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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세계철학사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했던 그 때를 떠올리며

 지금, 세계철학사를 읽고 있다. 하루 한 챕터, 100페이지 정도를 매일매일 읽는다. 숙제를 하는 것처럼 체크리스트에 표시해 가며 읽는다.  그날의 분량을 매일매일 하지 않으면 길을 잃고 책의 완독은 멀어진다. 오전에 책부터 읽는다.  내용숙지보다 일단 쭉쭉 1 회독해서 4권까지 달리며 흐름부터 잡으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꼼꼼하게 2 회독 3 회독 해야지.  


 나랑 같이 책을 시작한 선생님이 1권보다는 2권이 덜 어렵다고 해준말이 응원이 된다.  2권으로 어서 가려고... 1권을 열심히 읽는다.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인 책을  읽는 때는 많은 것이 요구된다. 꾸준함 성실함 밖으로 향하는 나를 안으로 끌어들여 앉혀놓는 일.


 벽돌책을 좋아한다. 책이 벽돌인 데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 사정을 헤아리게 되면 그 책을 쓴 작가의 고민을 느끼며 작가와 나 둘이서 해나가는 긴밀한 대화는 즐겁다. 


 흔히 말하는 벽돌책을 마주하면 이 생각을 한다. 읽기 어려운 긴 소설로 제일 많이들 언급하는 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프루스트의 소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라는 소설에서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교도소에 가거나 어딘가에 오래 은신을 했을 때라는 말도 나온다. 나는 교도소에 간 것도, 은신을 할 일이 있지는 않았지만 순전히 허영심과 호기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 했다. 그 책을 다 읽은 경험, 성공경험이 지금의 내 공부를 뒷받침하고 있는 힘 같은 거라는 생각을..... 벽돌을 마주하면 한다. 두꺼운 책을 읽어야 할 때면 속으로 외친다. 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독한 여자야!!! 


세계철학사 1,지중해세계의 철학             872

세계철학사 2, 아시아세계의 철학           852

세계철학사 3,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     744

세계철학사 4, 탈근대 사유의 지평들       792쪽


 


다마루는 말한다. "그밖에 뭔가 필요한 게 생각나면 종이에 적어서 키친 카운터에 올려놔. 다음 보급 때까지 준비할 테니까."

" 고마워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부족한 건 별로 없어요."

"책이나 비디오 같은 건?"

"딱히 원하는 게 생각나지 않는군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어때?" 다마루는 말한다. "만일 아직 읽지 않았다면 완독 할 좋은 기회일지도."

 "당신은 읽었어요?"

 "아니. 나는 교도소에도 간 적이 없고, 어딘가에 오래 은신할 일도 없었어. 그런 기회라도 갖지 않는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들 하더군."

 "주위에 누군가 다 읽은 사람이 있었어요?"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 내 주위에 없는 건 아닌데, 다들 프루스트에 흥미를 가질 만한 타입이 아니었어."

 아오마메는 말한다. "한번 해보죠. 책이 입수되면 다음 보급 때 함께 보내주세요."

 "사실은 벌써 준비해 뒀어." 다마루는 말한다. 50-51 

 식탁 위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쌓여 있다. 새 책은 아니지만 읽었던 흔적도 없다. 모두 다섯 권, 그녀는 한 권을 손에 들고 몇 장을 넘겨본다. 그리고 몇 권의 잡지도 있다. 53 

 읽을 책도 있다. 그녀는 다마루가 보내준 프루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에 이십 페이지 이상은 읽지 않도록 주의했다. 시간을 들여 그야말로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이십 페이지를 읽는다. 거기까지 다 읽으면 다른 책을 손에 든다. 109


"프루스트는 읽고 있나?"

"좀처럼 책장이 안 넘어가요." 아오마메는 대답한다. 마치 암호를 주고받듯이.

"취향에 안 맞았나?"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뭐라고 할까.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해 묘사한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다마루는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다른 세계라고 할까 -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몇 광년이나 떨어진 어느 소행성에 대한 아주 상세한 보고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거기에 묘사된 정경 하나하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건 가능해요. 그것도 꽤 선명하고 극명하게. 하지만 이곳에 있는 정경과 그 정경이 잘 이어지지 않아요. 물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한참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똑같은 곳을 몇 번이나 읽게 돼요."


 아오마메는 다음에 이을 말을 찾는다. 다마루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따분한 건 아니에요. 치밀하고 아름다운 묘사이고, 그 고독한 소행성의 성립과정 같은 것도 나름대로 이해했어요. 다만 좀처럼 책장이 안 넘어간다는 얘기죠. 강 상류를 향해 보트를 저고 있는 것처럼요. 한참 노를 젓다가 잠깐 손을 멈추고 뭔가 생각하는 사이에, 문득 깨닫고 보면 보트는 다시 원래 자리에 돌아와 있어요." 아오마메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런 읽을거리가 더 좋을지도 모르죠. 줄거리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독서보다 오히려 더 좋을지도. 뭐랄까, 거기에는 시간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있어요. 앞이 뒤여도 괜찮고, 뒤가 앞이어도 상관없는 듯한." 32-33 문고판 3 하


 " 올해 안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아마 끝까지 읽지 못할 거 같아요."

 "괜찮아." 다마루는 말한다. "마음껏 시간을 들여 읽어봐. 오십 년도 더 전에 써진 소설이야.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정보로 채워진 것도 아니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고 아오마메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제 시간이라는 것을 그다지 믿을 수없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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