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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숲섬 Feb 20. 2024

대충

커피드립도 드립으로

 어제의 페북사진에 이어 참으로 현실적이다. 솔직한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도 네 삶을 포장할 필요가 있다. 이쁜 리본을 달아라... 같은 충고의 말들이 있었다. 솔직한 사람들은 사실 솔직하려고 솔직한 게 아니라 그걸 감추려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일 수 있다. 그게 나다. 우울감 등으로 기운이 없는 사람들은 외출 시 화장이나 멋진 옷차림 등을 할 여력이 없어 그냥 맨얼굴에 대충일 때가 많다. 그럴싸해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기도 어려운 상태다.


1. 좋아하는 도구인 드립마스터를.... 내 또 다른 거처로 옮겨놔서 지금 여기에 없다. 

2. 물줄기가 일정한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주전자 없다. 

3. 서버에 내리면 좋겠지만, 없다. 자주 깬다. 주로 설거지 하다 수고꼭지에 부딪혀서인데, 몇 번을 깨고 그때마다 사고를 반복하다가 이제는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유리제품은 아름다움에 비해, 깨지고 나면 처리하는 게 아주 번거롭다. 늘 번거로움이 가지고 싶은 마음을 이긴다.(번거로움> 갖고 싶다->안 살란다) 

4. 칼리타 드리퍼인데, 필터는 고노다. 필터의 뾰족한 삼각 부분을 과감하게 많이 접었다. 

5. 산미가 살아있는 예가체프원두를 갈았으나, 내가 원하는 건 케냐원두 풀시티로 볶은 거다. 아니면 yT커피이거나. 깊고 진한 것을 원한다. 밝고 마일드한 것 말고요.... 


이런 거나 투덜대고 있는 걸 보면, 팔자 좋다. 이럴 때 수시로 인용하는 내가 좋아하는 구절.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김영민)에서


  "기후위기에 관 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정말 직접적으로 연구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껴졌던 일은 커피 생산 량이 감소하여 앞으로 수년 내로 커피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식품이 되리라는 예측(동아사이언 스, 2019.01.17.) 정도였던 것이다. 점점 더 빠르게 녹아가는 빙하(연합뉴스 tv, 2021.08.07), 더 자주, 더 오래 지속되는 산불(경향신문, 2022.03.06.). 적도 인근에서 농민들의 삶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유 모를 신장 질환(CKDU: Chronic Kidney Disease of Unknown origin)(중앙일보, 2021.10.22.) 등은 연구자 개인의 삶을 관통하기보다는 신문이나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저기 먼 곳부터 시작되는 일’ 정도로만 느껴지곤 했었다."

-몸된 자연으로서의 제주해녀의 바다(2023), 최서현,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커피는 머나먼 아프리카나 남미 대륙에서 실어 와야 하고, 거기엔 노예 노동의 피땀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제국의 음료'이기도 했다. 공정무역 운동은 현대에 들어서도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주민들이 자신이 먹을 식량이 아닌 유럽과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부국인 일본과 한국 사람들이 즐길 커피를 생산하느라 여전히 삶을 돌보지 못한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한국도 이제 착취당하는 사회가 아니라 착취하는 사회로 전환된 지 오래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정은정), 한티재 1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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