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그림 그리기를 주저했던 이유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말은 내뱉는 순간
그 언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이 느껴지거나
온전히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건 제가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려 했던 것 같아요.
그게 그림이고 글인 것 같습니다.
또 그림으로 많은 것들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지만
때때로 그림으로도
그렇게 우회적인 방식으로도
저는 무언가를 가려진 채 말을 건네는 기분이었어요.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만 그림으로도 솔직해지지 못해서 글로 부연 설명을 나열합니다.
저는 저의 세계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본인의 세계에 가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올가미를 그리고 그 안에 갇혀버린 거죠.
그래서 한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었어요.
그리지 못하고 생각이 더 많아졌던 건
그림을 그리다 어떤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 들었었기 때문입니다.
책 <데미안>에서 말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저는 한 세계를 깨뜨리고 있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지기 위한 과정이겠죠.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림과 글을 지속할 거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세한 움직임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분명 그 움직임 속에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 흐름을 인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같은 움직임을 동조해 줄 수 있는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명을 위해서라도 움직임을 지속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무쌍한 이 세상 속에서
작고 느린 세계는 감지하기 쉽지 않겠지만
매 순간 매분 매초 그 세계는 분명 확장되고 있습니다.
저는 더 견고하고 유일하게 다듬어가겠습니다.
그렇게 나아가다가
우리는 두 세계의 교차점에서
우연히 만나요.