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쓸모없는 일-독일어문법 수업 들어가기였다
내가 듣는 수업을 정리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곽아람의 [공부의 위로]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작가 곽아람은 대학을 다닌 4년 동안 들었던 교양+전공과목을 정리했다. 실라버스라고 부르는 교수계획서, 그 당시의 노트, 리포트 등을 거의 다 가지고 있어 책을 쓰는 자료로 사용했다.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아마 분량이 꽤 될 텐데. 여기에서 잠시 이야기가 새서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얼마만큼의 수집품이 있으며, 그것들을 어떻게 분류하여 보관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도대체 감당이 안된다. 그리고 많이 버리는데도 늘 어딘가에 종이뭉치가 쌓여있다.
독일어 수업을 들으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전에 독일어수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밝힌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쓸모없고 무용한 듯이 보이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님의 모든 수업을 거의 다 들어야지라는 결심도 한몫했다. 과목명은 초급독일어/중급독일어였지만, 어학적으로 엄청 빡세다기 보다는 독일의 문화 같은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2024년 올해, 알 수 없는 엄청난 피로감(그래서 따로 건강검진도 받았지만 병명이 나올 만큼 이상한 숫자를 가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에, 겨우 수업시간에 맞추어 자리에 앉아 몸은 열심히 하는 척했지만, 실은 제대로 예습도 복습도 하지 못해서 아직 형용사변화도 제대로 모른다.
교수계획서에 교수계획 및 학습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본 강의에서는 2015년도 제2외국어 교육과정(교육부/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기반으로
제2외국어로서의 <초급 수준의 독일어 문법>의 교육과정을 학습 목표로 삼는다.
수업은 월요일 6,7교시, 수요일 6교시, 강의실은 인문 2호관 1420이었다.
학부수업을 청강하기 위해 교수님께 3월 초 톡을 보냈고(전에는 이메일을 통해 허락을 받았는데, 그간 담당교수님과 간간히 카톡을 주고받은 게 있어서 톡으로 연락을 드렸다), 수업을 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나:교수님 안녕하세요. 자연문화유산교육학과 대학원 5학기 생 김**이에요. 오늘 수업인데 이제야 말씀을 드림은 아직도 망설이는 중이라서요. 교수님 수업 중 학부 '초급독일어문법'을 청강하고 싶습니다. 지금 시간 38명 수강, 전필과목이네요. EBS 교재를 구입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실라버스, 읽어보았습니다. 독일어 교수님 강의를 수강하며, 다른 유럽문화를 맛보는 발판으로 삼아보고 싶습니다. 잘하겠다는 엄청난 각오보다는, 성실한 출석을 하겠습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예요.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교수님 수업을 청강하면서 누리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시면 오늘 2시, 뜨거운 커피와 함께 수업 들어가겠습니다.
생뚱맞게 독일어를? 그러게요....ㅎㅎ. 참 별거별거 다 해보고 싶으니, 아쉬워 졸업을 어찌하려나 싶습니다.
담당교수님: 환영합니다! 오늘 개강
수업은 거의 다 참석했는데, 월요일 2시부터 (6,7교시)의 수업을 3시로 착각하고 어느 한 날 1시간을 지각한 적이 있다. 아찔했다. 내가 내세울 거라고는 출석을 잘하는 성실함밖에 없는데...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단어를 외우고 기본적인 문법을 알고 본문을 외우고 자꾸 입으로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실천 못했다. 간단한 인사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2시간을 꼬박 앉아있는 방법, 모르는 걸 해도 꾸준히 딴짓 안 하고 자리에 앉아있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이다.
곽아람은 [공부의 위로]에 '언어 공부, 감각을 일깨우다'란 제목아래 불어 1(1학년 2학기), 불어 2(3학년 1학기), 프랑스 산문 강독(3학년 2학기) 3개 과목에 대해 글을 썼다. 또 다른 외국어는 중국어 1, 2를 들었는데, 거기에 보면 '외국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라고 한다.
여기에 내 이야기를 얹자면, 나는 영어도 시원치 않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외국어인증시험 점수가 필요해서 토익공부를 조금 했었는데, 내가 이렇게 기초적인 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나 싶어 공부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뭐든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공부도 예전에 안 해놓아서 있는 구멍을 메우려니 고생이다. 언젠가는 다 해야 할 공부였다. 영어라고 다르지 않다. 지금은 EBS의 주혜연의 수능특강을 보면서 문법과 독해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공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도 못하면서(영어공부는 해도 안 해도 금방 표가 나지 않고 긴급하지 않기 때문에 늘 미루게 된다) 제2외국어를 하겠다고 덤빈 것은 '선택과 집중'의 면에서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생활필수품, 의식주만 필요해서 그것만으로 살지 않듯이, 내게 독일어시간은 화장과 이쁜 액세서리, 공부 중 갖고 싶은 '여유'의 증거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숨통'같은 것.
수업시간에는 인생선배, 그리고 교수님으로서의 충고 같은 말씀을 하시고, 유학생활 중 에피소드 같은 것을 간간히 들려주셨다. 애들은 '꼰대'라고 생각하기도 할테고, 그 나이에는 나이든 사람의 이야기란 귀기울여 듣지 않기 쉽고, 대하 4년 동안 수많은 수업과 교수님들을 볼테니 그것이 귀한 말임을 일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교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수중했고, 이런 좋은 것이 영원할 수 없는 유한성 같은 걸 어느 정도는 일기에 수업 내내 그 시간 그 순간이 달콤했다.
우리나라와 외국학교의 차이는 이런 거라고 했다. 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It's yuor choice!' 라고 하며 아무도 뭘 해야한다고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교재는 EBS수능특강 교재였는데, 독일의 문화에 대한 부분도 있고, 그리고 독일에서 유학하고 오신 교수님의 설명이 곁들여져서 재미있었다.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성실히 출석했고.... 학부 수업을 청강한 만족감이 높았으므로 글을 마무리한다.
Ende gut, Alles gut! 끝이 좋으면 모든게 좋다라고 번역되지만 교수님은 '끝까지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