인 만큼 내용도 어렵지 않다. 구미호와 인간 아이 ‘황금이’가 만나, 애틋한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선은 끌만하다. 누구나 들어봤을 ‘구미호 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고, 외계인, 그림자 탐정 등 판타지적인 상상력이 인물 설정, 배경 등 영화 곳곳에 묻어있다. 우리가 아는 구미호는 (구미호 설화에 등장하는) 무자비하고, 교활한 공포의 대상임이 분명한데, 여우비는 어리고, 밝고, 명랑하며 심지어는 ‘인간’ 친구를 살리기 위해 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다. 우리가 아는 구미호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런 여우비의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이런 ‘특별한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개성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우비가 학교에 들어가게 된 과정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 이후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우비가 인간인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이유도, 왜 제 목숨까지 버리며 그 아이를 지키려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설명이 부족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에피소드가 무척 많아 인물들이 이야기를 소화하지 못하게 된다.

   영화의 중후반부터 ‘그림자 탐정’이 등장한다. 쉽게 말하자면 ‘악당’이다.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악당. 하지만 나는 이 그림자 탐정이 나오고, 여우비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왜냐, 그림자 탐정이 이야기의 중간에 상당히 ‘뜬금없이’ 등장을 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림자 탐정을 삭제하고, 황금이와 여우비의 에피소드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었더라면 감동이라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성우진은 손예진, 공형진, 류덕환 등 이름만 들으면 다 알만한 배우들로 꾸려졌다. 제작자 측에서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마 ‘흥행’을 기대하며 배우들을 캐스팅 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를 캐스팅하여 영화의 완성도를 버리는 것이 과연 흥행에 도움이 될까? 관객들은 이미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일본의 지브리사의 애니메이션, 미국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등) 많이 접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것이 애니메이션이니, 이 분야에 대해서는 타 분야보다 더 냉정하고 날카롭게 반응할 수 있다. 관객들은 유명 배우의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보기를 원한다.  그런 관객들의 욕구와 수준을 충족시켜주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진에 대해, 외국 애니메이션의 자본금을 따라가지 못해서 (물론 이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의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관객들은, 정말 솔직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지 않는다.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하나다. 보고 싶은가, 보고 싶지 않은가. 

  분명 장점도 많은 영화다. 06년 당시로는 꽤 파격적인 3D 기법을 사용한 점이나,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체, 그리고 여운을 남기는 몇 몇 장면 등. (나는 이 영화가 마지막 10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엔딩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는 분명,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어떤 모습으로든지 간에 족적을 남겼다고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성’만이 아니라 진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 




2015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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